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킬로스, 아가멤논 (Agamemnon by Aeschylus)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었던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자신의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테스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이어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에 의한 복수와 살인, 그리고 그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아가멤논’(Agamemnon),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The Libation Bearers), ‘복수의 신 에우메니데스’(Eumenides)의 세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그리스 3부작인 오레스테이아는 복수와 정의, 개인적인 피의 복수와 법에 의한 재판 사이의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복수의 여신들인 에리니에스(Erinyes)의 추적을 받고 붙들린다. 하지만 신들의 재판 결과 오레스테스의 유죄 여부에 대해 가부동수가 나오자 주심이었던 아폴로 신은 최종적으로 그에게 무죄를 선언한다. 이어지는 복수의 고리를 끊고자 했던 고대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한 아가멤논의 죽음은 서양문학에 등장한 복수극의 시작이었다. 비명과 함께 아가멤논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 우리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섬뜩한 목소리를 듣는다. “피비린 내 풍기는 거친 폭우가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아이스킬로스에 이어 셰익스피어는 그의 ‘맥베스’에서 권력에 대한 탐욕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을 묘사한다. 반역에 의해 왕좌에 오른 맥베스는 의심과 불안에 빠져 광기 어린 살인을 계속한다. 동료였던 뱅코우를 죽이고 이어 자신에게 등을 돌린 맥더프의 가족을 참혹하게 살해한다. 그리고 그 살인과 탐욕의 대가는 아내의 자살과 자신의 죽음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 ‘오셀로’에서는 주인공인 오셀로가 부하인 이아고의 계략으로 정숙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여 그녀를 목 졸라 죽인다. ‘햄릿’의 경우는 오레스테이아의 원형적 복수 의식이 반복되어 아버지를 죽인 숙부에 대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하지만 숙부의 아내가 된 어머니에 대한 극렬한 원망에도 불구하고 햄릿은 그녀를 살해하는 패륜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잔인성의 비극'(tragedy of cruelty)이라고도 불렸던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묘사된 수많은 살인들은 증오와 복수, 탐욕과 배신의 결과들이었다.
조지 릴로, 런던 상인(The London Merchant, by George Lillo)
1731년 발표된 영국의 극작가 조지 릴로의 희곡 속 살인은 18세기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큰 상점의 점원이었던 조지 반웰은 창녀의 꾐에 빠져 부자 숙부를 살해한다. 돈을 좇아 저질러진 살인의 전형이다. 하지만 죽어가는 도중에도 그의 숙부는 조카를 용서한다. 결국 조지는 기꺼이 교수대에 오른다. 살인의 죄와 용서 그리고 가책과 회개의 비극이다.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 by Charles Dickens)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 등장하는 빌 사익스(Bill Sikes)는 30대 중반의 나이로 검은색의 벨벳 코트에 흙 뭍은 회색 바지를 입고 목이 짧은 장화를 신어 굵은 장딴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얼룩덜룩한 더러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말할 때마다 맥주 냄새가 풍겨 나왔다. 찡그린 눈가는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듯 멍들어있다. 여린 성품의 창녀인 그의 애인 낸시는 늘 그의 폭력과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사익스는 잔인하게 그녀를 살해한다. 그 살인의 행위는 너무도 참혹해 당신의 여성 독자들은 그 장면에 이르러 공포에 사로잡혀 실신하는 일까지 있었다. 사익스는 자신이 늘 데리고 다니던 개가 경찰의 표적이 되자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키우던 애견을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도주 중에 목을 매어 죽는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조금의 존중도 없는 사이코패스적인 살인의 전형이었다. 19세기 악인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 by Fyodor Dostoevsky)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는 인간에 대한 막연한 증오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이 그려지고 있다. 세상에 대한 극도의 불만과 허무에 사로잡힌 젊은이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은 나폴레옹과 같은 위대한 존재와 벌레와 같은 저열한 부류로 나뉜다고 믿는다. 그리고 현대의 증오 범죄처럼 이유 없는 증오심에 사로잡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우연히 살인 현장에 있던 그녀의 여동생마저 죽인다. 그렇듯 부조리한 살인의 행각 이후 소설은 라스콜리니코프가 겪는 죄의식과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찰뿐이다.
로버트 브라우닝, 포피리아의 연인 (Porphyria's Lover, by Robert Browning)
19세기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당대의 대표적인 여성 시인 엘리자베스 버렛 브라우닝(Elizabeth Barret Browning)과의 헌신적인 사랑과 결혼으로 유명하다. 그는 네 살 연상의 장애인이었던 엘리자베스를 사랑하여 끊임없이 사랑의 시와 편지를 보낸다.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졌고 주위의 반대에 부딪히자 함께 이태리의 피렌체로 이주해 엘리자베스가 죽을 때까지 부부로서 행복한 삶을 보낸다. 로버트 브라우닝이 ‘극적 독백’(dramatic monologue) 형식으로 쓴 시 ‘포피리아의 연인’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한 남녀가 폭풍우 치는 어느 날 밤 남자의 오두막 안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남자는 노란 끈으로 그녀의 목을 조른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써 방해받지 않게 되었던 것일까? 절망 속에서 이루어진 정신분열적인 살인의 대목이다.
