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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4. 2022

예술과 정치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예술이 정치를 위해 봉사한 것도 사실이고 또한 기존 정치에 대한 전복(顚覆)의 역할을 한 것 역시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긴 역사를 통해 예술은 정치적 문제들을 다루어왔고 다양한 사회구조들을 재해석해왔다.


예술가들은 정치적 운동이나 조직에 가담해 활동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정치집단에 참여치 않고 독자적으로 정치적 변화를 모색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술을 이용해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거리 미술가 밴스키(Bansky)는 전쟁, 이민문제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5년 그는 중동의 가자(Gaza) 지역에서 여러 편의 벽화를 제작함으로써 수십 년에 걸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진작시켰으며 이어 프랑스 칼레(Calais) 부근에 일련의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당시의 이민문제를 부각하기도 하였다. 밴스키는 최근 코비드-19 시대에 바이러스와 싸우는 현대의 영웅들을 그리고 있다. 간호사 인형을 든 한 아이의 그림(그림-1, 게임 체인저)에서 아이는 배트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허구의 영웅들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코로나와 싸우는 진정한 현대의 전사인 간호사 인형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이 그림은 최근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262억 원에 낙찰됐다. 경매 전 밴스키는 이 그림을 영국의 한 병원에 소포로 보내 기부 의사를 밝혔다. 최근 그는 우크라니아에서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 벽에 그림을 그려 포스팅하였다.(그림-2) 이러한 작품들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며 또한 어떤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술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1 밴스키(게임 체인저)
그림-2 밴스키(우크라이나)

하지만 예술의 역할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지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술은 현상유지에 대한 어떤 정치적 대안들을 지지하고 심지어 그 대안을 창출하기도 한다. 환경 미술의 경우 재활용이나 환경 친화적 물질에 관한 작품을 만들거나 항공 여행이나 육류 소비의 축소, 분리수거, 에너지 효율성 등 환경 운동의 목표들을 지지한다. 환경 예술가들은 환경 위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작품들을 만들 뿐 아니라 환경문제들을 완화시키고 극복하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래의 그림-3은 마치 핵전쟁의 폐허 위에 살아남은 한 소녀의 처참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환경의 파괴가 초래할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림-3 From Oranki Art Exhibition(오란키 미술전시회 중에서)

예술은 어떤 목적을 위해 대중을 조직화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주변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도록 고취하고 때론 힘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활동들은 언제나 참여적이며 특정 지역의 주민들을 모아 그들의 주변을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나서게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작업들이 계속되어 왔다. 통영의 동피랑, 서피랑 마을에 그려진 많은 벽화들, 정선의 탄광촌을 활용한 삼탄 아트마인(그림-4) 등 주변을 정화하고 예술적 흥취에 젖게 하는 프로젝트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예술가들과 공동체의 협업은 지역 사회의 외관을 변화시킬 뿐 아니라 낙후 지역 내에서 일거리를 창출하고 직업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고용 증진의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림-4

오늘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역사가 된다. 예술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스미스소니언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서는 매년 미국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의 초상화를 당대의 화가에게 위탁하여 영구 보존한다. 그것들은 멋진 미술 작품이기도 하지만 또한 미국 역사의 연대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18년 전시된 버락 오바마와 부인 미셸 오바마의 초상화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흑인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미국 사회 내의 흑인들이 정치적으로 통합된 나라의 국민이 되기 위해 거쳐 온 인고의 세월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예술이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 현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교묘하게 현재의 권력구조를 지지하기 위한 작품들도 존재한다. 때로 예술가들은 어떤 정치 독트린을 지원하는 작품의 제작을 위탁받기도 한다. 이러한 정치 예술은 선전 예술이라 불린다. 그것은 어떤 대의명분을 진작하는 생각들을 확산시켜 현실을 왜곡시키기도 하고, 혹은 그에 반대되는 명분에 타격을 가하기도 한다.(그림-5)

그림-5

선전 미술은 회화, 조각, 대중 미술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그려진 정치 포스터들은 비주얼 아트 부분에서 늘 가장 순수한 형태의 선전으로 간주된다. 선전 예술은 전체주의적 정권과 연결 짓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모든 시대는 나름의 선전 예술을 갖기 마련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사극들 가운데 영국 왕과 관련된 작품들은 모두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치세를 찬양하고 여왕의 왕권을 강화하는 목적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풍자화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는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생경한 패러디들 역시 선전 미술의 일환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와 예술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 모든 것에 대해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뿐 아니라 문학과 연극 심지어 음악에 이르기까지 정치는 예술의 주요한 표현 대상이었으며 생존의 이유이기도 하였다. 예술의 암흑기라 불렸던 중세의 종교 시대에도 예술이라는 이름의 종교 문학, 미술, 음악이 존재한 것은 인간의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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