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국의 시인들(1)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재림

by 최용훈

20세기는 영국문학에 있어 극적인 변화의 시기였고 특히 시문학은 중요한 진전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모더니즘의 실험성에서부터 영국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하는 새로운 시들이 등장한 기간이었다. 이 시기 영국의 시인들은 전 세계의 문학적 지형에 엄청난 기여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20세기 영국의 시인들’ 시리즈를 통해 20세기 영문학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15인의 시인들과 그들의 시를 소개한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


예이츠는 19세기 후반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그의 시들은 주로 20세기에 들어 두각을 나타냈다. 초기의 작품들은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와 신비성에 경도되었고 후기의 시들은 보다 내적이고 철학적인 면모를 보였다. 예이츠는 정치, 신성(神性), 시간의 흐름 등 다양한 주제를 모색했으며 마침내 현대시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 문예부흥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나 테드 휴즈(Ted Hughes) 등 그를 잇는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신화와 민요, 역사에 대한 그의 탐색은 현대시의 발전에 지속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의 대표적인 시 가운데 ‘재림’ (The Second Coming)을 소개한다.


재림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크게 선회하며 돌고 도는

매는 조련사의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중심은 지탱할 수 없다.

혼돈만이 세상을 뒤덮고,

핏빛 물결이 넘쳐, 어디서나

순수한 의식(儀式)은 익사한다.

선한 자들은 신념이 모자라고,

악한 자들은 강렬한 열정에 차 있다.


분명 어떤 계시가 가까이에 있다.

분명 재림이 다가오고 있다.

재림!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이 시대의 정신에서 나온 거대한 형상이

내 시야를 어지럽힌다. 모래사막 어디선가

사자 몸에 사람 머리를 한 형체가,

태양처럼 비정하고 텅 빈 시선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주위에는

사막의 성난 새들이 어지럽게 그림자를 드린다.

어둠이 다시 내린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이천 년의 바위 같은 잠이

흔들리는 요람 때문에 악몽이 되고 있음을,

그 어떤 거친 짐승이, 마침내 자신의 때가 돌아오자,

탄생을 위해 베들레헴으로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딛고 있는가?


The Second Coming

By William Butler Yeats


Turning and turning in the widening gyre

The falcon cannot hear the falconer;

Things fall apart; the centre cannot hold;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Surely some revelation is at hand;

Surely the Second Coming is at hand.

The Second Coming! Hardly are those words out

When a vast image out of Spiritus Mundi

Troubles my sight: somewhere in sands of the desert

A shape with lion body and the head of a man,

A gaze blank and pitiless as the sun,

Is moving its slow thighs, while all about it

Reel shadows of the indignant desert birds.

The darkness drops again; but now I know

That twenty centuries of stony sleep

Were vexed to nightmare by a rocking cradle,

And what rough beast, its hour come round at last,

Slouches towards Bethlehem to be born?


예이츠의 이 시는 1919년에 발표되었다. 일차 세계대전 이후의 황량한 유럽에서 예이츠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와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 이십 세기 초반, 유럽인들은 무기력에 빠진 채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 드러나는 절망과 한탄은 단지 살육의 전쟁과 그에 따른 무의미한 죽음의 결과만은 아니었다. 이미 19세기말 만연했던 허무주의와 신에 대한 회의, 과학에 대한 막연한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신에 의한 창조의 믿음에 회의와 의혹을 던졌고, 산업혁명 이후의 천민자본주의는 자본의 잔인함과 노동의 착취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계급투쟁은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촉발해 세상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극체제 갈라놓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20세기 내내 극심한 이념의 대립을 초래했던 것이다. 이렇듯 전 세기부터 이어지는 세계관의 변화가 무자비한 전쟁의 살육과 더불어 인간성의 파괴와 혼돈의 세상을 잉태하고 있었다.


예이츠는 무너져 내린 세상에서 중심을 유지할 수 없음을 한탄한다. 그리고 혼돈과 폭력과 그릇된 신념의 위험성에 전율한다. 조련사를 잃은 거친 매가 허공을 선회하는 두려움이 첫 연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시의 둘째 연에서 재림에 대한 기대와 함께 그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한다. 2000년의 세월 동안 서양의 세계를 지탱했던 기독교의 믿음은 환상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시대의 정신은 삭막한 사막의 스핑크스처럼 냉정하고 잔혹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나약한 인간이 의지했던 세상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이 어둠의 장막을 걷고 예수의 재림은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목격했던 잔인한 야수가 다시 세상을 짓밟을 것인가. 예이츠가 그려낸 20세기의 미래는 이후 더 큰 전쟁과 더 사악한 시대정신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예이츠의 이 시는 인간성의 회복, 새로운 평화,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다시금 탄생하길 갈망하는 절절한 애원처럼 들리기도 한다. 평화와 화해와 공존의 재탄생은 과연 가능할까? 이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으로 다가온다.


* 예이츠의 대표 시 : 재림(The Second Coming, 1919), 비잔티움으로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1928), 탑(The Tower,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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