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 피천득
너
피천득
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You
Pi, Chun-deuk
Flying through
The snowstorm,
Fluttering its wings
On a snow-covered branch,
Just sitting there
For a while,
Not lowering
A feather,
Disappearing
Into endless snow,
You
피천득 교수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자작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직 인생을 논할 나이도 지혜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왜 노학자가 자신의 이 시를 좋아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합니다. 폭풍우 같은 세상사 속에 한낱 새 한 마리에 불과한 나와 너의 모습. 눈 덮인 검은 가지에 잠시 앉았다가 떠나는 인생이지만, 앉은자리에 작은 티끌이라도 남기지 말았으면... 그럴 수 있는 인생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한 폭의 풍경 같은 이 시가 나의 삶이길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