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火)를 낸다는 것은 마음에 불이 붙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일단 불길이 솟아오르면 그것을 끄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화를 낼까? 하루 종일 마음에 평정을 이루고 행복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우리의 화를, 분노를 일으킬 요인이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행복, 슬픔, 불안 혹은 경멸감처럼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고 오랜 역사를 통해 강화되어 왔다. 복수심 역시 분노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복수심은 아주 오래된 인간의 감정이고,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감정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다른 부족의 침략에 대해 복수한 부족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노와 관련된 감정들은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분노는 교감신경 체계가 일으키는 ‘싸워라, 싸워라 아니면 무기력해진다’라는 반응과 연관되어 있다. 그 반응은 인간으로 하여금 싸울 준비를 시킨다. 하지만 여기서 싸움이란 것은 반드시 주먹질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들로 하여금 법률을 변화시키고 규범을 강화함으로써 부정과 싸우는 동인(動因)이 되기도 한다. 불의를 보고 일으키는 분노의 감정은 정의를 세우는 첫걸음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일상 안에서 너무 쉽게, 너무 자주 일어나는 분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손상시키고, 심지어 육체적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로 스스로를 태워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의학에서는 분노의 감정에서 나오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장기적으로 배출되면 판단력이나 단기적인 기억과 관련된 뇌의 신경들을 파괴하고 면역체계를 약화시킨다고 한다. 판단력과 기억, 이 두 가지 마음의 기능은 균형 잡힌 삶을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자질이다. 인간의 비극은 모두 잘못된 판단과, 세월이 가르쳐준 교훈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화를 내는 것이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함으로써 마음의 정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노는 눈물과는 다르다. 울고 싶을 때 실컷 눈물을 흘리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하지만 화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가 있다. 홀로 울고 난 뒤의 고요함보다는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경멸을 남기는 것이 분노이니까.
모든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을 알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극심한 정체를 겪거나 상사로부터 부당한 비난을 받았을 때 당연히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뇌의 작용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노나 그 외의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분노는 순간적이고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노가 켜켜이 쌓이면 증오가 된다. 그것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숨 막히는 분노와 후회와 경멸의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가? 그러한 감정들이 어찌 안정감 있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불쾌감과 분노를 비교적 효율적으로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그것들을 폭발시킨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심리학 교수 제리 디펜바처(Jerry Defenbacher)는 1)분노의 촉발 요인, 2)개인적 성품, 3)상황에 대한 인식이 그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드물다. 부당한 대우, 견딜 수 없는 환경, 원하지 않는 결과 등 분노를 일으키는 촉발 요인들은 수없이 많다. 개인의 성품은 자기애(narcissism), 경쟁심, 좌절에 대한 인내의 결여, 불안감이나 스트레스의 정도 등을 포함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노를 느끼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이 과연 화를 낼만한 일인가? 그런 일이었던가? 화에 굴복한 후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심리학에서는 다섯 가지 근본적인 인격적 자질을 제시한다. 첫째, 개방성(Openness) : 이는 상상력과 통찰력이 수반된다. 이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창의성이라는 것도 이에서 비롯된다. 둘째, 양심(Conscientiousness). 이는 사려 깊음, 충동 조절, 선한 행위 등을 위한 품성이다. 셋째, 외향성(Extraversion) : 이는 말, 주장, 감정 표현 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활동적인 자질이다. 넷째, 유쾌함(Agreeableness) : 이 자질을 가진 사람은 신뢰, 이타성, 친절과 애정이 넘친다. 함께 나누고 상대를 배려하고 협력하는 품성이다. 다섯째, 신경증(Neuroticism) : 이것은 슬픔, 우울, 정서적 불안정 등과 관련된 자질이다. 종종 반사회적 행위와 혼동되기도 하는데 신경증은 일상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위협에 대한 육체적, 정서적 반응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자질들의 정도가 높고 낮음에 따라 분노가 유발될 가능성이 결정된다고 한다. 특히 낮은 행복감과 신경증 등은 분노의 빈번한 유발 요인이 다. 이 다섯 가지의 인격적 자질 외에도 분노를 촉발하는 습관이나 태도들은 다수 존재한다.
우월의식 : 누군가의 권리와 특권이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우월하다는 생각
개인적인 통제 범위 밖에 있는 것에 대한 집착 : 배우자의 행위 등
감정의 외적 조정 : 누군가의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감정을 조정하는 것
통제의 외부적 위치 : 행복감은 자기 자신 밖의 원인에 의해 통제된다는 믿음
나와 다른 관점을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것 : 다른 관점들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
불편함에 대한 인내의 부족
모호함에 대한 인내의 부족
비난에 대한 과도한 집착
나약한 자아
분노를 촉발할 요소들은 도처에 있다. 그것을 피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격적 자질? 우리는 모두 치미는 분노를 조절할 만큼 인격적으로 완성된 존재일 수 없다. 그렇다면 분노는 피할 수 없는 일일까?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최소화할 수는 있지 않을까?우선 가급적 분노를 일으킬 요인들을 피하라. 굳이 복잡한 휴일에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과 일부러 만나야 할 것인가? 물론 꼭 나가야 하고, 만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소화하라는 얘기다. 또한 자신에 대해 깊이 숙고하라. 우월의식에 젖어 나를 존경하고 받들지 않는 사람에게 분노의 감정을 느낀 적은 없는지. 상대의 비난이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에는 도무지 참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황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꼭 화를 내야 하는 일인가? 왜? 무엇때문에 그리 화를 내는 걸까? ‘잔잔한 호수에서 스님이 작은 배에 홀로 앉아 명상에 잠긴다. 얼마 뒤 무언가가 그의 배에 부딪힌다. 그의 고귀한 명상이 방해를 받는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몇 차례 반복되자 참을 수 없던 스님이 눈을 뜨고 소리친다. "도대체 누가?" 아무도 없다. 물 위를 떠다니던 빈 배가 부딪쳤을 뿐이었다. 스님이 중얼거린다. “아! 분노는 내 안에 있는 것이구나.” 그는 새삼 깨달음을 얻는다.’
스님이 아니더라도 이 정도는 우리도 깨닫는 것이겠지. 내게 쓰레기를 던져도 내가 받지 않으면 쓰레기는 나의 것이 아니다. 스치는 바람에도 화를 내어서야 어디 부끄러워 살 수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