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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17. 2023

내 젊음의 낭만과 설움을 기억하며

목마와 숙녀 : 박인환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 메어 우는데


A Wooden Horse and A Lady

                    Park, In-whan


After having a drink

We talk about the life of Virginia Woolf

And the skirt of a lady who rode a wooden horse off.  

Ringing its bell, the wooden horse abandoned his master

And left into autumn. Stars are dropping from the bottle.

Those heart-broken stars are shattered against my breast.


A girl whom I once knew for a short time

Grows beside the plants in the garden.

When literature dies and life goes away,

And even the truth of love throws out the shadow of love and hate,

My loving one on a wooden horse is not seen any more.  


Life comes and goes.

Once withering away from isolation,

Now we have to say good-bye.

Hearing the bottle falling in the wind

We have to look an old woman writer in her eyes.


From the lighthouse...

The light is never seen

But just for the future of cherished pessimism

We have to remember the sound of the poor wooden horse.  


Whether everything leaves or dies

We have to hold fast to our dim consciousness left in mind,

And listen to the sad story of Virginia Woolf.

Like a snake that found youth going through between the two rocks,

We have to open our eyes and have a drink.


Life is not lonely

But just vulgar like the cover of a magazine.

Then what are we so afraid of as to leave?

The wooden horse is up in the sky

And the sound of a bell is heard to our ears,

When the autumn wind is sadly weeping

In my fallen bottle.  


목마는 떠나지 못합니다. 떠나는 것은 그것을 탄 숙녀일 뿐입니다. 상심한 것은 별이 아니라 그 별들이 부딪히는 우리의 가슴이지요. 문학도 삶도 사랑도 다 죽어버린 세상이 미워 내 사랑하는 여인은 목마를 타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빛이 보이지 않아도 목마가 흔든 종소리를 듣고, 꺼져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용맹한 뱀처럼 젊음의 힘을 되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코트 주머니에 돌을 채우고 강물로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처럼 숙녀는 목마를 타고 떠나야 했습니다. 잡지의 표지처럼 흔해빠진 삶 속에서 우린 무엇이 두려워 떠나야 하는지. 저 높은 곳으로 떠난 목마가 남긴 종소리가 들리면 빈 술 병 안에 가을바람만 스산하게 울어댑니다.


20대의 한 때에 우리 귀에 들려왔던 저 낭만적이고 쓸쓸한 시구와 음악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서른에 요절한 젊은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새삼 느껴지기 때문이요, 그 시절 나의 낭만과 설움과 갈망을 다시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QbYZ9SVub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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