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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06. 2022

인재(人災), 인간에 의한 재난

자연의 재난은 인류를 위협하지만 그것은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투쟁의 길로 나서게 했다. 자연과의 투쟁, 그것은 인간의 열망과 꿈을 그러모아 오늘의 문명과 문화를 이룬 과학정신의 원천을 제공하였다. 과학이 무엇인가? 세상을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과 원리를 이해하여 그것을 인간의 삶과 연계해온 것 외에 과학을 달리 설명할 수 있는가? 오랜 세월 인류는 가공할 자연의 위협에 맞서 신화와 전설, 문학 등을 통해 투쟁의 정신을 고취해왔고 그것이 오늘의 과학과 기술 문명을 이루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상상의 오류에 빠진다. 그래서 이룰 수 없는 영역, 신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그것으로 인해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종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과 기술이 제공하는 풍요와 무한대의 힘이라는 환상에 빠져 자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연의 재해를 넘어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재난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재난 전문가 다이앤 부코비크(Diane Vuković)의 글을 인용해 인간이 만든 재난의 유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위 인재(人災, man-made disaster)라 불리는 재난은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고 우연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들 모두 인간의 행위와 부주의,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인재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첫째는 기술적 재난이다. 화학물질의 유출, 교통사고, 광산사고 등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사회적 재난으로 전쟁, 학살, 소요사태, 하이퍼인플레이션, 테러 등이 그것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환경적 재난으로 숲의 남벌, 기후변화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재난의 대표적 사례를 기술하고자 한다.


1. 화학물질의 유출


1984년 인도의 보팔 지역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는 화학약품 제조회사인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유니언 카바이드의 현지 화학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이다. 이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화학약품 유출이었다. 총 45 톤의 맹독 무색의 가연성 액체인 이오시안 산 메틸이 살충제 생산 공장에서 누출되었다. 수천 명이 가스에 노출되어 즉사하였고 탈출하려던 사람들로 아비규환을 이루어 총 15,000~20,000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2. 구조물 붕괴


사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 구조물의 붕괴에 따른 참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물지만 여전히 구조물의 붕괴가 보도되고 있다. 서프사이드 콘도미니엄 빌딩 붕괴는 2021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근교 도시인 서프사이드의 챔플래인 타워에서 일어난 주거 시설 관련 사고이다. 12층 건물의 붕괴로 98명이 목숨을 잃었다. 장기간에 걸친 조사 끝에 붕괴의 원인은 누수와 강화 철근의 부식으로 지하 주차장에 있는 콘크리트 지지대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1922년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천장이 무너져 내린 워싱턴의 니커보커 영화관 사고 때와 같은 사망자 수를 기록하였다. 서프사이드 사고는 1981년 미주리 주 캔자스 시티의 하이야트 리젠시 호텔에서 공중에 설치된 두 개의 통행로가 무너져 내려 114 명의 사망자를 낸 사건 이후 최악의 구조물 붕괴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서울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502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겪기도 하였다.  


3. 식수 오염


가장 심각한 식수오염 사고는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하였다. 다수의 식수원들이 비소에 오염되어 관련 지역 약 1억의 주민들에게 비소 중독 증상이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2014년 미시간 주 플린트에서 식수원 변경과 관련 대규모의 식수 오염 사태가 발생해 100,000명 이상이 납 성분에 노출되었다. 그 결과 많은 어린아이들이 뇌질환을 겪었고 이 사고로 인해 보건성 장관을 비롯해 5명의 고위 공무원들이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다.


4. 교통 재난


교통 재난에는 항공, 철도, 도로 및 수상 사고 등이 포함된다. 대규모 사상자를 발생시키기도 하는 이 교통 재난들은 흔히 안개나 빙설 등 자연 현상에 기인하지만 인간의 실수로 빚어지는 사례도 많다. 되살리기도 망설여지지만 304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생생하다.


5. 광산 사고


채광 업무가 과거에 비해 많이 안전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광산에서의 사고가 가끔씩 일어나고 있다. 광부들은 무너진 갱도에 갇히기도 하고 독가스에 노출되고 분진 폭발 등 많은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 매몰되었던 광부 두 사람이 11월 4일 밤에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뉴스로 많은 이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6. 폭발과 화재


핵폭발 이외의 폭발로 가장 강력했던 것이 2020년 베이루트 항구에서 일어난 질산염 폭발이었다. 잘못된 보관과 관리로 초래된 이 폭발 사고로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6,0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7년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에서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관 등 고성능 폭발물 40톤을 싣고 있던 한국화약의 화물 열차가 이리 역에 정차 중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59명이 사망하고 1343명이 부상을 입었다.   


