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셸리, 키츠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1788~1824), 남작의 아들로 태어난 바이런은 귀족의 이름 앞에 붙는 경칭을 사용해 흔히 '바이런 공(Lord Byron)으로 알려져 있다. 널리 유럽을 여행하였고 특히 7년 동안 이태리에서 거주하였다. 이후 그리스 독립운동에 참여해, 그리스인들에게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기도 하다. 열병에 걸려 서른여섯의 이른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그의 삶은 방탕과 방종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유명인사였지만 낭비벽으로 엄청난 빚을 지기도 했으며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하였다. 그는 양성애자로 알려져 있었고, 그런 이유로 세간의 비난과 혹평을 피할 수 없었다.
준수한 외모였지만 바이런은 선천적으로 발이 굽은 기형이었고 그로 인해 다리를 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지극히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이었다. 청년 시절 그의 무절제한 삶과 방황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극히 반항적이고 저항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어서 문학용어로 ‘바이런적 영웅’(Byronic Hero)이라는 말은 맹렬한 저항의식에 사로잡힌 아웃사이더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
바이런은 풍자적인 시, 저항의 시를 썼지만 또한 아름다운 사랑과 애절한 이별의 시도 남기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돈 주앙’(Don Juan)은 그의 죽음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밀튼의 ‘실낙원’ 이래로 영어로 쓴 가장 뛰어난 시로 여겨지고 있다. 다음에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그린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She Walks in Beauty)를 소개한다.
별이 총총한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처럼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가장 멋진 어둠과 빛은 모두
그녀의 얼굴과 눈 속에서 만나고,
빛나는 낮의 하늘은 주지 못하는
부드러운 빛으로 은은히 깊어진다.
그늘 한 점이 더하고 빛이 한 줄기만 덜했어도
새까만 머리칼마다 물결치고
혹은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밝혀 주는
형언할 수 없는 그 우아함을 절반은 해쳤으리라.
그녀의 얼굴에선 상념이 고요히 감미롭게 솟아나
그 보금자리, 그 얼굴이 얼마나 순결하고 사랑스러운가를 말해 준다.
저 뺨과 이마 위에서
부드럽게, 고요하게, 하지만 힘차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소, 환히 피어나는 얼굴빛은
말해 준다. 착하게 보낸 지난날을
이 땅의 모든 것과 화목하는 마음,
순결한 사랑이 깃든 마음을. (24)
바이런이 상복을 입은 사촌 누이를 보고 썼다는 이 시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걸음걸이, 부드럽고 은은한 표정, 우아함, 순결함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미소와 환한 얼굴빛, 그리고 모든 것과 화목하고 사랑하는 마음. 한 여인의 아름다움이 이 모든 것들로 표현된다면 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눈에 띄는 외모만을 선호하는 오늘의 미적 기준 속에서 바람둥이 바이런마저 흠모했던 여인의 아름다움은 너무 고전적 일지 모른다. 여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 사랑은 여인의 마음과 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내적 아름다움임을 바이런의 시는 얘기하고 있다.
퍼시 비시 셸리 (Percy Bysshe Shelley, 1792~1822), 서른 살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시인 셸리. 그는 기존의 관습, 제도, 종교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가한 극단적 이상주의자였다. 살아서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지만 죽은 후에 그에 대한 평가는 꾸준히 높아졌고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시인이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출판업자들은 셸리가 신성모독이나 반란 혐의로 체포될 것을 우려해 그의 시를 출판하길 꺼렸기 때문에 그의 시는 주로 지하에서 골수 독자들에 의해 암송되었다고 한다. 또한 경제나 도덕에 대한 그의 파격적인 개념들은 칼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고, 비폭력 저항에 대한 초기의 작품들은 톨스토이와 마하트마 간디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의 제목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는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그리스어 이름으로 역사의 무상함, 시간의 파괴성을 그려내고 있다. ‘서풍에 바치는 송가’(Ode to the West Wind), ‘종달새에게’(To a Skylark) 등의 시뿐만 아니라 희곡 작품들과, 문학에 관한 에세이 '시의 옹호'( A Defence of Poesy)를 쓰기도 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을 쓴 메리 셸리(Mary Shelley)가 그의 두 번째 부인이다. 그의 시 ‘Music, When Soft Voices Die’는 우리로 하여금 사라져 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해 떠오르게 한다.
음악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사라져야
기억 속에 울려 퍼집니다.
