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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17. 2020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셰익스피어 인문학 : 헛된 사랑의 진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그리스 왕자 메넬라우스의 아내인 아름다운 헬렌을 납치한다. 그것이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으로 비화하고 두 나라는 칠 년 간 전투를 이어간다. 극은 그리스 군이 트로이 성벽 앞에 진을 친 채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 아가멤논의 지휘를 받던 그리스 연합군은 내부의 분란을 겪고 있었다. 그리스의 장군 아킬레스가 전투에 나서기를 거부하고 그의 동성 애인 파트로클루스와 군막에만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군의 책사였던 율리시즈는 아킬레스와 라이벌 관계에 있던 아작스를 이용해 그를 다시 전투에 임하게 하려고 계획한다. 그리고 아작스로 하여금 트로이의 헥토르 왕자를 상대하게 한다.    


한편 트로이에서는 헬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계속할지 아니면 그녀를 그리스로 돌려보낼 것인가로 의견이 나뉘어 있었다. 헥토르는 헬렌을 위해 많은 병사의 목숨을 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반면 그의 동생 트로일러스 왕자는 트로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헬렌을 돌려보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헥토르는 트로일러스의 의견에 동의하고 전쟁은 계속된다.     


아작스와 헥토르의 전투 첫날 두 영웅의 대결은 서로에 대한 경외심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두 장수의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트로일러스는 크레시다와 사랑에 빠져 전쟁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막 1장에서 트로일러스는 이렇게 말한다. “크레시다의 침상은 인디아예요. 그녀가 거기에 놓여있죠. 진주처럼 말입니다.” 크레시다는 그리스 군에게 투항한 트로이의 사제 칼카스의 딸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리스 군영으로 탈출한 후 홀로 트로이에 남아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을 도왔던 것은 크레시다의 숙부 판다루스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버지 칼카스의 제안으로 크레시다와 그리스의 장군 만테노를 교환하기로 되었기 때문이었다. 크레시다는 그리스 행을 거부하였지만 정치적 거래로 결정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상심한 트로일러스를 향해 자신의 사랑과 헌신을 맹세하고 크레시다는 그리스로 향한다.     


크레시다를 그리워하던 트로일러스는 칼카스의 군막으로 잠입한다. 하지만 크레시다가 자신과의 언약을 깨고 그리스의 왕자 디오메데스의 연인이 된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 사이의 밀회 장면을 엿본 트로일러스는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를 다짐하며 트로이로 돌아간다. 한편 그리스 측에서는 트로이의 헥토르를 상대하여 아작스를 전투에 내보내 아킬레스의 호승심을 자극하려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헥토르와 아작스의 싸움은 결과 없이 끝나고 만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헥토르는 여동생 카산드라의 불길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나선다. 그때 아킬레스는 자신의 동성 연인 파트로클루스가 전투에서 죽은 것을 알고, 그의 복수를 위해 전장으로 나간다. 첫 전투에서 헥토르를 이기지 못한 아킬레스는 계략으로 그를 함정에 빠뜨리고 헥토르는 비무장의 상태에서 살해된다. 아킬레스는 그의 시신을 트로이의 성벽 주변으로 끌고 온다.   


이제 트로이의 패배는 자명해진다. 형 헥토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 크레시다에 대한 분노에 휩싸인 트로일러스는 그리스와 아킬레스를 향해 복수를 맹세한다. 병에 걸려 죽어가던 판다루스가 냉소적인 말투로 극이 끝났음을 알린다.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Troilus and Cressida)는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와 더불어 셰익스피어의 ‘문제극’이라고 불린다. ‘문제극’이란 용어는 원래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이 19세기 말의 새로운 경향이었던 ‘사실주의’의 주제나 등장인물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에 타협하거나 저항하는 극의 특성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 가운데 ‘비극’이나 ‘희극’ 혹은 ‘사극’으로 쉽게 분류되지 않는 작품들을 ‘문제극’의 범주에 포함하였다. 사실 해피엔딩과 결혼으로 끝나는 희극이나 죽음과 몰락으로 끝나는 비극 안에서조차 그 분류에 반대되는 영역에 속하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베니스의 상인이었던 주인공(프로타고니스트) 안토니오의 입장에서는 희극적 결말을 맞이하지만, 작품의 안타고니스트인 샤일록의 경우는 분명 비극적 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러한 ‘희비극’적 요소는 언제나 셰익스피어 작품을 단순히 희극이나 비극으로 분류하는 것을 어렵게 했던 것이다.    

  

이렇듯 장르의 구분이 모호했던 까닭에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셰익스피어의 시대에 무대에 올리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퇴색한 사랑의 의미, 전쟁 속 영웅들의 정치적 모략이나 책략 등, 관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작품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풍자극’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풍자는 ‘사악함, 어리석음, 부적절함, 학대, 그리고 모든 종류의 그릇된 행위를 폭로, 비난하고 비웃고 조롱하기 위해 냉소, 아이러니, 해학 등을 사용하여 말하거나 쓰는 것’을 의미한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을 통해 당대의 교활한 정치와 무의미한 전쟁, 영웅의 허상, 그리고 욕정에 사로잡힌 허망한 사랑을 풍자하고 있었던 것이다.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에섹스 백작의 반란 음모 직후인 1602년경에 써진 것으로 추정된다. 에섹스 백작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았고, 여왕의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인물이었지만 반역자로 목이 잘리는 운명을 맞는다. 셰익스피어는 극 속의 아킬레스와 비유되는 에섹스 백작의 몰락을 풍자했던 것으로 보인다. 엘리자베스 시대 연극에 대한 엄격한 검열제도를 고려할 때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백작의 반란 시도에 대한 조롱이었음이 분명하다.    

