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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14. 2022

권력에 대한 소고(小考)

권력은 무형의 것입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 힘의 위력만은 자주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지요. 영국의 공립 종합대학인 켄트 대학의 온라인 강의 중에 ‘정치학의 이해’라는 강좌가 있습니다. 그곳에 나오는 정치에 대한 짧은 글을 소개하고 저의 감상을 첨부합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권력이라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니는 힘의 우위일 뿐이다.”


지극히 직관적인 권력에 대한 정의라 할 수 있는 홉스의 언급은 못에 망치질을 할 때 그 못에 가해지는 일방적인 힘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강연자는 강연을 듣는 청중들에게 힘을 갖는다. 청중들은 자발적으로 강연을 선택하였고, 강연자는 자신의 학습 목표, 강연의 질 관리, 질의응답과 청중의 반응 등에 대해 자신의 책임 하에 강연을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중들은 강연자의 힘이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도 있고, 혹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여전히 강연자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문제는 이것을 측정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힘의 불균형은 맥락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강연장이 아니라 슈퍼마켓에서 만나게 된다면 강연자와 청중의 관계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스 웨버(Max Webber)  


권력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한 행위자가 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일 가능성을 가리킨다.


권력에 관한 논쟁에서 웨버가 기여한 것은 권력이 단지 관계 안에서만 존재함을 인식하게 한 것이다. 관계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될 수 있으므로 드러나는 권력의 형태는 관계의 형태에 따른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강연자와 청중의 관계는 강연을 떠나게 되면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웨버는 홉스의 견해가 지닌 단점을 설명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웨버의 정의는 저항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런가?


로버트 달(Robert Dahl)


“AB에게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언가를 시킬 수 있을 때 AB에게 권력을 지닌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언급도 매우 직접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직관적 정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의 권력은 건설적이지 못하고 단지 억압적일 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의 언급에 성 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권력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막연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그들’(they)을 쓰지 않고 ‘그’(he)라는 남성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일상적인 표현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공적인 논쟁의 영역에서 남성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 아르덴트(Hannah Arendt)


권력은 단지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행동하는 것이다.


아르덴트는 유태계 독일의 여성 정치학자로 나치의 전쟁 범죄에 관해 다수의 글을 써온 사람이다. 그녀는 권력과 폭력을 대비시켜 권력을 설명한다. 즉 폭력은 나치가 증명해 보였듯이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서 원하는 것을 빼앗고자 행사하는 것인 반면 권력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집단으로 단결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에 대한 개념도 권력을 개인 안에 위치하는 것으로 봄으로써 웨버가 이야기한 사회적 관계를 놓치는 문제가 있다.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우리가 권력이라 부르는) 그러한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생산적인 네트워크로 여겨질 필요가 있다.’


권력에 대한 복잡한 개념에서 벗어나 푸코는 벌어지는 모든 생각과 행동 속에 권력이 함축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그것이 인간의 행위인가 아닌가는 중요치 않다. 인식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한 권력을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 분석이라는 일은 여러 행위들이 다른 사람, 집단,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들을 강조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권력에 관한 몇몇 정치학자들의 정의와 그에 대한 언급을 읽으며 새삼 권력을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수많은 정책들과 정치적 결정을 통해 힘을 지닙니다. 국회는 대중의 모든 사회적, 개인적 행위를 규정하고 통제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사법부는 사회적 범죄와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으로써 힘을 발휘합니다. 군대는 전쟁이 발생하면 사실상 국가 전반의 행위들을 통제할 수 있으며 경찰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치안 행위로 개인들을 수사, 체포, 구금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강제적 힘을 통한 권력의 행사들을 가리켜 프랑스의 마르크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는 국가가 대중을 통치하는 ‘억압적 기재’(Repressive Apparatus)라고 불렀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제도와 체제를 통해 국가와 국민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에 놓이고 말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 계약설’의 가반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권력’이라고 말하면 이러한 억압적 제도와 그것을 이끄는 사람들의 힘을 연상하게 됩니다.


알튀세르는 또한 국가를 통치하는 또 하나의 기재 즉, ‘이념적 기재’(Ideological Apparatus)를 제시하였는데 종교, 교육, 문화, 예술 등 대중들의 정신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사실 교실의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이외에도 그들의 가치관과 생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칩니다. 교회나 성당이나 사찰의 종교적 가르침도 마찬가지이죠. 그렇게 이념적 권력은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개인들은 그것들을 통해 성장하고 안정감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자연적인 본성과 본능을 억눌러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죠.


물리적, 정신적 권력의 행사는 결국 하나의 개인, 하나의 집단이 다른 개인과 집단에 미치는 힘을 의미합니다. 즉 힘을 지닌 자가 힘을 갖지 못한 대상에게 가하는 유형, 무형의 행위가 되는 것이죠. 홉스가 얘기한 힘의 우위가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고대의 사회가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뉘었던 이유입니다. 이후 지배 계급으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경제적으로 부를 이룬 중간 계층이 대두함으로써 사회의 계층이 복잡하게 세분화되기 시작합니다. 정치적, 군사적 권력을 넘어서는 경제적 권력들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권력의 메커니즘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하게 하는 것이 권력'이라고 말한 로버트 달의 정의는 생경하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은 한나 아르덴트가 말했던 ‘조화로운 행동’을 입버릇처럼 강조합니다. ‘국민 통합’이라는 신화를 꺼내어 자신들의 권력과 같은 방향을 추구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에서 ‘다원성’(Pluralism)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들의 그렇듯 다양한 이해와 욕망을 하나로 모아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본다면 그것 역시 절대 권력을 갖는 지도자의 발걸음을 따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국민들의 각기 다른 요구와 필요를 수용해 모두를 만족시킬 방안은 실현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셸 푸코의 권력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한 우리 모두는 권력을 지닙니다.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권력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 상사의 생각은 일반 직원의 태도와 행동에 상당한 제약을 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작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받고 있습니다. 푸코의 말대로 권력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네트워크가 ‘생산적’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자신이 미칠 수 있는 혹은 겪고 있는 힘의 영향을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한 관계 에서도 권력의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힘과 그것이 타인에게 미치는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효과를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가해지는 힘의 영향을 무조건적,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권력을 가진 지배자이자 권력에 눌리는 피지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그리고 다른 이들이 내게 미치는 영향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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