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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9. 2022

변화와 적응

변화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삼라만상 그 어느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뽕나무 밭(桑田)이 푸른 바다(碧海)가 되는 것은 세월의 진리일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또 한 번의 역사적 전환기에 살고 있습니다. 인류는 오랜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거대한 변화의 조류에 맞닥뜨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적응해왔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 그들이 만든 사회 역시 변화되지 않을 수 없었지요. COVID-19는 21세기 초엽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변화된 세계와 삶의 방식을 수용하고 그에 맞추어 적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적 변화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사회적 변화는 문화적 상징, 행위의 규칙, 가치 체계와 사회 조직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사실 인간의 상호작용이나 행위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하기 마련이고 사회 역시 그에 맞추어 상황에 적응하게 되지요. 그러므로 사회적 변화는 점진적이고 때론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진행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COVID처럼 전 세계적인 재난 하에서는 그 변화가 급속도로 빠르게, 계량화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들은 다양합니다. 단기적 혹은 장기적 변화들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지요. 그러한 몇 가지 요인들을 들어보겠습니다.


첫째가 기술(technology)입니다. 몇 차례에 걸친 산업 혁명은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농업에서 공업, 자급자족에서 대량 생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삶의 모습은 촌각을 다투며 서둘러 진화해왔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인터넷은 과거 인쇄술의 발달이 지식의 확산과 공유에 기여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식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있어 가히 경천동지 할 변화를 이끌어냈던 것입니다.


둘째는 이 기술과 결합된 과학(science)입니다. 사실 과학의 진보는 우리의 삶에 많은 유익을 가져왔습니다. 자원의 개발을 촉진하고 공중의 보건을 증진했으며 질병을 극복하는 등 과학 분야의 발전은 우리의 삶의 구조 자체를 광범위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셋째는 개인과 사회가 벌여온 운동(movement)들입니다. 정치 사회적 운동들은 특정 계층의 사람들을 단합시키고, 법률을 제정하는 등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권리를 가져다주었죠. 여성의 참정권이 그렇고 인권운동이나 성소수자에의 권리 등이 그랬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이나 전염병, 경제 위기 등 전 세계적 사건들은 사회적 변화의 충격적 요인들이 되어왔습니다. 14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Black Death)은 쥐벼룩에 의해 옮겨진 박테리아에 기인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처음 발발해 유럽에 전파된 이 치명적인 전염병은 유럽에서만 전체 인구의 약 60%에 이르는 5,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이는 1347년과 1353년 사이의 중세 유럽을 완전히 초토화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사회적 변화가 초래되었습니다. 우선 사람들의 노동조건이 변화되었지요. 인구가 급감하게 되자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었고, 부유한 지주들은 비싼 임금과 개선된 근로 환경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중세의 봉건제도는 붕괴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 다른 변화는 과학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는 사실입니다.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의사와 의료인들은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요. 그들은 환자를 치료하고 질병의 발발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질병이 치료될 수 있음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의학 즉 과학에 대한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죠. 덧붙여 공중 보건 분야에서도 상당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최초로 강제 격리나 자가 격리가 실시되었고 새로이 병원들이 세워져 위생적인 생활 여건을 만드는 조치들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의 변화는 르네상스(Renaissance)의 시작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신 중심의 중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 과학과 합리성과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는 휴머니즘의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죠. 그 시대는 위대한 미술, 문학, 건축의 시대이기도 하였습니다.   