... 비바람 속에서도 그녀는 나를 찾아왔다.
분명 내가 바라본 그녀의 눈에는
행복과 자부심이 비쳤다. 마침내 나는 알았다
포피리아가 나를 숭앙하고 있음을:
놀라움에 내 가슴은 설렜고, 여전히 그 설렘은 커져갔다.
나는 무엇을 할까 망설였다.
그 순간 그녀는 곱고,
완벽하게 순결하며 선한 나의 것이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노란 끈으로 그녀의 머리와
가는 목을 세 번 돌려 감아
목을 졸랐다. 그녀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분명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시는 사랑하는 여인을 교살한 남자의 시각에서 그려지고 있다. 고귀한 신분의 여인은 천한 신분의 사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의 손에 자신의 생명을 맡긴다. 시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을 맺는다.
이렇게 우리는 지금 함께 앉아있다.
기나긴 밤 내내 우리는 미동도 없었다.
신은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 (L'Étranger, by Albert Camus)
알베르 카뮈는 이른바 부조리(不條理)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상황과 그들이 사는 세상이 논리의 영역을 넘어선 부조리로 가득 차 있음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부조리의 세계에서는 명확한 가치의 기준이 없다. 온통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세계이다.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에는 뫼르소(Meursault)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창녀촌을 운영하는 친구 레이먼드와 함께 한 싸움에 연루된다. 그리고 증오나 복수의 마음에서가 아니라 단지 뜨거운 태양빛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무려 다섯 발의 총알을 발사한 그는 분명 부조리한 세계,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세계 속의 인물이었다. 이유 없는 살인, 그것은 수많은 뫼르소들을 살인의 유혹에 빠지게 하는 현대의 인간 상황에 대한 문학의 은유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Lolita, by Vladimir Nabokov)
러시아 계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라보코프는 ‘롤리타’라는 작품을 통해 독자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작품 속에서 30대 중반의 문학 강사 험버트는 하숙집 여주인 샬롯과 연인 관계였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의 어린 딸 롤리타에게 강력한 성적 욕망을 느낀다. 결국 작품은 소아(小兒) 성애를 그렸다는 이유로 한 동안 출판이 금지되고 독자들에 의해 외설로 인식되었다. 험버트는 샐롯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녀는 험버트와 딸 사이의 관계에 충격을 받고 거리로 뛰쳐나가다가 차에 치어 사망한다. 결국 롤리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허버트의 성적 착취에서 벗어나가 위해 집을 나간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을 전전하지만 허버트는 끈질기게 그녀를 추적한다. 그리고 마침내 롤리타의 남자 친구 퀼티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변태적 성욕이 초래한 불편한 결말의 죽음이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재능 있는 리플리 씨 (The Talented Mr Ripley, by Patricia Highsmith)
‘재능 있는 리플리 씨’는 미국의 여성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5년에 발표한 심리 스릴러 작품이다.(이후 톰 리플리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네 편의 소설이 출간되었다.) 1960년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와 맷 데미먼이 주연한 2000년도 영화 등 여러 편의 영화로 각색되었다.
톰 리플리는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부자 친구 디키를 살해한다. 함께 항해를 하던 중 노로 머리를 쳐 죽인 후 시체를 바다에 유기한다. 이후 친구의 신분으로 가장해 그의 수표를 위조하고 모든 면에서 한량이었던 친구를 모방한다. 그리고 화려하게 달라진 모습으로 이곳저곳을 여행한다. 신분의 상승이나 돈에 대한 탐욕에서 저질러진 살인은 문학 작품에 있어 빈번히 묘사되지만 죽은 자의 신분을 이용해 그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은 새로운 문학적 소재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소설은 그리스를 여행하던 리플리가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포될 각오 하면서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리플리는 디키의 가족이 그가 이미 사망한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리플리가 위조한 디키의 유언장에 따라 그의 재산 모두를 그에게 이전한 상태였음을 알게 된다. 결국 리플리는 자신이 죽인 친구의 재산으로 부자가 된다. 하지만 그의 나머지 인생은 극심한 불안과 강박에 시달릴 것으로 암시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리플리는 형사들이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한다. 작가 역시 “그는 자신이 닿을 부두마다 형사들이 그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될까?”라고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작품 속의 리플리는 이 모든 상상을 뒤로하고 그의 여행을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