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길을 모르면 물어서 가라.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큰길로 가라.
큰 길이 안 보이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라.“
좋은 말 같습니다.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얘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무언가 미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일까? 메모지를 꺼내 다시 읽어봅니다. 모르는 길은 물어야 하죠. 홀로 길을 찾아 여기저기 방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테니까요. 그저 묻기만 하면 되는 것을 말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맞습니다. 당연히 큰길을 찾아야죠.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대로(大路)를 찾아야 방향을 잡기가 좋을 테니까요. ‘군자는 대로 행’이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좁은 길을 쫓아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을 만나던가 아니면 미로에 든 것처럼 뒤돌아 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도 하니까요. 큰길도 안 보이면? 그러네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마지막 말 같습니다. 큰길을 못 찾으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라! 뜻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산길에서도 사람들이 걸은 흔적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들이 다져놓은 길이 편하기도 하지만 결국 어딘가로 통하는 길임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가 되는 걸까요? 내 마음속 아쉬움은 그저 억하심정일 뿐인가요?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이 이끄는 대로 가지 마세요. 오히려 길이 없는 곳으로 가 자취를 남기세요.” 그의 말대로 길이 없는 곳을 걸어 새 길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일까요! 물론 어려운 일이겠죠. 모두가 왼쪽을 가리키는데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릅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걷는데 하늘을 보며 걷다가는 무언가에 부딪혀 넘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왠지 남들이 하는 대로,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직 철부지인 까닭일까요? 가끔 이야기되는 ‘다중화의 오류’도 마음에 걸립니다. ‘다중’(多衆)은 많은 사람들의 무리라는 뜻이겠지요. 여론 조사로 포장된 사람들의 의견, 인터넷 검색어와 댓글의 범람... 하지만 그것들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닐 겁니다. 아니 오히려 왜곡과 과장으로 우리의 판단을 흐려놓아 행동에 오류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실로 이 디지털과 SNS의 시대에는 홀로 앉아 생각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브런치 글도 읽어야지 블로그도 살펴야지 유튜브는 어린 시절 라디오처럼 아예 틀어놓고 삽니다. 온통 남의 얘기만 허공에 가득합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남들의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라’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개인은 없고 다중만이 존재하는 세상, 관계만이 전부인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다른 길로 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난받기 좋겠지요. 그래서 우린 그저 남들의 걸음을 묵묵히 뒤쫓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의 아름다운 들꽃도 보지 못하고 배고픈 고양이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그저 쫓아가기 바쁘니까요.
이제 잠시 멈춰 섭니다. 그만 따라가겠다는 나름의 의지 표명이죠. 그랬더니 불안감보다 죄의식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렇게 배우고 성장했기 때문 아닐까요?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교과서에 늘 함께 같은 시간에 먹고 공부하고 자고 일어났으니 서로들 안 닮고 배길 수가 없지요. 멈춰 선 자리에 한동안 머물러 있게 되는군요. 아직 다른 길로 향할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용기라기보다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방향을 못 잡겠다는 말이 맞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 저질러 보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몇 번이나 더 살아야 할까요. 어차피 내일은 모르는 것 운에 맡겨보지요. 누가 아나요. 다른 사람들이 내 뒤를 쫓아오게 될지 말입니다.
* 브런치 가족 여러분,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