1918년에 창궐한 스페인 독감은 역사 상 최악의 인플루엔자였습니다. 전 세계를 휩쓴 이 전염병으로 수천만 명이 사망했지요. 하지만 이 상황은 일차 세계대전 직후였던 까닭에 그 규모에 비해서는 언론에 그다지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팬데믹 이후 여러 분야에서 그 여파가 나타났지요. 연구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을 경험하고 그에 두려움을 느낀 까닭에 사람들의 사회적 신뢰나 상호 작용이 크게 약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회적 신뢰의 결여는 이어지는 수십 년의 기간 중 경제 성장을 크게 위축시키기도 하였습니다. 1920년 대 발발한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나 세계적 경기침체도 그러한 심리 상태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학에 대한 믿음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많은 서구 국가들에서 전염병의 발발 이후 과학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흑사병 이후와는 반대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체의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죠. 하지만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공중 보건이 크게 증진되었고 서구의 많은 국가들도 보건에 관심을 기울여 예방의학, 사회화 의학(socialized medicine)*이 보편화되었고, 집중화된 보건 시스템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 사회화 의학은 정부가 모든 보건 서비스에 대한 재정을 지불하고 시설 및 전문 인력을 직접 운영 관리하는 보건 시스템을 말한다.


이렇듯 사회적 변화는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흐름입니다. 따라서 ‘정상으로의 회귀’(return to normal)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흘러간 과거를, 강물을 되돌릴 수 없듯이 말입니다. 오늘날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급속하고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코로나 사태를 겪어오면서 우리의 일상은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소 완화되어 많은 근로자들이 재택근무에서 직장으로 복귀했지만 전문가들은 향후 재택근무와 직장 근로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작업 모델이 일상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은 축소될 것이고 공동 작업 공간이 확대될 것입니다. 취업 시에 개인의 건강에 대한 심사가 강화될 것이고 작업장의 위생환경이나 작업여건 등이 과거에 비해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질병을 추적하고 이해하기 위한 데이터 가시화(data visualization) 등이 강조될 것입니다. 원격 근로로 인해 근로자와 고객들은 온라인에서 더욱 밀접히 연결되겠지요.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원격 근로 및 협업,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등의 확대로 고객들의 행위에도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제 이전 어느 때보다도 오늘의 우리는 디지털로 더욱 밀접히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들만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죠. 많은 교육 기관들은 이미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의 사용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추세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기술로서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과 연결에 있어서 불평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인터넷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고 일하거나 배우는 새로운 방식에 쉽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누구나 버튼 하나면 필요한 것을 만들고 그것을 취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완성된 사회적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나름대로의 준비를 갖추는 것 또한 필요하겠죠.


코로나의 경험이 사회에 어떠한 장기적인 충격을 줄지는 추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이미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그리고 군중 모임의 제한 등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2020년 3월 10%에서 2022년 2월 26%로 증가했죠. 이런 정신적인 결핍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정신적 안정감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음은 분명한 일입니다. 또한 잘 사는 나라의 백신 공급에 비해 못 사는 나라의 공급이 현저히 떨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불안정의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사회적 변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미 우리가 상당한 정도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의 교훈을 되돌아볼 때 앞으로의 사회적 변화는 보다 광범위한 삶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1968 멕시코 올림픽에서의 일입니다. 높이뛰기 종목에 참가한 미국 선수 딕 포스베리(Richard Douglas "Dick" Fosbury, 1947~  )가 바를 뛰어넘는 순간 그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경악했습니다. 당시의 높이뛰기 기술은 앞을 보고 도약해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바를 넘는 ‘스트래들’(straddle) 기술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cm의 장신이었던 포스베리는 스트래들 기술로는 큰 성공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높이뛰기의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뒤로 점프해서 등을 굽히며 바를 넘는 포스베리 플롭(flop) 기술을 개발해 내었죠. 무명의 포스베리는 멕시코 올림픽에서 자신의 새로운 기술로 2.24m를 뛰어 올림픽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이후의 높이뛰기 선수들은 스트래들 기술을 포기하고 모두 포스베리 플롭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스트래들은 1988 서울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포스베리의 신기술은 그냥 나왔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과거와는 달리 멕시코 올림픽부터는 높이뛰기 종목에 매트리스가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공중에 솟아올랐다가 맨바닥에 떨어지던 것과는 다른 환경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포스베리는 새로운 환경에 누구보다도 먼저 적응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인내와 노력에 더해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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