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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16. 2020

줄리어스 시저, 권력과 배신

“브루투스, 너마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는 로마가 제국이 아닌 공화국이었던 시대, 욕망과 배신 그리고 치열한 권력투쟁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막이 오르면 로마의 군중들이 시저의 개선에 환호하기 위해 모여든다. 마침내 시저가 원형의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한 남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경고한다. “3월 15일(Ides of March)을 주의하시오.‘ (1막 2장)    


원로원의 일원이었던 가이우스 카시우스와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공화정 내에서 시저가 누리고 있는 거대한 권력을 걱정한다. 로마의 시민들이 시저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그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었다. 사람들은 시저를 마치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아래서, 자신도 역시 뛰어난 장군이었던 카시우스는 마음속으로 시저를 시기하고 있었지만 브루투스는 정치 문제에 있어 좀 더 균형 있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시저의 정적이었던 카스카가 등장해 브루투스에게 평민들이 벌이는 시저에 대한 환영식에 대해 알린다. 그들은 벌써 세 차례에 걸쳐 시저의 황제 즉위를 청하고 있었다. 시저는 그때마다 거절의 뜻을 밝히고 있었지만 로마의 제국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여전히 그의 야심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시우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시저의 권력욕을 드러내는 거짓 서류를 꾸며 브루투스를 격동시킨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브루투스를 집으로 찾아가 그를 설득한다. 브루투스는 현실과 이상, 의리와 명분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마침내 시저를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운명의 날, 시저의 아내 칼푸르니아는 지난밤의 불길한 꿈 얘기를 하면서 남편에게 집에 머물기를 간청한다. 하지만 시저는 이렇게 말한다:    


Cowards die many times before their deaths;

The valiant never taste of death but once.

겁쟁이들은 죽음을 맞이하기도 전에 여러 번 죽어요.

하지만 용맹한 사람은 단지 한 번 죽음을 맛보지요. (2막 2장)    


아내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원로원으로 나간 시저는 결국 암살자들이 휘두르는 칼에 찔려 살해된다. 그리고 브루투스에게 마지막 일격을 당하며 부르짖는다.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 3막 1장) 시저의 장례식에서 브루투스는 카시우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난 군중들 앞에 선다. 그는 시저의 권력에 대한 야망을 설명하고 자신들이 시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브루투스 연설 가운데 잘 알려진 구절이다:     


Not that I loved Cæsar less, but that I loved Rome more.

내가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죠. (3막 2장)     


군중들은 브루투스의 설명에 공감하여 시저의 권력욕을 비난한다. 그때, 안토니가 나서 암살자들의 살해 동기에 의문을 표하고 시저의 자비로움과 함께 그가 황제의 자리를 거부했음을 말한다. 그리고 시저의 유서를 공개하며 그가 로마의 시민들에게 그의 땅과 돈을 남겼음을 알린다. 안토니의 연설은 군중들을 격동시켜 폭동으로 이어지고 시저의 살해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도주하게 된다. 다음은 안토니의 연설 가운데 한 구절이다.      


Friends, Romans, countrymen, lend me your ears;

I come to bury Cæsar, not to praise him.

The evil that men do lives after them;

The good is oft interred with their bones;

So let it be with Caesar.

친구들, 로마인들, 나의 동포들이여, 잠시 귀 기울여 주시오.

나는 시저를 묻으러 왔지 그를 찬양하러 온 것이 아니요.

인간의 죄악은 죽은 후에도 살아남아 있지만

그의 선한 행동은 뼈와 함께 묻히는 법

그러니 시저도 그렇게 되겠지요. (3막 2장)       


로마에서 탈출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그리스의 북부에서 군대를 모아 안토니의 군대와 맞설 준비를 한다. 안토니는 시저의 조카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와 함께 연합군을 결성한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전쟁의 결과에 대해 회의를 품고, 심지어는 병사들에게 지급할 급료 문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가까스로 분열을 피한 두 사람은 필리피에서 안토니의 군대와 대결한다. 한편 브루투스는 아내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되지만 짐짓 냉정하게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전투 전 날 그는 시저의 유령을 보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전투의 초기에는 공화정을 지지하는 브루투스의 군대가 그런대로 안토니의 연합군을 상대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카시우스의 전령이 적에게 생포되는 일이 벌어지자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한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카시우스의 시신을 본 브루투스는 자신의 명예를 지킬 마지막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안토니는 브루투스를 가리켜 ‘가장 고귀한 로마인’으로 칭송하며 그의 장례를 성대히 치를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와 함께 로마를 통치하게 된다. 이른바 삼두정치의 시작이다.    


