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 신경림
가을비
신경림
젖은 나뭇잎이 날아와 유리창에 달라붙는
간이역에는 찻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다
플라타너스로 가려진 낡은 목조 찻집
차 나르는 소녀의 머리칼에서는 풀냄새가 나겠지
오늘 집에 가면 헌 난로에 불을 당겨
먼저 따끈한 차 한잔을 마셔야지
빗물에 젖은 유행가 가락을 떠밀며
화물차 언덕을 돌아 뒤뚱거리며 들어설 제
붉고 푸른 깃발을 흔드는
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
Autumn Rain
Shin Kyong-rim
In a whistle stop, where wet leaves stick to the window,
Is found no passenger even at a train time.
In an old teahouse hidden by plane trees,
Is seen a tea-serving girl, whose hair seems to smell like grass.
Returning home today, I will light an old stove
And make a hot tea to drink.
When a waggon, whistling an old song wet in rain,
Is staggering into the station around the hill,
Autumn rain is falling on the back of an old man
Who waves a red and blue flag.
그날, 허름한 간이역 창밖으로 가을비가 내렸다. 어스름이 커튼처럼 내려앉은 낡은 나무 의자 위에 나 홀로 앉아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희미한 가을 저녁의 외로움을 적시며, 비는 그렇게 부슬거렸다. 따듯한 차 한 잔이 그리워 두 손 모으고 입김을 불어넣을 때, 낡은 화물기차 앞으로 노년에 접어든 한 사내가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