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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20. 2023

비너스(Venus) 이야기

로마 신화 속의 비너스(베누스, Venus)는 사랑, 섹스, 아름다움과 풍요의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로마 버전인 것이다. 하지만 비너스는 아프로디테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가졌던가 보다. 승리와 다산(多産) 그리고 심지어는 매춘(賣春)의 여신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인 헤시오도스(Hesiod)의 ‘신통기’(神統記,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비너스에 대한 수많은 예술품들은 그녀가 고요한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비너스의 남편은 ‘불카누스’(Vulcan, 불과 대장장이의 신)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편 외의 애인이 있었는데 그가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이다. 비너스와 마르스는 정사 장면을 불카누스에 들켜 침대 위로 그가 던진 그물에 걸리고 만다. 이를 보면 불카누스와 비너스는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자연히 그들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물론 사랑과 섹스의 여신인 비너스가 불임일 리는 없었다. 그는 여러 신과의 사이에서 여러 명의 자녀를 두었으니까. 마르스와의 사이에 티모르(Timor)를 두었는데 그는 두려움(fear)의 화신이었고 종종 아버지와 함께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의 쌍둥이 형제 메투스(Metus)는 공포(terror)의 화신이었다. 그 외에도 조화와 화합의 여신 ‘콘코르디아’(Concordia)와 사랑의 전령으로 잘 알려진 큐피드 (Cupid) 역시 비너스의 소생이었다. 큐피드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로스(Eros)라 불린다. 흥미로운 것은 에로스가 젊고 건장한 청년으로 등장하는데 반해 큐피드는 귀여운 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둘 다 날개를 달고 있었고 활과 화살을 들고 있었지만 말이다. 큐피드는 종종 복수(the Cupids)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들은 각각 사랑의 여러 다른 측면을 대표하고 있기도 하다. 남편을 외면하고 벌어지는 비너스(사랑)와 마르스(전쟁)의 사랑은 가히 현대판 ‘사랑과 전쟁’의 원형이었던 모양이다.


비너스의 남성 편력은 조금 복잡하다. 그리스 신화 속 아프로디테도 헤르메스(Hermes), 제우스 등과 스캔들이 있었지만 로마의 비너스 역시 사랑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는 술의 신 바쿠스(Bacchus)와의 사이에서 우스꽝스러울 만큼 큰 남근을 지닌 것으로 유명한 생식력의 신 프리아포스(Priapus)를 낳는다. 자비의 여신들(The Graces)도 비너스와 바쿠스의 자식들이라는 얘기가 있다.


비너스는 인간들과도 사랑에 빠진다. 대표적인 두 사람이 안키세스(Anchises)와 아도니스(Adonis)이다. 그 외에도 시칠리의 왕 부테스(Butes)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두었고 태양신의 아들인 파에톤(Phaeton)과의 사이에서도 아들을 두었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는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 제10권에서 비너스와 아도니스 사이의 사랑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비너스는 자신이 아도니스를 찾아올 때까지 지옥의 여신 프로세르피나(Proserpina)에게 그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아도니스와 사랑에 빠지자 두 여신 사이에 사랑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제우스가 중재에 나서 아도니스로 하여금 두 여신과 각각 일 년의 1/3 씩 생활하고 나머지 1/3은 두 여신 가운데 원하는 여신과 함께 하라고 결정했다. 아도니스는 그 나머지 시간을 비너스와 함께 보냈다.

비너스와 안키세스의 사랑 얘기는 ‘호메로스 찬가’(Homeric Hymns) 속의 아프로디테(비너스) 편에 나온다. 작자 미상의 이 찬송가집은 그리스 신들에 대한 33편의 찬가를 담고 있는데 시의 운율이 호메로스의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비너스는 트로이의 동맹국이었던 다르다니아의 왕자 안키세스를 유혹한다. 그녀는 프리지아의 공주로 가장하여 그에게 접근하였다. 아홉 달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안키세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에네아스(Aeneas)를 그에게 맡긴다. 그러면서 그녀는 주피터 신의 분노를 사지 않으려면 자신과의 관계를 결코 떠벌이고 다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남자라는 종족들이 어디 가겠는가. 그는 자신이 비너스의 애인임을 떠들고 다니다가 주피터의 벼락에 맞아 불구가 된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Virgil)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에 따르면 비너스와 안키세스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아에네아스가 어머니 비너스의 도움을 받아 로마의 건국을 이끌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이자 알바 롱가(Alba Longa)의 왕이었던 아스카니우스(Ascanius)가 로마의 초대 왕 로물루스(Romulus)와 그의 쌍둥이 동생 레무스(Remus), 그리고 로마제국의 초석을 세웠던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와 로마제국의 제1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Octavianus)를  배출한 율리아 가문(Gens Julia) 등 로마를 창건하고 발전시킨  인물들의 조상이었던 것이다.


