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라킨 : 새벽의 노래
필립 라킨(Philip Larkin, 1922~1985)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시단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시인이다. 정확하고 꾸밈없는 문체로 잘 알려진 그의 시는 고립, 사랑, 죽음 등의 주제를 다루었고, 명징성과 지적인 깊이에 덧붙여 풍부한 위트와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다.
시인으로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라킨은 평생 도서관의 사서로 일했다. 그는 공적인 자리에는 늘 참석을 피했고, 평론가나 독자들의 칭송에도 무관심했다. 그는 영국의 계관시인 직위마저 사양했고, 그 자리에는 테드 휴즈가 임명되었다. 영국 이외의 지역으로 여행을 하지도 않았고, 외국 시인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흔한 인터뷰나 시 낭송회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은둔형의 시인이었다.
라킨은 네 권의 시집 외에 두 편의 소설(‘질’, Jill, 1946, ‘겨울 소녀’, A Girl in Winter, 1947)을 썼고, 평론이나 수필 그리고 재즈 음악에 대한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네 편의 시집은 모두 합쳐 100페이지 남짓한 얇은 것들이었다. 그의 미발표 시들은 사후 편집되어 두 권의 필립 라킨 선집으로 출판되었다.
라킨은 자신 외에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는 거칠고 고집스러운 기질과 완고함을 보였지만 일반 독자들에게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짧고 명료한 시구로 구성된 그의 시들은 시대의 절망과 회환, 정체된 삶과 좌절된 욕망을 그려냄으로써 전후 유럽인들의 감정을 정확히 묘사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파리 리뷰’지와의 인터뷰에서 라킨은 시인이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앞선 작가들의 기법을 연구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라 일축하였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그가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나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같은 전 세대의 시인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한편 라킨은 모더니즘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그러한 지적인 실험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장벽을 만들고 결국 불필요하게 복잡한 주제들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라킨은 1974년 시집 ‘높은 창문들’(High Window)을 출간한 뒤 시 쓰기를 중단하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시들은 현대 세계를 반영하는 시의 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놓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2년 라킨의 미발표 시들이 적힌 노트가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었다. 노트북이 경매에 붙여지자 영국 작가협회가 법원에 소를 제기하기도 하였는데 결국 2004년 시집으로 묶여 발간되었다.
필립 라킨은 시문학을 넘어 문화 전반의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들은 학계에서 활발히 연구되었고, 그는 도덕과 인간 상황이라는 주제를 탐색하는 시인들에게 시금석이 되고 있다. 아래에 1977년 발표되고, 1988년 그의 사후 간행된 라킨 선집에 수록된 ‘새벽의 노래-오바드’(Aubade)를 소개한다.
새벽의 노래
필립 라킨
나는 하루 종일 일한다. 그리고 밤에는 반쯤 취해 있다.
새벽 네 시, 소리 없는 어둠 속에 깨어나 나는 응시한다.
커튼 가장자리로 빛이 물들 때,
그때까지 나는 그곳에 언제나 실재하는 것을 본다:
끝없는 죽음, 이제 가까워오는 하루,
한 가지 외에는 모든 생각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어디서, 언제 죽을 것인가.
무미건조한 질문: 하지만 죽어가는 것,
죽어버린 것의 공포가
섬광처럼 다시 떠올라 소름 끼치게 한다.
그 불꽃에 마음이 멍해진다. 후회 때문이 아니다.
- 행하지 못한 선, 받지 못한 사랑,
쓰지 못하고 잘려나간 시간에 대한- 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한 번뿐인 삶에서 그릇된 시작을 지우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코 이룰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영원히 맞게될 완전한 공허,
우리가 가고 있고, 언젠가 그 안에서 길을 잃을
분명한 멸절에 마음을 잃는다.
이곳도, 어느 곳도 아닌 곳,
하지만 곧 다가올, 무엇보다 끔찍하고, 무엇보다 진실인 그것.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두려움,
종교가 해보려 했다.
우리가 결코 죽지 않는 존재인 척하기 위해 만든
그 거대한, 낡은 천 위에 적힌 악보,
이성이 있는 존재는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그럴듯한 그것.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
만질 수도, 맛을 느낄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더불어 생각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연결될 수도 없는 것.
어느 것도 돌아올 수 없게 하는 마취제와도 같은 것.
그렇게 그것은 시야의 가장자리에 머문다.
작고,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얼룩, 고정된 냉기가
욕망을 둔화시켜 무기력에 이르게 한다.
대부분의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이것만은 다르다.
사람도, 술도 없이 우리가 무언가에 사로잡힐 때
용광로 같은 분노 속에서 그것에 대한 인식이 솟아오른다.
용기는 소용없다.
그것은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용감하다 한들
무덤 속의 누군가를 살려낼 수는 없다.
죽음 앞에서는 애처롭게 울던, 당당하게 버티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서서히 빛이 강해진다. 방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은 의복처럼 분명하게 걸려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언제나 알아왔던 것,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알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것. 하지만 선택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문 닫힌 사무실에 웅크린 전화기들은
울릴 준비를 하고, 멍청하고, 복잡한, 임대한 세상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태양 없는 하늘은 흙처럼 희고
일은 마무리되어야 한다.
집배원들이 의사들처럼 이 집 저 집을 오고 간다.
* 라킨의 대표 시집 : ‘새벽의 노래’(Aubade, 1977), 성령강림절의 결혼식(The Whitsun Weddings, 1964), ‘높은 창문들’(High Windows, 1974)
잠에서 깨었든, 밤새 잠들지 못했든, 새벽은 깨닫지 못한 순간에 다가온다. 커튼 뒤로 희미하게 빛이 스며들면 우리는 좋든 싫든 새로운 날을 맞이해야 한다. 시인은 새벽 네 시에 잠에서 깨어 소리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아있음의 뒷면을 바라본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죽음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식이다. 무엇도 할 수 없는 공허와 무기력의 순간, 멸절의 순간을 떠올리며 시인은 전율한다. 종교가, 세상의 현자들이 말하는 죽음 뒤의 세상은 그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일 뿐이다. 알 수 없는 것의 두려움 속에서 후회보다는 존재의 허망함만이 어둑한 방안에 내려앉을 뿐이다. 이제 곧 하루가 시작되겠지. 전화벨이 울리고,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 일을 시작하고 끝내야 하겠지. 그러면 언제나처럼 또 하루가 죽고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이고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새벽의 노래는 왠지 슬프고 애달프다. 삶의 시작에서 그것의 종말을 함께 보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용감한들 비겁한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저 일상을 맞이하는 또 다른 시작만을 애써 붙들 뿐이다.
*영어 원문은 길이 관계로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