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머스 히니 :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 1939~2013)는 아일랜드의 역사, 문화, 정치를 깊이 있게 탐색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의 풍광, 전통과 현대성 사이의 갈등 등을 다루었던 그의 시는 물리적인 세계에 기반을 두면서도 깊은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었다.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생애 대부분을 더블린에서 보낸 그는 20여 권의 시집과 평론서, 여러 편의 시 선집을 출간하였다. 그는 1995년 “서정적 아름다움과 윤리적 깊이를 지닌 작품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20여 년간 교수 생활을 했으며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를 지내기도 하였다. 히니는 전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으며 비평계와 학계, 독자들 모두에게 높이 평가되고 사랑받은 몇 안 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북아일랜드의 자연과 문화,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는 투쟁, 영국의 지배로 상실되어 가는 아일랜드의 언어 등에 깊이 천착하였다. 그는 아일랜드라는 지역 시인의 범주를 넘어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존 클레어(John Clare) 등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역사에 대한 히니의 관심, 특히 독립과 관련된 시적 저항은 아일랜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현대시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치와 역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울림은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형성해 온 것이다.
셰이머스 히니의 대표 시집 :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Death of a Naturalist, 1966), ‘북쪽’(North, 1975), ‘영혼의 수평기’(The Spirit Level, 1996)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한 해 내내 아마 둑은 마을의 한복판에서
곪아갔다; 머리가 무거운 초록의 아마는
커다란 뗏장에 짓눌려 그곳에서 썩어있었다.
날마다 아마는 가혹한 태양 아래 숨이 막혔다.
기묘하게 거품이 일고, 국화들은
아마 냄새 주변으로 강한 소리의 철망을 쳤다.
잠자리들과 얼룩무늬 나비들도 있었지만
그중 최고는 둑의 그늘진 곳에서 고인 물처럼
자라는 개구리 알이었다. 이곳에서 봄마다
나는 젤리 같은 개구리 알을 병에 채워
집 창틀과 학교 선반 위에 올려두고
커지는 얼룩 반점들이 터져 나와
민첩하게 헤엄치는 올챙이가 될 때까지 지켜보곤 했다.
월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어떻게 아빠 개구리가 황소개구리로 불리게 됐는지
울음소리는 어떻고, 엄마 개구리가
그 많은 알들, 그 개구리 알들을 어떻게 낳을 수 있는지.
개구리를 보면 날씨도 알 수 있었다.
햇빛이 비치는 맑은 날에는 노랗고
비가 올 때는 갈색이 되니까.
수풀 사이 쇠똥 냄새로 악취가 진동하던
어느 무덥던 날, 성난 개구리들이 아마 둑을 침범했다.
나는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거친 개구리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탁한 공기 속으로 낮은 개구리들의 합창이 들려왔다.
둑 바로 아래로 배가 잔뜩 부푼 개구리들이 뗏장 위에 앉아 있었다.
늘어진 목들은 돛처럼 펄럭거렸고, 몇몇 개구리들이 튀어 올랐다.
개구리들의 팔딱거림은 끔찍한 위협이었다. 몇 마리는 그 뭉뚝한 머리로
괴이한 소리를 내며 진흙으로 만든 수류탄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나는 겁에 질린 채 돌아서서 도망쳤다. 번들거리는 거대한 왕들이
복수를 위해 그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
내가 손을 담그면 그 알들이 내 손을 부여잡을 것임을.
어린 시절의 추억은 늘 아련하고 아름답기 마련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미화한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김치찌개, 아버지 외투에서 풍기는 군고구마 냄새, 공기놀이, 구슬치기를 했던 비탈진 언덕,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작은 경험들은 때로 이유 모를 두려움과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웃집 담 아래로 보이던 그 까마득한 흙길,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며 아직 돌아오지 않은 엄마의 빈자리에 가슴 철렁했던 순간, 막연한 불안감에 밤길을 걷다가 길을 잃은 아이, 숨바꼭질하다가 잠들어 버린 아이처럼 망연했던 그 무수한 기억들 역시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흔적들이다.
시 속의 아이는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이다. 썩은 아마 둑에서 발견한 개구리 알들. 그 끈적한 생명의 시작은 아이에게는 단지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유리병에 넣어 창가에 두고 올챙이로 변해가는 자연의 신비를 보는 것은 그저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어린 자연주의자는 새로운 경험에 경악하고 만다. 커다란 황소개구리들의 낮고 거친 울음소리, 거대한 몸집과 부풀어 오른 배, 주름투성이의 목에 진흙을 잔뜩 묻히고 자신들의 알을 훔친 철없는 자연주의자를 노려보는 황소개구리들. 시 속의 아이는 비로소 깨닫는다. 모든 사랑스럽고, 흥미로운 것들 속에는 전혀 다른 두려움과 신비함이 숨어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새로이 발견한 추함,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끔찍한 위협이 공존하는 것이 세상임을. 어린 자연주의자는 이제 깨달음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 영문 원시는 길이 관계로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