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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27. 2022

대통령 직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오바마가 트럼프에게 남긴 서신

대통령께 


귀하의 괄목할 진전을 축하합니다.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귀하에게 희망을 걸었고, 우리 모두는 정당을 넘어 귀하의 재직 기간 중 더욱 확장된 국가의 번영과 안전을 바라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독특한 직책이어서 성공에 대한 명료한 청사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어떠한 조언도 특별히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8년 동안 느낀 저의 소회를 적어보려 합니다.  


첫째, 우리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커다란 행운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렇듯 운이 좋을 리는 없지요. 모든 아이들과 열심히 일하는 가족들을 위해 성공의 사다리를 만드는 일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둘째, 오늘의 세계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진실로 필수 불가결합니다. 행동과 모범을 통해서 냉전이 종식된 이래 꾸준히 확대된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입니다. 미국의 부와 안전이 그 질서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는 일시적으로 대통령의 직책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그로서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이 투쟁했고, 피 흘렸던 법의 지배, 권력의 분산, 평등한 보호와 시민의 자유와 같은 민주적 제도와 전통의 수호자가 된 것입니다. 밀고 당기는 일상의 정치와는 무관하게 그러한 민주주의의 도구들을 적어도 우리가 발견한 만큼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밀려드는 사건들과 책임 속에서라도 친구와 가족을 위해 여유를 가지십시오. 그들이 불가피하고 힘든 시간 속에서 귀하를 꺼내 줄 수 있을 겁니다. 


제 아내 미셸과 저는 위대한 장정을 시작하는 귀하와 멜라니아 여사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빌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움을 드릴 준비가 되어있음을 귀하께서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신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위의 글은 백악관을 떠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후임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남긴 서신입니다. 백악관의 전용 편지지에 친필로 써 내려간 편지는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서랍에 들어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가까운 측근들에게도 그 편지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지만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이나 관저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그 편지를 보여주었죠. CNN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그 사본을 입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트럼프는 재직 기간 중 오바마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지는 못했지만 그의 서신을 소중히 여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취임식 당일 그 편지를 읽은 트럼프는 감사를 전하기 위해 오바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당시 가족과 함께 서부의 캘리포니아를 여행 중이어서 그 전화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오바마의 보좌관 중 한 사람이 백악관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백악관의 대통령 스태프는 트럼프가 서신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말하고 오바마에게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전화로 연결되지는 못했죠. 


취임 몇 주 후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오바마의 서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서신은 길었고 복잡했으며 친절했어요. 쓰느라고 시간이 걸렸겠죠. 저는 그 편지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 도중 트럼프는 봉투에서 서신을 꺼내 제작진들에게 보여주며 큰 소리로 읽기도 했습니다. 


전임 대통령이 신임 대통령에게 서신을 남기는 것은 백악관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오바마도 취임 당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남긴 서신을 읽었죠.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힘든 순간들이 있을 겁니다. 비난이 들끓고, 친구들은 귀하를 실망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귀하와, 귀하를 사랑하는 가족과, 저를 포함해 귀하를 위해 뭉칠 이 나라를 위로할 것입니다.”


그 8년 전인 2000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에게 서신을 남겼습니다. 


“귀하가 짊어져야 할 부담은 크지만 종종 과장되기도 합니다. 귀하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기쁨은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죠.”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도 클린턴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귀하의 성공은 우리 조국의 성공입니다. 저는 귀하를 열렬히 성원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오바마의 서신은 전임자들의 것들보다 거의 두 배는 길었고 특별한 조언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서신을 읽은 후 트럼프는 오바마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주 전임자를 비판했고, 오바마의 주요 정책들을 끌어내렸으며 개인적으로는 오바마와의 비교에 강박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반면 오바마도 트럼프가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한 것이나 자신의 오바마 케어를 폐지한 것에 대해 비판했지만 버지니아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대한 트럼프의 모호한 언급을 직접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치적 견해나 정책적 차이, 정당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들의 후임자에 대한 서신은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정권 인수의 시간을 맞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그런 아름다운 전통이 생겨나길 바랍니다. 오바마의 말대로 대통령직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주어진 시간 동안의 책무와 사명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지만 오 년의 시간은 결국 끝나고 맙니다. 그 마지막을 시작의 순간에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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