  

트로이의 책사였던 율리시즈 또한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아작스를 이용해 아킬레스를 조종하고 트로일러스에게 크레시다의 변심을 알게 하여 그를 격동시킴으로써 그리스를 향한 극한의 적대감을 끌어내어 무모한 전투를 치르게 한다. 뛰어난 웅변가이자 계략가인 그는 자신의 책략으로 트로이를 전쟁으로 끌어들여 결과적으로 그리스의 승리를 이끌어낸다. 또한 그는 그리스 연합군의 분열을 경고하면서 아가멤논에게 이렇게 간언 한다.    

“벌들이 일하지 않는 벌집에서 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대열이 지켜지지 않으면 최악의 것이 최고의 것보다 나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별들도 질서를 존중해 하늘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태양의 주변에 

일렬로 서는 것입니다. 태양은 왕과도 같은 것이죠. 별들의 그릇된 운행을 교정하여 

무질서를 막으니까요. 별들이 멋대로 움직이면 역병, 폭동, 폭풍, 지진과 사나운 돌풍처럼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교활한 율리시즈와 그에 조종되는 아킬레스라는 인물들을 통해 영웅과 전쟁에 대한 고전적 믿음에 도전하고 있기도 하다. 무의미한 전쟁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유일한 인물은 헥토르뿐이었다. 2막 2장에서 헥토르는 이렇게 말한다. “헬렌을 보냅시다. 이 전쟁을 시작한 이래 희생된 수천의 병사들 하나하나가 헬렌만큼이나 중요하지요.”     


헥토르는 전쟁의 엄중함, 그리고 한 여인과 트로이의 자존심을 위해 초래될 손실에 대해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아킬레스의 계략에 의한 헥토르의 죽음은 전쟁의 영광이라는 환상을 부수고,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전쟁 신화의 영웅들은 단지 유혈 낭자한 전쟁의 환영에 빠진 존재들일뿐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를 통해 전쟁의 허상을 그려내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모습은 언제나 영원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합일은 결혼으로 완성된다.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에서 표현되는 두 사람의 사랑은 셰익스피어가 그려온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결을 달리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결혼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트로일러스는 처음부터 크레시다에 대한 육체적 욕망만을 표현한다. 그를 크레시다와 묶어준 판다루스나 심지어 크레시다 자신도 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들이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트로일러스가 몰래 잠자리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크레시다는 ‘내가 싫증이 났나요?“(4막 2장)라고 묻는다. 육체적 욕망이 충족되고 난 후의 남자에게 묻는 여인의 불안한 질문에 다름 아니다. 1막 2장에서 숙부 판다루스에게 한 말에 대한 확인처럼 들린다.    


"남자가 구애를 할 때는 여자를 천사처럼 다루지요. 

하지만 여자를 차지하면 당연한 것으로 대하게 되거든요. 

제일 좋은 것은 구애를 받을 때라고요. 

사랑을 받아본 여자들은 누구나 알고 있죠: 

남자들은 가치 있는 것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더 원한답니다. 

여자는 남자가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할 때 가장 좋은 거죠...

그러니 마음으로 간절히 사랑한다 해도 남자에게 사랑을 드러내지는 않을 겁니다." 

(크레시다, 1막 2장)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에서 사랑의 맹세는 의심의 대상일 뿐이다. 4막 2장에서 그리스로 가야 한다는 판다루스의 말에 크레시다는 이렇게 외친다.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내 뺨에 상처를 내어 목이 쉬어라 울부짖을 겁니다. 상심에 빠져 트로일러스의 이름을 부르겠죠. 난 트로이를 떠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달랐다. 크레시다는 그리스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에게 구애하는 또 다른 남자 디오메데스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어차피 남자의 사랑은 거짓과 욕심뿐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3막 2장에서 그녀는 트로일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약속을 한다던데요. 

그나마 할 수 있는 것도 다하지 못하고. 

열 번을 약속하면 한 번이나 지킬 수나 있으려나. 

사자처럼 말해놓고 토끼처럼 행동하는 것은 너무 웃기지 않아요? “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사랑에 빠진 여인들과는 달리 크레시다는 남자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어떤 남자의 구애도 그 순간을 즐길 뿐이었을까? 크레시다와 디오메데스와의 밀회를 지켜보던 트로일러스는 그녀를 향해 한 때 자신의 것이었던 여인이라고 말한다. 사랑은 누군가의 소유일 수는 없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결혼을 이야기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랑의 영속성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에서 사랑은 육체적 충동으로 전락한다. 이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극 속에 표현했던 사랑의 가치들을 전도시킨다. 그리고 전쟁과 음모, 정치적 책략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과연 진정한 사랑은 가능한 일인가를 묻고 있다. 트로일러스의 쓰라린 외침처럼 이 혼탁한 세상에 진실은 존재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말, 말, 그저 의미 없는 말일뿐. 그녀의 말과 진실은 다른 것일 뿐이야.”.(5막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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