향기는, 아름다운 바이올렛 꽃이 시들고 나서야
그것이 깨어놓은 감각 속에서 살아납니다.
장미꽃잎은 장미가 져야
사랑하는 이의 침상에 덮이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 그것은 당신이 떠나고 나서야
당신 생각에 기대어 잠이 듭니다. (25)
존 키츠 (John Keats, 1795~1821), 키츠는 그의 시가 처음 출간된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그 역시 죽은 후에 인정을 받게 되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가장 사랑받는 시인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현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키츠의 시를 처음 만났던 것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문학적 경험”이 되었다고 말한다.
키츠의 시는 감각적인 이미저리와 그를 통한 극단의 감정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뛰어난 음악성과 언어적 기교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시는 오늘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의 시와 서신들은 문학적인 측면에서 꾸준히 분석되고 있다. ‘프시케에게 바치는 송가’(Ode to Psyche), ‘나이팅게일에게 바치는 송가’(Ode to a Nightingale), ‘그리스 유골단지에 바치는 송가’(Ode to a Grecian Urn) 등의 시를 썼으며, 셰익스피어 소네트 형식의 ‘빛나는 별이여’는 사랑에 대한 염원, 영원불변의 세계에 대한 낭만적 동경과 갈구를 표현하고 있다.
빛나는 별이여, 내가 너처럼 변치 않는다면-
밤하늘 높은 곳에 걸린 채 외로운 광채를 발하며,
마치 참을성 있게 잠을 자지 않는 자연의 수도자처럼,
영원히 눈을 감지 않은 채,
출렁이는 바닷물이 종교의식처럼
인간이 사는 육지의 해안을 정결하게 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혹은 산지와 황야에 새롭게 눈이 내려서
부드럽게 덮인 것을 응시하는 그런 별이 아니라-
그런 게 아니라- 여전히 한결같이, 변함없이,
아름다운 내 연인의 풍만한 가슴에 기대어,
가슴이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것을 영원히 느끼면서,
그 달콤한 동요 속에서 영원히 잠 깨어,
평온하게, 움직임 없이 그녀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영원히 살았으면- 아니면 차라리 정신을 잃고 죽기를. (26)
하늘의 찬란한 별처럼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 하지만 시인이 원하는 별은 높은 하늘에서 만물이 움직이는 것을 굽어보는 그런 절대의, 무한의 존재로서의 별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 안겨 느끼는 그 평화로움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을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의 별이다. 키츠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지만 병약하여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간절한 바람을 성취하는 것보다, 작은 소망 속에 사랑과 함께 숨 쉴 수 있기를 바라는 소박한 갈망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더 가슴 아프다. 찬란한 별이 작은 행복으로 바뀌는 마술과도 같은 시이다. 하지만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삶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찾아올 죽음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것이 결국 인간의 삶이니까.
English Texts :
She Walks in Beauty
by Lord Byron
She walks in beauty, like the night
Of cloudless climes and starry skies;
And all that's best of dark and bright
Meet in her aspect and her eyes:
Thus mellow'd to that tender light
Which heaven to gaudy day denies.
One shade the more, one ray the less,
Had half impaired the nameless grace
Which waves in every raven tress,
Or softly lightens o'er her face;
Where thoughts serenely sweet express
How pure, how dear their dwelling-place.
And on that cheek, and o'er that brow,
So soft, so calm, yet eloquent,
The smiles that win, the tints that glow,
But tell of days in goodness spent,
A mind at peace with all below,
A heart whose love is innocent! (24)
Music. when soft voices die...
by Percy Bysshe Shelley
Music, when soft voices die,
Vibrates in the memory
Odours, when sweet violets sicken,
Live within the sense they quicken.
Rose leaves, when the rose is dead,
Are heaped for the belovèd's bed;
And so thy thoughts, when thou art gone,
Love itself shall slumber on. (25)
A Sonnet
by John Keats
Bright star, would I were stedfast as thou art—
Not in lone splendour hung aloft the night
And watching, with eternal lids apart,
Like nature's patient, sleepless Eremite,
The moving waters at their priestlike task
Of pure ablution round earth's human shores,
Or gazing on the new soft-fallen mask
Of snow upon the mountains and the moors—
No—yet still stedfast, still unchangeable,
Pillow'd upon my fair love's ripening breast,
To fee l for ever its soft fall and swell,
Awake for ever in a sweet unrest,
Still, still to hear her tender-taken breath,
And so live ever—or else swoon to death.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