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Jul 27. 2024

그냥 닥치고 있으세요!

남편 생존기

전설에 따르면 중세 유럽. 어떤 프랑스 도시에는 결혼한 여성들만이 공유하는 특이한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들은 아침을 준비하면서 남편의 음식에 심각하지 않은 만큼 소량의 독을 넣었어요. 그리고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몰래 해독제를 먹이곤 했다는 겁니다. 남편이 밖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아침에 먹은 독의 영향으로 여지없이 두통과 구토, 우울증에 호흡 곤란까지 겪었죠. 그 관습이 어떤 이유에서 생겼는지 아시겠죠?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중년의 주부들에게는 묘한 감정이 흐르고 있다지요? 아내들은 남편이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오길 바라고 굳이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귀가가 늦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는군요. 하긴 애들 챙기랴 식구들 식사 준비하랴 한국의 주부들은 하루가 고역이니 성가신 남편은 밖에서 식사 해결하고 적당한 시간에 귀가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남편들은 이렇게 천덕꾸러기가 된 걸까요? 다 자업자득입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밥부터 달라고 소리치고 혹시 정리가 늦어 집안이 어수선하면 짜증을 내고 타박도 하지요. 요새 그런 남편이 어디 있냐고요? 모르시는 말씀. 아직도 그런 족속들이 멸종되지 않고 있어요. 말로는 여성의 권리 어쩌고 하지만 일하는 남편들은 아직도 전업주부의 의무가 남편 뒷바라지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주부들에게도 새로운 풍속이 생겨났다지요. 아이들 학교, 학원 보내고 집안 청소 대충 끝낸 뒤 몇몇 친구들과 함께 근처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수다 떠는 일. 뭐 나는 좋다고 생각해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여유와 휴식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니까 말입니다. 퇴직 후 가진 건 시간뿐이라 점심을 먹은 후 읽을 책 한 권 들고 천천히 카페에 가는 일이 종종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주부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좌석이 편하고 전망이 좋은 곳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네 시경쯤 되면 어느새 북적이던 카페가 조용해집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여 있던 중년의 여성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겁니다. 처음엔 의아해했는데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그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거구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학원에서 데려오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카페에는 세 시 넘어서 가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부부라는 관계는 참 묘합니다. 나이가 들어 자식들도 다 출가하고 두 사람만 남으면 갑자기 어색해지기도 하지요. 이거 뭐 아침부터 저녁까지 코를 맞대고 있어야 하니 남편은 그렇다고 치고 아내들은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퇴직하고 들어앉은 남편더러 밖에 나가라고 다그칠 수도 없고. 이제 카페에서 수다 떨 자유마저 상실하게 된 것이니까요. 하긴 자식들이 성장하면 주부들끼리도 공통의 관심사가 많이 줄어들어 대화 거리도 별로 없다고들 하더군요. 자, 주부 여러분. 취미 활동을 시작하세요. 남편 대신 여러분들이 밖으로 나가세요. 주민 센터 강의도 듣고, 노래도 부르고, 요가나 재미를 느낄만한 운동도 하세요. 모르는 소리 말라고요? 남편이 계속 전화하고 밥 달라고 한다고요? 이런 미친...


남편들은 잘 들으세요. 자기가 평생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고 허리가 휘었는데 퇴직했으면 대접을 좀 받아야 하겠다? 웃기지 마세요. 그건 당신들의 의무였어요. 덕분에 자식들을 얻었고, 먹고 자는 것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밖에서 잘 놀았잖아요. 직장 안 나가고 집에서 살림하며 살 수 있었겠어요? 무심하다고 느껴지는 식구들의 태도는 다 당신이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업보예요. 아내가 없으면 혼자 밥 차려 먹으세요. 라면이라도 끓여 자시던가. 가끔 청소도 좀 해놓고요. 빨래도 하던가. 요즘은 전기밥솥, 세탁기에 건조기, 무선 물걸레 청소기 없는 게 없잖아요. 운동 겸 하세요. 아내에게 맘껏 쓸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그래도 아내들은 밖에서도 남편 걱정을 하니까 너무 서운해 마시고.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죠. 미국 시인 가운데 오그덴 나시(Ogden Nash)라는 사람이 있어요. 유머러스한 시를 많이 쓴 사람인데 그의 시 가운데 ‘남편들에게 주는 한 마디’라는 것이 있습니다. 읽어보세요. 아내에게 너무 주눅 들어 살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좀 더 현명해지라는 말입니다. 오해는 마세요. 나도 마찬가지니까! 


남편들에게 주는 한 마디

                  

결혼생활 중에는 

사랑의 컵에 사랑을 가득 채우세요. 

잘못했을 때는 언제나, 그걸 인정하세요.

당신이 옳을 때는 언제나, 그냥 닥치고 있으세요.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를 만나, 하루를 보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