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선(善)을 드러내어 초월하고, 사랑하고 성장할 수도 있지만, 또한 증오하고, 적을 만들고, 정신적으로 쇠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예비한 신성한 공간의 생성, 죽음이라는 경험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하는 종말, 그것이 ‘좋은 죽음’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다음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심리학과 교수인 찰스 가필드 박사(Charles Garfield, 1944~ )가 제시하는 ‘좋은 죽음’(Well-dying, Good Death)을 위한 여섯 가지의 조언이다.
1. 가능한 고통을 피하라.
이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뜻한다. 육체적 고통의 완화는 약물로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의학으로만 해결되기는 어렵다. 이는 흔히 종교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거나 상담을 통해서 치유되어야 한다. 누구나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신적 고통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 개인 간의 갈등을 인정하고 해결하라.
해결되지 않은 개인적인 갈등은 심리적-사회적 고통의 원인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갈등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통증 전문의인 아이라 바이옥(Ira Byock)은 그의 저서 ‘가장 중요한 네 가지’(The Four Things that Matter Most)에서 삶의 끝에 선 사람에게 필요한 ‘네 가지 말들’을 이렇게 적고 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용서할게요.’ ‘용서해 주세요.’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이러한 말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3. 삶을 되돌아보며 의미를 찾으라.
죽어가는 사람이 임종의 자리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사랑했고, 자신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인식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이 이루어낸 일에서 보람을 찾는 것이다. 물론 일의 가치는 다소 모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평화로운 죽음의 중요한 요건이다.
4.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라.
임종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 그가 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충족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때론 그가 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바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함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갖는 것은 내면의 갈등이나 고통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5. 불필요하고 비인간적인 치료를 멈추라.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집중치료실 등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죽음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만일 누군가 엄청난 고통을 받는다면 의학적 치료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을 더 큰 규모의 시설에 수용하는 것은 때로 그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줄지 모른다. 그곳은 죽음을 막는 것만이 목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치료보다는 통증의 완화나 호스피스 같은 돌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6. 무엇을 택하든 원하는 대로 하라.
죽음을 앞둔 사람은 때로 혼자 있기를 원하거나 혹은 주변에 친구와 가족들이 함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이들은 항상 잠자기를 원하고 다른 이들은 가능한 한 깨어있기를 바란다. 무엇을 원하든 그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아직 살아있는 존재이다. 그들에게도 좋은 날, 나쁜 날이 있다. 그를 돌보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늘 마음을 다해 그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인 존 밀턴은 이렇게 말한다. “서서 기다리기만 해도 돌보는 것이다.” 우리는 행동을 중시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임종 자리에 그저 앉아있기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저 지켜봐 주고, 귀를 기울이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좋은 죽음이라는 표현은 형용의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영역이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인식하고 좋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