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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n 15. 2021

초여름 기억 속의 어머니

박목월 '어머니의 눈물'  

사람이 느끼는 통증의 정도와 내성을 측정하는 기계가 있습니다. 그 수치를 표시하는 단위가 ‘델’(del)이라는 것이죠.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가 견뎌낼 수 있는 최고치의 고통은 45 델이라 합니다. 극한의 고통인 것입니다. 그런데 출산 때 산모가 겪는 최고의 통증 수치는 무려 57 델에 달하는 것으로 얄려져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고통입니다. 이것은 몸속에 있는 20개의 뼈가 동시에 부러지는 것과 같은 정도의 고통이라 합니다.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 그러나 ‘산고(産苦)’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은 모성이라는 어머니의 본능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델 수치에 관한 잠깐의 생각 끝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참 고우셨던 분이셨지요. 마흔여덟의 나이에 혼자되셔서 삼 남매를 홀로 돌보셨습니다. 물론 막내만이 고등학교를 다녔고 나와 여동생은 이미 스물을 넘긴 나이였습니다. 아주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지만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자식들 생각과 남편을 여읜 외로움은 여전하셨을 겁니다. 이제 60대의 반을 넘긴 나이가 되어 돌이켜 보니 그때의 어머니는 참 젊으셨던 것 같습니다. 벌써 돌아가신 지 스무 해를 넘겼지만 지금도 어머니 꿈을 꿉니다. 어머니를 그리며 썼던 저의 짧은 글과 함께 박목월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시를 올립니다.    


초여름의 더위는 그래도 견딜만하다. 아직은 덜 습하고 무엇보다도 초록이 아직은 봄기운을 머금고 있어서인가 보다. 어느 시인이 오월의 사랑스러운 꽃봉오리를 노래했듯이 나는 초여름의 초록이 좋다. 문득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다.     


나는 초여름,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이다. 그분은 너무도 고운 분이셨다. 베이지색 레인 코트를 입고 우산을 쓴 그녀의 모습을 기억한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무렵이었던가. 어머니는 어디선가 얻은 미제 맥스웰 커피를 자그마한 식료품 가게에서 돈으로 바꾸셨다. 그리고 카스텔라 빵을 하나 얻어 내게 주셨다. 그렇게 어린 아들의 바람을 가슴으로 느끼셨던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빵을 받아 든 내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지으시던 어머니의 초여름, 비 오는 날을 난 좋아한다.     


어느 해 여름 한가운데 어머니는 여동생의 집을 찾으셨다가 쓰러지셨다. 한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두 주를 누워계시다가 그렇게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에서 나는 속으로 울었다. 누워 계신 어머니께 나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해, 어머니는 초여름의 환한 햇살 속에 건강한 모습으로 계셨고, 난 그 아름다운 날에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돌이켜 보면 긴 세월 별다른 추억도 없는 것 같다. 기억의 조각들을 아무리 끌어 모아도 뿌연 안갯속을 서성일뿐이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어느 여자아이의 얼굴조차 희미한 지금, 난 아직도 무얼 찾고 있는 건지. 예이츠가 말했듯이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무언가를 위해 끝없이 준비하는’ 것일 뿐일까? 아니, 그 무언가는 차라리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닐까. 남겨진 소리, 남겨진 내음, 남겨진 사람이 그리운 나이에 무언가 일어나는 것이, 그래서 또다시 남겨질 무언가를 가슴 저리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두렵다.     


어머니. 그래서 살아 계실 때 한 번도 그리워한 적이 없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 낡은 헌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메모 한 구절, 접힌 종이 하나 그리고 아련한 추억들... 그것들이 초여름 어느 날 내 가슴 한 구석에서 떨고 있다.     



어머니의 눈물

            박목월     


회초리를 들긴 하셨지만

차마 종아리를 때리시진 못하고

노려보시는

당신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와락 울며 어머니께 용서를 빌면

꼭 껴안으시던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너무나 힘찬 당신의 포옹    


바른 길

곧게 걸어가리라

울며 뉘우치며 다짐했지만

또다시 당신을 울리게 하는     

어머니 눈에


채찍보다 두려운 눈물

두 줄기 볼에 아롱지는

흔들리는 불빛     


Mother’s Tears

             by Park, Mok-wol     


With a switch in hand,

She hesitated to whip me on the legs.

To her staring eyes

Slow tears rose.     


When I asked for her forgiveness, crying,

She firmly hugged me.

Her strong embrace

Almost broke my breast.     


Crying, and promising her

To walk on the right path

And never swerve from it,

I made her cry over and again.     


Tears in her eyes

Are more fearful than the whip.

Two rays of swaying light

Reflected on her ch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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