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얼굴을 스치는 바람

산책 : 라이너 마라아 릴케

by 최용훈

산책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의 눈은 벌써 햇살 비추는 언덕,

내가 시작했던 길 저 너머를 더듬는다.

그렇듯 우리는 붙잡을 수 없는 것에 붙잡힌다.

그것은 먼 곳에 있어도 내면의 빛을 지녀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도 우리를,

깨닫지 못해도 이미 우리가 된, 무언가로 변화시킨다.

우리 자신의 파도에 응답하여

우리를 부르는 손짓...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얼굴을 스치는 바람인 것을.


A Walk

Rainer Maria Rilke


My eyes already touch the sunny hill.

going far beyond the road I have begun,

So we are grasped by what we cannot grasp;

it has an inner light, even from a distance-


and changes us, even if we do not reach it,

into something else, which, hardly sensing it,

we already are; a gesture waves us on

answering our own wave…

but what we feel is the wind in our faces.


아침 산책길 나는 저 멀리 녹색으로 빛나는 산등성이를 바라본다. 가지 않아도 도달하는 내 시선의 끝에 이미 나는 붙잡혀있다. 마음속을 걷는 우리의 산책은 끝없는 상념을 돌아 새로운 길을, 새로운 빛을 찾아 나선다. 가슴속에 일렁이는 파도를 향해가는 발걸음, 하지만 얼굴을 스치는 가을바람에 나도 몰래 발을 멈춘다.


* 위의 한글 시구는 릴케 시의 영문 번역을 다시 중역한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초여름 기억 속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