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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몰락한 미래

by 최용훈

타임머신이란 단어는 영국의 소설가 웰즈(H. G. Wells)가 만들어냈다. 사람을 태우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 속을 여행할 수 있는 기구 타임머신! 웰즈는 늘 그러한 시간 여행을 갈망했고, 그의 작품 속에 표현하고자 했다. SF 소설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타임머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조너선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였다. 시간 여행의 끝에 도착한 환상의 세계, 당시의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 새로운 과학 지식의 소개 등은 걸리버가 여행한 여러 나라들에서의 경험을 연상시킨다.


과학 교사이자 발명가인 시간여행자가 도착한 미래는 서기 802,701년의 지구였다. 왜 웰즈는 80만 년 후의 비현실적인 세계를 시간여행의 종착지로 선정한 것일까? 현대의 독자에게 80만 년 후의 세계는 환상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웰즈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의 세상은 급격히 발전하는 과학의 힘을 믿었고, 그것이 인류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과학이 가져다주는 환상에 대해 불신감을 지니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과학이 약속하는 먼 미래의 세계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행의 종착지에서 시간여행자는 작지만 우아하고 순진한 엘로이(Eloi) 종족을 만난다. 그들은 거대하지만 낡은 건물에서 소규모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으며 어떤 면으로 보아도 그들의 삶은 과학의 진보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간여행자는 엘로이라는 미래 사회의 인간들이 과학 기술로 자연을 정복하고, 힘과 지식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추측한다. 과연 그랬을까? 그곳에는 인간의 오랜 식량이 되었던 가축들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살고있는 건물은 낡고 쇠락하고 모습이었다. 과학의 진보와 발전은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다. 수많은 의문 속에서 웰즈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변화의 필요성이 없는 곳에는 지성도 없구나.” (There is no intelligence where there is no need of change.) 웰즈가 상정한 세계는 더 이상 과학적 진보가 불가능해진 인류의 미래를 예언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시간여행자는 자신이 타고 온 타임머신이 사라진 사실을 알게된다. 그는 타임머신이 누군가에 의해 부근에 있는 스핑크스를 닮은 거대한 구조물에 감춰졌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스핑크스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상징이다. 고대 그리스 오이디푸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스핑크스는 자신이 내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나그네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라는 곳의 왕이 되지만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취한 패륜아임을 알게 된다. 절망한 그는 자신의 눈알을 잡아 빼고 긴 방랑의 길로 들어선다.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의 전설은 타임머신과 시간여행자의 관계와도 같다. 시간여행자는 시간의 이동이라는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내지만 그가 도착한 그곳에서 그가 알게 될 것은 오이디푸스의 절망적 인식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서 인류의 어둡고 삭막한 미래를 보게 되고 결국 스스로 돌아올 수 없는 긴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늦은 밤 몰록(Morlocks)이라는 또 다른 종족이 나타난다. 그들은 땅 속 어둠 속에 살고 있던 원숭이처럼 생긴 인간들로 밤이 되어야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시간여행자는 인간이 두 가지 종으로 진화되었음을 깨닫는다. 과거의 유한계급들은 무능한 엘로이가 되었고, 짓밟힌 노동계급은 빛을 두려워하는 잔인한 몰록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몰록들이 자신의 타임머신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그들의 터널을 탐색하다가 놀랍게도 몰록들이 엘로이를 사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엘로이는 몰록이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었던 것이다. 시간여행자는 지성이란 것은 위험에 반응하며 발전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던 엘로이는 마침내 정신과 지성 그리고 적합한 신체 조건마저 상실하고 몰록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엘로이와 몰록의 관계에서 우리는 현대의 인간관계를 떠올린다. 지상과 지하라는 공간의 차이는 소통되지 못하는 인간들 사이의 거리에 다름 아니다. 또한 무기력한 이들을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힘의 논리가 현대 사회의 경쟁논리와 비교한들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변화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 삶,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잃어버린 현대의 삶에 대한 예언적 은유이다. 한편 시간여행자는 엘로이 족의 여성 위나를 만나게 되고 둘은 순수한 애정을 키워간다. 하지만 위나는 몰록 족의 공격을 받아 실종되고 만다.


시간여행자와 위나의 관계는 시대를 초월한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시간여행자와 위나 사이의 마음의 교감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함께 공유한 경험을 통해 되살아난다. 시간여행자는 위나 대신 그 먼 미래의 시간에서 흰색의 꽃들을 가져온다. 이제 다 말라버린 그 꽃은 그의 시간이동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인간의 마음에 영원히 살아있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이 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힘과 마음이 다 사라진다 해도 감사와 서로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었다.”


마침내 타임머신을 되찾은 그는 300만 년 후의 세상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한다. 지구는 죽어가고 있었으며 몇몇 생명체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처럼 생긴 빨간색의 생명체가 핏빛처럼 붉은 백사장을 오가며 거대한 나비들을 쫒고 있었고, 지구는 자전을 멈추어가고 있었다. 태양은 더 크고 붉었지만 빛을 잃고 희미해져 세상은 얼어붙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상의 모든 것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인간의 몰락과 지구의 멸망이었고, 그의 시간여행이 확인한 것은 진보는 영원할 수 없으며 언젠가 우리의 역사, 문명은 퇴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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