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영국 연극

변형된 사실주의와 극장성 : 키친 싱크와 부조리극

by 최용훈

2차 대전 이후 서구의 연극은 지극히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1940년 대 후반에 이르러 사실주의는 상당할 정도로 변형되었다. 관객들은 전통적인 연극과 구분하여 무대에서의 단순화, 상징성과 왜곡을 연극적 기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결과 환상과 재현에 입각한 전통적인 연극에서 극장성(theatricality)을 강조하는 무대로 변모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는 유럽인들의 심리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특히 전쟁 중 핵의 엄청난 공포를 목격한 유럽인들에게 있어 과학이 결코 유일한 진리의 원천은 아니라는 자각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연극의 무대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키친 싱크 연극


영국의 연극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후 영국 연극의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테렌스 래티간(Terence Rattigan)이나 노엘 카워드(Noel Coward) 등에 의해 주도되었던 기존의 ‘거실 연극’(drawing room plays)에서 벗어나 ‘키친 싱크 연극’(Kitchen Sink plays)으로의 변모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사회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의 측면이 부각되면서 주로 고통받는 노동자 계급의 삶과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전쟁 이후의 척박한 세상에 대한 저항과 경멸의 분위기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 Men)로 상징되는 당시의 분위기는 존 오스본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Look Back in Anger, 1956)와 같은 작품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연극적 변화는 주로 새로운 극단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조지 디바인(George Divine)이 1956년 창설한 ESC(The English Stage Company)가 발굴한 오스본과 그의 작품들은 침체되었던 영국의 사실주의 무대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였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주인공 지미 포터(Jimmy Porter)는 계급제도에 대한 불만, 모든 계층의 지적 무기력,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등에 대한 저항의 화신이었다. 지미는 본인이 속한 세대의 무의미를 이렇게 토로한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훌륭한 명분을 위해 죽을 수는 없는 것 같아. 그 모든 건 우리가 아직 너무 어렸던 30년대와 40년대에 이미 다 끝나버렸으니까.... 이제 훌륭하고 용감한 명분 따윈 남아있지 않지.”

“I suppose people of our generation aren't able to die for good causes any longer. We had all that done for us, in the thirties and the forties, when we were still kids.... There aren't any good, brave causes left.”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키친 싱크 연극’의 대표적 작가들은 ‘무스그레이브 병장의 춤’(Sergeant Musgrave's Dance, 1959)의 존 아든(John Arden), ‘보리 섞은 치킨 수프‘(Chicken Soup with Barley, 1958)의 아널드 웨스커(Arnold Wesker), '세이브드’(Saved, 1965)의 에드워드 본드(Edward Bond), '하청업자‘(Contractor, 1970)의 데이비드 스토리(David Storey)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1945년 조안 리틀우드(Joan Littlewood)에 의해 설립된 극단 ’ 시어터 워크숍‘(Theatre Workshop)도 전후 영국 연극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 극단을 통해 활동했던 작가들은 ’ 인질‘(The Hostage, 1958)을 쓴 브렌던 비언(Brendan Behan), '꿀 맛’(A Taste of Honey, 1958)의 작가 셀라 딜레이니(Shelagh Delaney)가 있었다.


부조리 연극


한편 195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 파리에 모여서 새로운 연극적 실험을 한 일군의 작가들이 있었다. 다국적 작가들인 이들은 아일랜드 출신의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러시아 태생의 아르튀르 아다모프(Arthur Adamov), 프랑스의 장 주네(Jean Jenet), 스페인 출신의 페르난도 아라발(Fernando Arrabal), 그리고 루마니아 출신의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등이었다. 이들은 모더니즘의 실험성을 이어받아 전위적 경향의 연극을 추구하였는데 동시에 20세기 후반 후기구조주의의 ‘탈 중심적 우주’(de-centered universe), 고정된 기준의 상실(the loss of a fixed standard) 등 포스트모던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들의 작품들을 가리켜 영국의 연극이론가였던 마틴 에슬린(Martin Esslin)은 ‘부조리극’(The Theatre of the Absurd)이라 명명하였다. 특히 1955년 파리에서 초연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는 부조리극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작품 속의 두 주인공은 하루 종일 고도를 기다리며 무의미한 대사를 주고받는다.


“에스트라공: 우린 항상 무언가를 찾지. 그렇지? 우리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서 말이야.

블라디미르: 그래, 그래. 우린 마술사야. “

“Estragon: We always find something, eh Didi, to give us the impression we exist?

Vladimir: Yes, yes, we're magicians.”


그렇게 두 사람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무언가를 마술의 환상 속에서 찾는다. 그런 현대인의 모습은 결국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헛된 부조리를 낳는다. 그리고 결국은 알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누구도 오지 않고 가지도 않아. 끔찍한 일이지.”

“Nothing happens. Nobody comes, nobody goes. It's awful.”


베케트의 부조리극은 이후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 죽다’(Rosencrantz and Guildenstern are Dead, 1966)의 ‘톰 스토파드(Tom Stoppard), 덤웨이터(Dumb Waiter, 1957), ’ 귀향‘(The Homecoming, 1964)을 쓴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의 극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핀터와 스토파드는 90년대까지 극작을 계속하였다. 이 외에도 ’ 러시아인 통역사‘(The Russian Interpreter, 1967)를 쓴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 '최상의 직업여성들’(Top Girls, 1982)의 작가 케릴 처칠(Caryl Churchill), '기묘하고 부조리한 사람‘(Absurd Person Singular, 1975)의 알렌 에이크번(Alan Ayckbourn) 등이 20세기 후반 영국의 극계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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