7. 원자력 및 방사능 사고


1986년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현재의 우크라이나) 키이우 주 프리피야트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발생하였다. 강력한 폭발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에 누출되며 20만 명 이상이 피폭됐고 2만 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는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가 본격적으로 개혁, 개방 정책에 나선 계기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냉전 종식과 소련의 해체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8. 송전망 고장


전기를 송출하는 시설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냉난방은 물론 병원의 생명유지 장치를 위한 전기의 공급은 불가능하다. 교통 신호기가 가동되지 않으므로 해서 교통사고의 위험 역시 높아지게 된다. 2021년 텍사스에서의 전기 시설 고장은 최근에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고였다. 그해 2월 미국 전역을 강타한 세 차례의 태풍 앞에서 텍사스의 전기 시설들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텍사스 주민들은 식수와 식량의 부족을 겪었고 추위에 떨어야 했다. 450만 이상의 가구와 기업들에 전기가 공급되지 못함으로써 적어도 246명이 직간접적으로 사망하였는데 어떤 자료는 무려 702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9. 원유 유출


원유 유출은 직접적인 인명 피해를 초래하지는 않지만 대대적인 환경 재앙을 일으킨다. 사고에 의한 최악의 원유 유출은 2010년 멕시코 만에 위치한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시추시설에서 발생한 폭발로 대략 1억 3천4백만 갤런의 원유가 유출된 사고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계획된 원유 유출은 이보다 훨씬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1990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 침공 후 후퇴하는 과정에서 이라크 군대에개 약 3억 8천만에서 5억 2천만 갤런의 원유를 쿠웨이트 연안에 방출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10. 전쟁


인류는 이미 선사 시대에서부터 전쟁을 벌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전쟁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기원전 1.2-1.5만 년 사이의 신석기시대에는 사냥이 아닌 채집이나 초기의 농경으로 식량을 얻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발굴된 칼을 비롯해 무기로 보이는 유물들은 대체로 전쟁용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새로운 소재의 무기로 보다 대규모의 전쟁이 벌어졌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상 역사적으로 전쟁이 없던 때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멸망한 민족국가 60개 중 50개가 전쟁으로 사라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곳곳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혁명전쟁과 내전이었던 남북 전쟁을 제외하고는 20세기 이래 한 번도 자국 내에서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의 전쟁에는 끊임없이 연루되어 건국  이후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15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거의 300회에 가까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쟁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큰 재난이다. 더욱이 현대의 전쟁은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생 무기의 사용으로 이미 인류의 몰락 시나리오 중의 하나가 되었을 정도이다. 인간이 만든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재난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11. 대량 학살


유엔의 정의에 따르면 ‘대량 학살’은 “하나의 민족, 인종, 종교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를 파괴하기 위한 의도로 저질러진다. 히틀러의 유대인에 대한 인종 말살 행위 이래 최근에도 이러한 범죄적 행위는 이어지고 있다. 2016년 10월부터 진행 중인 미얀마 내 이슬람교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군의 탄압을 비롯해 2014년 8월, 이슬람 테러 집단 IS에 의한 이라크 북부 신사르 지역에서의 야지디족 집단 학살,  수단 서부에서 발생한 다르푸리족에 대한 조직적인 살해, 콩고 반군들에 의한 밤부티 피그미 족에 대한 조직적인 절멸 작전 등이 현대의 대표적인 ‘대량 학살’이었다.


12. 군중 소요


군중 소요에는 폭동, 파업 및 대규모의 불복종 행위들이다. 제3 세계 국가들에서는 독재에 항거하는 민중들의 봉기가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미국에서도 인종 차별 등에 대한 대규모 항의 집회들이 있었다. 그러나 단지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인에 대한 혐오에 의해 저질러지는 사건들은 재산상의 피해를 넘어 인명을 해치는 폭력적 시위로 발전하기 쉽다. 대표적인 것이 1991년의 L.A. 폭동을 들 수 있는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태로 52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L.A. 거주 한인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13. 초(超) 인플레이션


초 인플레이션은 군중들이 자국의 통화에 대한 믿음을 상실할 때 발생한다. 1990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초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락하자 사람들은 지폐를 벽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한다.


14. 테러


테러는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심기 위한 것으로 사용된다. 테러의 유형들로는 총기난사, 생화학 테러, 인질, 항공기 납치, 폭탄 테러, 사이버 공격, 생물병기를 사용한 테러 등이 있다.  


15. 공황상태, 군중의 밀집 및 쇄도


공황 상태와 다중의 밀집은 군중의 무분별한 궤주(潰走)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한 경우 대량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데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화재가 일어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일거에 입구로 몰려 100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번에 일어난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에서의 비극적 참사 역시 이 범주의 인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6. 지구 온난화와 온실 효과


기후 위기는 현대의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된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기후 변화가 계속될 경우 대규모 인구의 이동, 기아, 자원을 얻기 위한 전쟁들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또한 기후 변화는 가뭄, 산불과 태풍 등 자연재해를 촉진할 수 있다.


17. 산림 벌채


산림의 벌채는 인간의 필요 혹은 욕심에 의해 발생한다. 지나친 남벌은 산사태, 홍수 등의 재해를 야기할 수 있으며 온실 효과와 같은 기후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개발을 미명으로 한 산림의 벌목은 결국 인간에 의한 자연의 파괴로 이어진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인근 국가들에 의해 남벌되는 것은 지구의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8. 대기 및 수질 오염


대기나 수질의 오염 역시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오염에 의한 사망자의 수자가 전쟁이나 자연재해, 굶주림보다 더 많은 인구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또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인재(人災)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 사태이다. 우리는 무엇이 일어날 수 있는 재난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것이 닥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가 많다. 하지만 자연의 재해와는 달리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재난은 우리의 준비와 대처 노력 여하에 따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아픈 비극적 사태에 망연자실하느니 재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결의로 재발을 막을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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