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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02. 2023

위대한 인물, 은밀한 비밀

역사에는 늘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고 있는 고대의 많은 유적들의 장엄함과 화려함 뒤에는 수많은 피지배계급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역사는 위대함의 자리에 잔인함을, 정의의 길에 불의를, 진실의 추구 속에 거짓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역사가 기록한 위인들의 삶에도 추하고 위험한 비밀들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간은 강할 수만은 없는 나약함과 어리석음을 지닌 존재라는 불변의 명제를 다시 확인해 보고자 한다. 내가 그들을 존경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그들 역시 사람임을 더 절실히 깨닫기 때문이다.

에디슨, 피카소, 처칠, 포드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인류의 어둠을 밝힌 성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전적으로 진실인 것만은 아니다. 전기나 전구 등은 거리의 전등에만 존재하는 것이었지 어떤 가정에서도 사용되지 못하였다. 에디슨이 실제로 한 것은 필라멘트에 가장 적합한 재료를 찾기 위해 6,000여 개의 물질을 실험했고 그 가운데에서 탄화대나무를 찾아낸 것뿐이었다. 사실 19세기말의 사회는 스스로에 대한 과장된 평판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퍼뜨리는 일이 비교적 용이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에디슨의 신화와 관련해, 그는 전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3년의 공교육을 받았고 젊은 시절에는 뉴욕에서 화학 교육과정을 밟기도 하였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가장 위대한 현대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파블로 피카소는 개인사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는 두 번 결혼했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고, 수많은 애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발레리나 출신으로 피카소의 첫 부인이었던 올가 코클로바( Olga Khokhlova)는 남편이 17세의 어린 소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 그녀는 이혼을 요구하였지만 피카소는 자신의 재산을 나누게 될 것을 걱정하여 아내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어린 연인을 버리고 사진작가인 도라 마(Dora Maar)와 관계를 맺었으나 곧이어 화가였던 프랑수와즈 질로(Francoise Gillot)에게 빠져버리자 도라는 이에 충격을 받아 정신질환을 앓고 결국에는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피카소는 한 때 질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란 고통을 치유하는 기계들이야. 내게는 두 가지 종류의 여자가 있어. 여신(女神)이거나 발을 닦는 매트거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영국이 나은 가장 위대한 인물로 숭앙되는 윈스턴 처칠은 전쟁 영웅이며 뛰어난 정치인이었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2차 대전 시기(1943~44)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벵갈 지역에서 발생한 극심한 기아(饑餓)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약 400만 명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기근이 급속도로 휩쓸던 이 시기에 영국 정부는 세금을 무려 60%까지 인상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캐나다가 식량을 원조하려 하자 영국정부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고, 호주가 제공한 밀은 전쟁 중이던 영국 병사들에게 돌아갔다. 인도인들에 대한 처칠의 증오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인도인들을 증오한다. 그들은 짐승 같은 종교를 가진 짐승 같은 민족이다. 기근은 토끼처럼 새끼를 낳아대는 그들 잘못 때문이다.”  


헨리 포드(Henry Ford)


오늘날 포드 자동차는 세계 모든 곳을 달린다. 포드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자동차 업계의 선구자이다. 하지만 그의 위대한 발명 뒤에는 수치스러운 역사가 숨어있었다. 그는 신문과 서적들을 통해 나치의 선전선동을 옹호했던 사람이었다. 포드 자동차는 디어본 뉴스페이퍼라는 신문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포드의 유럽 지사에서는 나치의 군대를 위한 장비들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디킨스, 코럼버스, 간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등의 저자인 찰스 디킨스는 18세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자식을 열 명이나 낳은 아내를 버렸다.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그는 미리 그의 아내가 못된 어머니였으며 우울증에 빠져 있어 불가피하게 헤어져야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여러 해 뒤 디킨스의 거짓과 야비한 행동들은 그의 딸이 출간한 전기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당시 이미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것에 대해 과장되게 선전함으로써 자신의 명성을 높이고자 했던 것이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그를 ‘노예 상인이자 독재자’로 알고 있기도 하다. 그는 유럽인들에게 자신의 발견을 입증하기 위해 아메리카에서 25 명의 원주민을 납치해 유럽으로 데려갔지만, 콜럼버스의 약속과는 달리 그들은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인도 독립의 영웅’이라 불리며 비폭력주의의 상징이 되었던 마하트마 간디는 그 자신의 자서전에서 젊은 시절 아내를 구타했음을 언급했다. 또한 욕정과 소유욕으로 많은 난잡한 쾌락을 추구했음을 인정하기도 하였다. 알려진 바, 간디는 스스로의 의지력을 시험하기 위해 벌거벗은 18세 처녀들 둘과 함께 잠자리에 들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가 자신의 아내에게 페니실린을 투여하는 것을 거절하였으나,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키니네의 처방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세상에는 늘 밝음과 어둠이 교차한다. 한 인간의 삶도 명암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서양의 잘 알려진 인물들이 가끔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받은 관심과 존경만큼 그들의 삶에 대한 도덕성과 올곧음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도 다르지 않다. 학식이 높고,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높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자신의 주변을 살펴 스스로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그 평범한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것이 못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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