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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5. 2022

정치적 양극화의 심리학

최근 미국의 뉴욕 타임스와 시에나 대학(Siena College)이 공동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정치의 이념적 분열이 개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유권자 다섯 명 중에 대략 한 명 (19%)이 정치로 인해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그러한 분열은 분노보다는 슬픔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많은 세월 같은 경험과 믿음을 공유한 사람들이 이제는 정책에 대하여, 국정에 대하여 더 이상 동의도, 통일된 주장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 현실 또한 다르지 않다. 우연히 벌어지는 정치 논쟁에서 서로 상대에게 지나친 감정을 분출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종교적 논쟁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논쟁도 피해야 할 주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치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많은 요소들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우리의 생각, 감정, 행위를 숙고하고 어떠한 심리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 심리학회의 보고서에서 분석된 미국의 정치 현실이 우리의 상황과 많은 공통점을 보이고 있으므로 그에 입각해 정치적 신념의 양극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인 커크 슈나이더(Kirk Schneider) 박사는 “정치적 양극화의 핵심에는 실존적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슈나이더는 지나치게 무언가에 고착되거나 분열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고 결국에는 소외되거나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이 양극화의 근원이라면 그것에는 필연적으로 반대하는 상대에 대한 편견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 대학 상담심리학 교수인 타니아 이즈라엘(Tania Israel)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이슈에 대해 극단에 위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듣게 되는 것의 대부분은 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말과 주장이다.” 달리 말해서 사람들은 자신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지도자나 대변인과 동일한 주장과 생각을 갖고있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정치지도자들은 분열을 조장하기 쉬운 입장에 있다. 서로 대립하는 양 측이 더욱 극단적인 입장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상호적 급진화’(mutual radicalization)를 쉽게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대립 속에서 지도자들은 극단적인 분열을 조장하고 그 위에서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도모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한 종류의 지도자들이 득세하게 되면 상호 급진화와 양극화 그리고 사회적 혼란의 가능성은 커지기 마련이다.  


정치적 분열이라는 것이 반대파들에 대한 두려움이나 오해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그러한 오류가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촉진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정치적 분열을 막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균열을 봉합하고 정치적 성향을 넘어 함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분열은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으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슈나이더 교수는 이와 관련해 사회적 정치적 치유를 추구하는 대화 모임을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그 모임에 참가한 1,800명 가운데 79%가 워크숍 후의 조사에서 상대방의 경험, 감정, 믿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75%는 그들에 대해 덜 분노하고 덜 소원한 느낌을 갖게 되었으며 80%가 상대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응답하였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을 줄이는 첫걸음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도 ‘보수와 진보’라는 어설픈 이분법에서 벗어나 서로 간의 정치적 차이를 이해하는 대화 모임이 전문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 군사독재의 경험이나 기득권 부패세력에 대한 오랜 불신과 증오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다 정교한 심리적인 접근이 요구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응어리를 안고 분노와 슬픔에서 헤매는 현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결코 좌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은 결코 흑백으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정치적 신념이 무엇이든 간에 반드시 회색의 영역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의 정치관은 증오해요’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고 같은 이름의 팟캐스트를 운영하는 진 세이퍼(Jeanne Safer) 박사는 정치적 관점을 달리하는 50쌍의 부부를 인터뷰한 뒤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결혼하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즉 누군가를 나의 정치적 입장에 끌어넣으려는 시도는 성공 가능성이 적다는 얘기다. 그녀는 항상 논쟁에 빠져들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 “때론 그저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흑백으로 갈라져 나의 논리만이 옳은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때 상대에 대한 이해의 첫걸음을 뗄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우리는 간혹 상대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누군가의 투표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의 투표가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막연히, 다분히 감정적인 측면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지지에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절대적 정의, 무오류의 확신, 덜 증오하는 대상의 선택 등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판단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일은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상대의 견해에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는 것은 정치적 극간을 좁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소셜 미디어는 간혹 쌍방 간의 효과적인 대화에 제약을 가져오기도 한다. 타니아 이즈라엘 박사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속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의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 이유로 이즈라엘 박사는 중요한 대화는 페이스북이 아니라 실제의 얼굴을 맞대는 대화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란 태생의 심리학자이자 조지타운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파탈리 M. 모가담(Fatali M. Moghaddam) 박사는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의 심리적 기초에 대한 연구에서 직접적인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저 “상대에 대한 경멸이나 압박 없이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라고 권고한다. 정치적 관점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국민으로서 우리는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호 간의 허심탄회한 대화와 협력 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모가담 교수는 그렇듯 상호 존중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공동의 목표를 협력적으로 달성코자 하는 지도자가 있을 때 보다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수백 년 동안 인종 차별의 고난을 겪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라는 위대한 흑인 대통령의 등장으로 그 갈등과 증오의 역사를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이 깊이 생각해야할 지범이다. 


이제 주변을 돌아보라. 대통령 선거 후 6개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결과에 환호하고 절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치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된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상대에 대한 증오와 불신이 우리의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 이제 정치 공학의 영역을 넘어서 심리적, 정신적인 안정감이 요구된다. 모든 전문가 그룹이 나서야 할 때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마음의 단단함과 평화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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