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천성이 게으른 탓도 있지만 어딘가에 대한 기대나 호기심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래도 제법 여러 곳을 다닌 이유는 내가 근무했던 대학의 국제교류 덕분이었다. 외국 대학들과의 교류를 위해 여러 대륙의 도시들을 방문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가운데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은 곳은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이르쿠츠크라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담수호 바이칼 호를 품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네 번이나 방문했다. 이르쿠츠크 국립대학과의 교류가 한국, 러시아, 일본, 중국 네 나라 대학의 학술교류로 확대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흐뭇한 것은 학술대회에 참여한 외국 대학들과의 관계를 모두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냈던 점이었다.
이르쿠츠크 대학은 행사가 끝난 뒤 늘 호수에 배를 띄워 외국 손님들을 환대해 주었다. 덕분에 그 유서 깊은 호수를 네 번이나 유람할 수 있었으니 내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석양 무렵의 바이칼 호수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다와도 같던 그 호수에 서식하는 ‘오물’이라는 생선을 보드카 한 잔에 맛보는 것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벌써 20년에 가까운 예전의 일이다. 호수 주변에는 선사시대의 유물을 보존하는 곳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농기구라던가 토기의 모습이 우리의 고대 흔적과 닮아있었다. 한민족의 조상이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다던가...?
사실 나는 이렇듯 일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어느 곳을 가든 나는 그곳이 새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으니까. 마치 오래전에 와 본 것 같거나 한 동안 살았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곤 했던 것이다. 또한 방문했던 유명한 유적지나 박물관 등에 대해서도 별 특별한 기억이나 감동은 없다. 순전히 나의 무지나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을 터이니 새로운 곳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참 한심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 여행들을 통해 사진첩처럼 열어볼 추억의 조각들이 남아있음은 다행이라 느끼기도 한다.
“해변을 돌아보지 않을 용기가 없다면 바다를 볼 수는 없다.” 소설 ‘좁은 문’을 쓴 앙드레 지드의 말이다. 떠남은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하나의 모험과도 같은 것이니까. 그 여행의 길에 얻어지는 사연과 추억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러니 나는 그 멋진 경험과 기억을 스스로 억누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막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자꾸 해변만을 뒤돌아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젠 돌아볼 해변도 아득하다.
잠시 한 때의 여행들을 떠올리며 나는 부질없이 상념에 잠긴다. 니스의 해변보다는 밤거리의 리어카상들, 고흐의 노란 집을 연상시키는 작은 모텔들이 더 정겨웠지. 언덕을 한참 오르다 만난 마티스 미술관 그리고 그 길을 따라내려가다 발견한 샤갈 미술관. 그곳 벤치 위에서 한참 잠이 들었던 기억들... 카를교(橋) 보다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거리에서 노래하던 프라하의 아가씨가 더 기억 속에 남아있다. 벨라루스의 황금빛 낙엽과 지평선, 벨기에에서 먹었던 홍합요리, 오스트리아 빈의 거리에서 음악회를 선전하며 호객하던 가발 쓴 슈베르트들, 베니스의 오래된 건물 입구에서 코앞까지 찰랑이던 물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있던 시간들...
그 모든 것이 꿈결 같다. 오래전 꿈처럼 헤매던 도시와 자연 속의 미로들. 그것들은 이제 내 기억에 희미하게 존재할 뿐이다. 바람처럼 스치는 영상들을 떠올리며 아련한 추억에 젖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떠오르는 얼굴. 이르쿠츠크 대학 샤닌 부총장 그리고 영어로 그와의 대화를 통역하던 그의 딸 마리아... 샤닌과 나는 동갑이었다. 친구였고 파트너였다. 앙가라 강가 러시아식 사우나에서 자작나무 가지로 내 벗은 몸을 두드리며 지었던 그의 미소, 그 모습이 그립다. 여행에 별 감흥이 없던 내가 이제 기억 속에서 지난 여행을 반추한다. 그것이 아마도 여행의 역설, 인생의 역설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