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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

by 최용훈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


누가 죽어가나 보다

차마 다 감을 수 없다는

반만 뜬 채

이 저녁

누가 죽어가나 보다


살을 저미는 이 세상 외로움 속에서

물 같이 흘러간 그 나날 속에서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온

그 누가 죽어가는 가 보다


풀과 나무 그리고 산과 언덕

온누리 위에 스며 번진

가을의 저 슬픈 눈을 보아라


정녕코 오늘 저녁은

비길 수 없는 정한 목숨이 하나

어디로 물같이 흘러가 버리는가 보다


A Poem for Autumn Evening

Kim, Choon-soo


Somebody seems to be dying.

Never able to close his eyes,

He has his eyes half-opened.

This evening

Somebody seems to be dying.


In the painful loneliness of this world

In the past days flowing like water

Somebody seems to be dying

Who called only one name during his lifetime.


Look at those sad eyes of autumn

spreading through grasses, trees, mountains and hills

And all across the world.


Truly this evening

One life, destined and comparable to nothing,

Seems to be flowing like water somewhere.


흘러가는 것이 어디 세월뿐이겠습니까? 죽어가는 것이 사람뿐이겠습니까? 이 외로운 세상에 잊혀진 모든 것은 그저 흐르고 죽어갈 뿐이죠. 가을의 고즈넉한 저녁은 지나간 모든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저녁에도 많은 것은 사라지고 잊혀 갑니다. 두 눈마저 고이 감을 수 없는 아쉬움에 반쯤 눈을 뜨고 지켜봅니다. 그렇게 시들어가는 세월에 미련만 가득합니다. 가을이 짙어갑니다. 들판의 풀과 나무에도 산과 나지막한 추억의 언덕에도 가을은 그 빛바랜 색채를 남깁니다. 주어진 삶의 시간 중 가을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깃든 그 쓸쓸함, 외로움, 그리고 수많은 아쉬움들을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이 저녁 여전히 많은 것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에는 그 여린 껍데기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 죽어가는 많은 것들에 가을은 물처럼 흐르라고 말합니다. 아,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이 아름다운 가을이 여전히 물들이고 있습니다. 마치 황혼 빛에 젖은 어린 시절의 고향 마을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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