‘줄리어스 시저’는 배신의 극이다. 시저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측근 브루투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한다. 무려 서른세 번을 칼로 찔린 채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로마 최고의 권력자는 그렇듯 허무하게 숨을 거둔다. 1599년에 나온 이 극은 셰익스피어의 극작 활동 기간으로 보아 중기의 작품에 속한다. 시저의 암살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과 그의 사후 벌어진 내전 등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 극은 런던에 세워진 ‘글로브 극장’에서 공연된 첫 연극이기도 했다. 이 시기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왕들과 관련된 그의 사극(Histories)들을 완성한 상태였다. 그가 그 시점에서 로마의 역사를 꺼내 든 것은 당시 영국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1599년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1558년 재위한 이래 벌써 40여 년의 통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독신이었던 까닭에 여왕은

확실한 후계를 두지 못하고 있었고, 궁정의 신하들은 여왕의 사후에 있을 수 있는 정치적 혼란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줄리어스 시저‘는 시저의 죽음 이후 내전에 빠졌던 로마의 상황에 빗대어 후계 없는 영국 왕실의 혼란을 걱정하는 민심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플루타르크의 ‘줄리어스 시저의 생애’라는 전기를 작품의 원전으로 삼았는데, 이 전기는 1579년 토머스 노스 경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르네상스의 물결 속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엄청난 관심과 동경으로 고대의 문헌들은 셰익스피어 시대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과 세계를 반영하는 지침과도 같은 것이었다.     


군중 심리라는 것은 지극히 유동적이다. 시저는 로마의 대장군이었고, 모든 정복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다. 로마 시민들은 그를 숭배했고,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를 갈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후 브루투스의 연설 하나에 그들은 시저를 권력에 굶주린 자로 비난하며 브루투스의 행위를 찬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중은 또다시 흔들린다. 안토니의 시저에 대한 연설을 들은 뒤 그들은 시저의 관대함과 자신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를 살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일당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들을 내몰아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렇듯 언어의 힘은 군중의 심리를 교묘히 조종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선과 악, 영웅과 반역자를 뒤바꿔 놓는다.        


‘줄리어스 시저’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개념들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그 하나가 ‘불길한 징조’이다. 합리적 인과관계에 천착하는 오늘의 과학문명 속에서도 우리는 늘 부정적인 예감과 불안한 전조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저는 ‘3월 15일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무시한다. 그리고 심장이 사라진 희생양의 꿈을 꾼 아내의 간청도 가볍게 여긴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시저는 유혈이 낭자했던 암살의 목표가 된다. 과연 예감과 징조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 시저의 사건 후 2,00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오늘날에도 그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은 없다.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한 무의식과 본질적 두려움은 그래서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인간의 본성이 된다. ‘줄리어스 시저’는 권력을 두고 벌이는 정치적 암투 외에도 불안이라는 가장 취약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나약함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그의 내면이 다른 것은 고대의 문학에서 뿐 아니라 현대의 심리학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렇듯 충성스러웠던 맥베스가 ‘왕이 되실 분’이라는 마녀의 한마디에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된다. 강인함으로 아테네의 궁전에서 위대한 장군으로 존경받던 오셀로 장군은 부하의 계략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사랑한 정숙한 부인 데스데모나의 목을 조른다.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그들을 돕던 아테네인 타이몬은 인간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 속에 생을 마감한다. 인간은 원래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나약하고 이중적인 존재이다. 시저도 그러했다. 그는 전쟁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도 약점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미신을 믿었고, 간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자신의 암살에 참여한 브루투스를 보며 배신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나약한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승리만을 추구했던 그였지만 그 내면에는 한 인간으로서의 약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브루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로마가 공화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상을 지키고, 시저의 야심을 막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그의 살해에 동참하였지만, 브루투스의 강한 모습 뒤에는 자신의 행동을 확신하지 못하고 번민하는 한 인간이 보인다. 그는 아내의 자살 소식을 접하자 깊은 비탄에 잠긴다. 그러나 그때 군막 안으로 부하가 들어오자 자신의 감성적인 모습을 감추고 짐짓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쓴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역사 속의 어떤 위인도, 문학 속의 어떤 영웅도 인간적인 나약함을 지니고 있어 더 슬프고 더 애처로운 것은 아닐까.                  


시저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야망은 브루투스를 배신으로 이끈다. 카시우스도 야심이 컸으나 그는 시저의 권력을 시기하고 그를 죽여 더 큰 권력을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시저의 위대성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결국 그들이 지닌 야심으로 인해 몰락하고, 로마를 무질서와 혼란으로 몰아간다. 시대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공화정이라는 이상에 빠져있던 브루투스는 또 어떤가. 셰익스피어는 다른 모든 작품에서처럼 역사 속의 다양한 인물 군상들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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