비너스를 위한 사원은 기원전 295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로마의 집정관 퀸타스 파비우스 구르게스(G. Fabius Gurges)에 의해 로마의 일곱 언덕 가운데 하나인 아벤티노 언덕(Aventine Hill)에 세워진 이 신전은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여신에 대한 숭배의 일환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기원전 217년 시빌(Sibyl)이라 불리는 여성 예언자들의 신성한 계시들을 담고 있는 ‘시빌 신탁’(Sibylline Oracle)은 ‘제2차 카르타고 전쟁에서 패배한 로마가 카르타고를 지원하고 있던 비너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앞으로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 시칠리아의 도시 에릭스(Eryx)를 포위하고 있던 로마군들은 ‘에릭스의 비너스’ 여신을 위해 멋진 신전을 건축하였고 이후 그곳에 있던 비너스 신상을 로마로 가져오게 되었다. 결국 로마의 ‘어머니 비너스’(Venus Genetrix, Venus the Mother) 상(像)은 바로 이렇듯 이국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머니 비너스’를 위한 신전은 캄피돌리오 언덕(Capitoline Hill)에 지어졌고 상류층들만이 참배할 수 있었다. 이후 기원전 181년과 114년에 ‘에릭스의 비너스’와 ‘마음을 변화시키는 비너스’(Venus Verticordia, Venus the changer of hearts)를 위한 사원들이 평민들을 위해 세워지기도 하였다.

봄과 풍요의 시작인 4월은 비너스의 달이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축제들이 열렸는데 4월 1일에는 ‘마음을 변화시키는 비너스’를 위한 축제가 열렸고, 23일에는 대규모 와인 축제인 ‘비날리아 우르바나’(Vinalia Urbana)가 와인의 여신이기도 한 비너스와 주피터 신에게 바쳐졌다. 또 다른 와인 축제 ‘비날리아 루스티카’(Vinalia Rustica) 역시 두 신을 위해 8월에 열렸다. 이 축제는 비너스 여신과 관련된 가장 오래된 축제로 이는 ‘관대한 비너스’(Venus Obsequens, Indulgent Venus)를 위한 것이었다. 9월 26일은 로마의 수호신 ‘어머니 비너스’를 위한 축제가 열렸다.  


로마제국의 말기에 로마의 귀족과 장군들은 경쟁적으로 비너스의 은총을 추구했다. 로마의 장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Lucius Cornelius Sulla Felix)는 ‘행운의 비너스’(Venus Felix, Venus of Good Luck)를 숭앙했으며 로마 공화정 말기 원로원파의 지도자였던 그나에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Gnaeus Pompeius Magnus)는 ‘승리의 비너스’(Venus Victrix, Venus of Victory)를 위해 사원을 짓기도 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승리의 비너스’와 ‘어머니 비너스’를 숭앙했고,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Hadrian, 76-138)는 ‘영원한 로마의 수호신 비너스’를 위해 사원을 건설하였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에서 트로이의 영웅 아에네아스는 어머니 비너스가 나타내는 하늘의 별 금성의 형태로 로마제국의 근원지인 라티움으로 인도된다. 바로 그 별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영혼을 천국으로 들어 올린 별이기도 하였다.  

비너스의 모습은 조각에서 사원의 모자이크, 심지어 저택의 벽화나 프레스코 등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그 아름다움과 성적인 함의 때문에 비너스는 언제나 나체로 그려지고 있다. 대부분의 조각은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상(Aphrodite of Cnidus)나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와 닮아있다. 하지만 비너스를 다른 모습으로 그린 많은 벽화들이 폼페이에서 출토되기도 하였다. 비너스는 고대에서 르네상스를 걸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제가 되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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