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 행해지는 혼란스럽고 노골적인 거짓말이 점입가경이다. 고대 동양의 경전들이 알려주는 정치와 인륜의 도는 차치하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상식에 비추어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고 뻔뻔스러운 정치가들의 거짓말들이 이렇듯 넘쳐난 적은 일찍이 없었던 듯하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순식간에 드러날 거짓을 떠들어대면서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권력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치나 불명예도 감수하겠다는 저급한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거짓말은 희생자 없는 범죄가 아니다. 정치가들이 거짓을 말하면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극도의 고통을 느끼고, 누군가는 명예가 심각히 훼손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가 된다. 그 뻔한 상황에도 왜 그들은 거짓말을 계속하는가? 그 위선적인 거짓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대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거짓의 시작은 그들의 간교한 계산에서 비롯된다. 즉 거짓을 통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지지자들의 무비판적인 무한 믿음에 기대어 그들의 거짓말은 심지어 웅변 같은 확신에 넘치기도 한다. 그 순간 그들은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얼마나 철저히 자신을 속이면 그 알량한 거짓조차 스스로 믿고 남에게도 그 믿음을 강요하는 것일까?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따로 없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따로 없다. 재판을 받고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져도 자신은 아니라 한다. 역사의 법정이 심판할 것이라 한다. 어찌 역사가 그렇듯 졸렬한 인간의 한심한 넋두리를 심판한단 말인가.
소위 언론이라 불리는 수많은 매체들은 정치인들의 거짓 앞에서 입에 재갈을 물린 듯 침묵하고 있다. 그들의 거짓에 분노는커녕 뻔한 사실 확인조차 못하는 언론이 어찌 언론이라 할 수 있겠는가? 거짓을 거짓이라 못하고, 위선을 위선이라 비난하지 못하는 언론은 차라리 붓을 꺾고 입을 다물라.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자숙하라. 그래야 그나마 역사 앞에 속죄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지성이 없다면 그냥 속기사로 나서 거짓말쟁이들의 마우스피스 노릇이나 하라. 그리고 자신들의 무능과 위선에 대한 심판을 겸허히 기다리라.
하기는 어디 언론의 잘못 뿐이랴. 유튜브나 각종 SNS를 통해 편견에 사로잡힌 얄팍한 사고를 값싼 언어로 뇌까리는 지식인들은 쥐꼬리만 한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도 느끼고 있는가.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배운 사람의 태도일진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첨이거나 기만이다. 그 작은 명성으로 혹세무민 하는 썩은 지식인은 좀 더 세월이 흐르면 오늘의 그 가벼움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긴 시험 잘 보고 법조문 잘 외우는 것으로 마치 세상사를 멋대로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판검사들은 그들의 경박한 판결로 범인(凡人)들의 희로애락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그런 제 모습에 얼마나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까? 그들이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어떤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상식에 맞게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인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절망을 안겨주는 기울어진 판결은 직업인으로서의 그들이 아니고 한 인간으로서 그들에게 결국은 커다란 자괴감을 가져다줄 뿐일 것이다.
거짓은 참의 반대가 아니다. 참의 왜곡이고 파괴이며 옳음의 몰락이다. 한 개인의 거짓은 그 자신으로 끝나지만은 않는다. 하물며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치인들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들은 왜 정치가가 되었는가? 진정 민족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그 길에 들어섰으리라 믿는다. 그 초심이 정치판이 더럽다고, 권모와 술수가 판을 친다고 변해서야 되겠는가. 정 견디기 어렵다면 정치판을 떠나라. 더러운 물에 몸을 담그고 어찌 악취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바라건대 그 음울한 정치의 하늘 아래에 참과 옳음의 햇빛이 되어 모두의 얼굴을 밝힐 수도 있지 않을까? 정직한 그대여 제발 일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