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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12. 2022

유물론, 역사 유물론 소고(小考)

“누군가를 기다리는 지옥의 불구덩이 같은 것은 없다... 마음은 육체 없이, 살과 피 없이 홀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런 고로 육체가 소멸되면 그것에 퍼져있던 정신 또한 끝이 남을 인정해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대상을 영원과 연결하는 것은 분명 미친 짓이다...” (루크레티우스)


*루크레티우스는 『만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e)』에서 우주의 물리적인 구성에 대하여 기술한 과학자이자 시인이다. 그는 에피쿠로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추종자였으며, 그의 이론은 원자론이었다. 그는 원자와 우주공간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마음이 먼저일까, 육체가 먼저일까? 모든 철학적 명제가 그러하듯 사유(思惟)의 끝은 갈등과 모순과 불확실성뿐일지 모른다. 물과 불의 논쟁이 그렇고,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이 그러하다. 유신론(有神論)과 무신론(無神論) 또한 그렇지 않을까? 눈물과 웃음은 감정의 문제이지만 그 감정의 원천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육체의 반응이 먼저인 것은 아닐까? '물질과 정신'은 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가운데 하나였다. 유물론이라는 광대한 사상체계를 몇 마디의 말로 설명하려는 의도는 없다. 원하는 것은 그 오랜 논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단초를 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의 척박한 생각의 범위를 다시  절실히 느껴보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유물론의 원리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유물론(唯物論)의 기본 명제이다. 이러한 생각을 달리 표현하면 모든 존재는 어떤 형태의 에너지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물질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에너지, 원자, 분자, 힘, 그리고 에너지를 구성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리적이거나 물질적이지 않은 존재는 없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위들도 물리적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뇌(腦)와 분리된 마음은 없으며 그러한 영혼이나 정신 혹은 그러한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물론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감정이나 사상 같은 것들도 인간의 두뇌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행위로 여기고 있으며 이를 기초로 현대의 신경과학이 괄목할 발전을 이루었다고 여긴다.


진화 생물학이나 사회 생물학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든 행위를 물리적인 측면에서 설명한다. 인간은 자극(刺戟)에 반응하게 되어있다. 인간은 종족을 유지하고자 하는 물리적 충동과 진화에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는 교배 행위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타인을 구하려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해준다. 그것은 인류의 유전적 특성과 염색체의 패턴을 지속하려는 욕구인 것이다. 모두 물질에서 비롯됨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유물론은 "오직 물질만이 있다.", 혹은 "만물의 근원은 물질이다.", "정신, 마음은 물질의 작용 혹은 산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모든 실체는 근본적으로 정신으로 구성되었거나 혹은 비물질적이다.”라고 주장하는 관념론(유심론, 唯心論)과 대비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서양 철학을 ‘관념론과 유물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오가는 회의주의의 지속된 투쟁’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단일한 기본적 물질을 강조하는 유물론은 일종의 일원론(一元論)으로 이원론이나 다원론과는 구분된다. 또한 유물론은 자연은 존재하는 전체이며 초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론(自然論, Naturalism)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유물론과 거의 동의어로 쓰이는 물리주의(物理主義, Physicalism)는 단순히 물질보다는 좀 더 정교한 개념 즉 파동이나 미립자(微粒子) 같은 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과학과 더불어 진화되었다.


고대 인도의 카르바카(Charvaka) 학파는 기원전 600 년대에 이미 유물론과 원자론의 이론을 전개하였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Thales),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에피쿠로스(Epicurus), 루크레티우스(Lucretius) 등도 고전적인 유물론의 형식을 정립하였다. 특히 기원전 50년경에 나온 루크레티우스의 저서 ‘사물의 본질’(De Rerum Natura, The Nature of Things)은 유물론 이론의 첫 번째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기독교가 득세하던 중세에는 영혼을 부정하는 것이 죄악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유물론이 다시 등장한 것은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를 거쳐 계몽주의가 시작되던 17세기가 되어서였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가상디(Pierre Gassendi, 1592~1655),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그리고 데니스 디데로(Denis Diderot, 1713~1784)를 비롯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유물론을 주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1770년 프랑스의 철학자 폴 돌바크 남작(Baron Paul d’Holbach)이 익명으로 출간한 ‘자연의 체계’(La Systeme de la Nature, The System of Nature)는 계몽주의 시대 최고의 유물론 관련 저서로 여겨지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루드비히 뷔히너(Ludwig Buechner)의 유명한 저서 '힘과 물질‘(Kraft und Stoff, Force and Matter)은 1884년에 쓰였다. 19세기와 20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 원자 이론의 발전, 신경과학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 등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오늘의 많은 철학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유물론적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 & Historical Materialism)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시즘과 공산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이 용어는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Georg Hegel)의 변증법과 유물론을 합성한 것이었다. 변증법은 어떤 개념이나 사건(正, thesis)은 그 반대의 것(反, antithesis)을 만들어 내고 결국 그 둘은 더욱 발전된 새로운 하나(合, synthesis)로 이어진다는 '정-반-합'의 이론이다. 이러한 변증법이 경제와 같은 물질적 실체에도 적용된다는 가정에서 두 이론이 결합해 변증법적 유물론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원리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에 의해 역사와 사회의 맥락에 적용된 것이 ‘역사적 유물론’이다.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주창되어 사회, 경제, 역사 연구에 쓰이는 하나의 방법론이 되었고 이후 많은 학술 연구에 의해 확장되고 개선되어왔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는 생존을 위해 삶에 요구되는 물질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이 생산은 사람들 사이의 뚜렷한 관계에 기초한 분업(分業)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이루며, 부족 사회, 고대 사회, 봉건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생산의 양식(樣式)에 의해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사회와 그 문화적, 제도적 상부 체제가 단계별로 이동하여 사회적, 정치적 격동 속에서 기존의 지배계급이 새로이 등장하는 계급에 의해 대체되는 정-반-합의 변증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마르크스 자신은 단지 역사 연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라 말했으나 20세기에 이르러 역사적 유물론은 공산주의 이론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인류가 발전시켜온 정치-경제 체제 특히 현대의 자본주의는 변증법에 의해 필연적으로 새로운 체제 즉 공산주의로 이전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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