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도박의 쾌감

살아있을 시간은 5분! 그리고 무한한 시간의 확장

by 최용훈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도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십 대에 마차 정류장 부근에서 산 복권이 그를 도박의 길로 이끌었다고 토로하였다. 초상화에 드러나는 그의 표정은 번민과 좌절의 그것이었고 깊게 팬 주름은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yevsky, 1821~1881)는 182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하층계급의 사람들을 위해 설립된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였고, 가족은 모두 병원에 딸린 사택에서 생활하였다. 어린 시절 그는 병원의 마당에서 가난과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억압받는 민중의 모습 속에 반영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 엄격했지만 따뜻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마다 읽어주던 책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나이 열여섯에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버지의 강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군사기술학교에 입학해 있었다. 전액 국비로 지원되는 그 학교는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는 과학이나 기술에는 관심이 없었고 늘 서툴고 어색했다.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아웃사이더였지만 남 다른 용기와 정의감이 있었고, 군 장교들에게 만연되었던 부패를 과감히 비판하고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서는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청년이었다. 1939년 그의 부친이 사망하지만 그는 학교를 떠나지 않았고 마침내 기술 장교로 군 복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무렵 친구들과 어울려 도박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군 복무를 하면서도 그는 문학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또한 그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이 생계 때문인지, 도박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이 소설 집필의 중요한 동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첫 소설은 1845년 출간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이 소설은 그의 바람대로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마침내 집필에 몰두하기 위해 군 생활을 청산한다. 하지만 정신분열을 겪으며 몰락하는 한 하급 관리의 이야기를 그린 그의 두 번째 소설 ‘분신’은 특별한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건강은 극도로 쇠약해지고 간질로 의심되는 발작을 여러 차례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필을 계속하여 몇 편의 단편 소설을 써내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유토피안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한 단체에 가입해 도움을 받는다. 1846년 그는 사회개혁과 농노제의 폐지를 주장하는 페트라세프스키 서클에 가담한다. 하지만 이 서클은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반역단체로 규정되어 그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군사재판에 회부된다.

페트라세프스키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군사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린다. "퇴역 육군 소위 도스토예프스키는 범죄 음모에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정교회와 통치 권력을 거스르는 괘씸한 표현으로 가득 찬 벨린스키의 편지를 유포시켰으며, 다른 용의자들과 함께 사설 인쇄소를 통해 정부에 반대하는 서적을 유포했으므로 모든 권리를 박탈함과 동시에 8년간의 요새 유형에 처한다." 또한 "4년 동안 수감시킨 뒤 사병으로 지위를 강등시켜 복무시킬 것"이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이 판결과는 달리 황제 니콜라이 1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포함한 회원들에게 사형을 명령한다. 그리고 사형 집행을 위한 절차를 치른 뒤 마지막 순간 집행을 유예하도록 연극을 꾸민 것이다.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한 경고의 의미와 함께 황제의 관대함을 보이기 위한 수법이었던 것이다.

1849년 2월 22일, 마침내 세묘노프스키 연병장에서 가짜 형 집행이 거행된다. 도스토예프스키를 포함한 페트라세프스키 회원 20명은 팔 개월 동안 군사기지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영하 20도의 모진 추위 속에 형장으로 끌려 나간다. 죄수들이 형틀에 묶이자, 곧이어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바로 그때, 집행관이 갑자기 손수건을 흔든다. 사격 중지를 알리는 신호였다. 그것은 생과 사를 가르는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경험이었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삶에 대한 예리하고도 격렬한 감각을 느끼는 절호의 순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 체험은 20년이 지난 1868년 소설 ‘백치’를 통해 재현된다. 소설의 주인공 므이쉬킨 공작은 리옹에서 목격한 사형 장면과 함께 사형 언도를 받았던 사람의 마지막 몇 분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사나이는 다른 이들과 함께 교수대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사형 판결문이 낭독되었습죠. 그는 정치범으로 총살을 당할 운명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시간은 5분도 남지 않았을 것 같더랍니다. 훗날 그는 그 5분이 끝없는 시간의 확장, 거대한 재산처럼 느껴졌답니다. 그는 이 5분 동안에 최후의 순간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실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동안에 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했다는 겁니다. 우선 동료들과의 작별에 2분의 시간을 쓰고 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데 2분, 그리고 나머지 1분은 마지막으로 주위의 광경을 둘러보는 데 썼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런 생각이었답니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생명을 되찾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은 얼마나 무한한 것이 될까, 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이 완전히 내 것이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1분의 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1분의 1초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한 순간도 헛되어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는 겁니다.”

오 분 후에 죽지 않으면 안 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완전히 깨어있는 의식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여기던 순간, 다시 살아나는 경험. 그리고 그 짧은 과정 속에서 느낀 생의 소중함, 그 짧은 생의 무한한 확장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형 체험이 있었던 바로 그 날, 그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기 전 형 미하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다.

“형, 나는 기운을 잃지도, 정신을 잃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의 삶이든 그것 역시 삶이고, 삶은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재난이 몰아닥친다 해도 의기소침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바로 거기에 인생의 과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이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고가 나의 살과 피가 되었습니다. (중략) 형, 그럼 안녕!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이처럼 건강하고 풍족한 영적인 생명이 내 안에서 고동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베리아로의 유형생활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가장 위험한 죄수’로 분류된 그는 풀려날 때까지 손과 발에 족쇄를 차고 있었다. 그런 억압과 노역의 삶 속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당시 그가 억류되어 있던 막사에 대해 그는 이렇게 묘사한다.

“여름, 견디기 힘든 숨 막힘, 겨울, 참을 수 없는 추위. 마룻바닥은 온통 썩어있었다. 두껍게 바닥에 쌓인 먼지; 자칫 미끄러져 넘어지겠군... 우린 통 속에 담긴 청어처럼 얽혀있었다... 고개를 돌릴 여유도 없었다. 어스름부터 새벽까지 우린 마치 돼지들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온통 들끓는 벼룩, 이, 검은색 귀뚜라미...”

1854년 4년 여 만에 유형에서 풀려난 그는 또다시 4 년간의 군 복무를 더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스크바로 돌아온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악령”, “백치”, “죄와 벌”, “카라마조프 형제들” 등의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한다. 이 작품들은 19세기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문학을 대표하는 명작들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문학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행복하지 못했다. 마리아라는 이름의 미망인과의 첫 번째 결혼은 결국 실패로 끝나버렸고, 평생을 괴롭힌 간질 발작, 알코올 중독, 도박 등으로 그의 인생은 갈수록 피폐해 갔던 것이다.

그는 평생 여자와 술과 도박의 수렁에 빠져 살았다. 그의 표현대로 술과 여자는 자신의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지만, 도박이 주는 쾌감은 자신의 의지로도, 문학으로도 결코 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오랜 세월 도박 빚에 시달려야 했고, 그로 인해 감옥을 들락거려야 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원고료를 받아 서둘러 도박 빚을 갚아야 했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쓰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구술을 통해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도박 속의 감각 체계는 문학 속의 상상 체계가 침범도, 구제도, 또 교감도 할 수 없는 이상한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도박은 돈을 딸 때뿐 아니라 돈을 잃을 때에도 쾌감을 준다. 그러나 그 쾌감은 절망과 파멸에 이르는 길일뿐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경험에 기초해 ‘노름꾼’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단 한 시간 안에 운명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여전히 내일의 도박에 미래를 건다. “내일,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렇게 도박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불확실한 가능성에 기대어 파멸의 길로 안내한다. 사실 도스토예프스키뿐 아니라 톨스토이나 푸시킨 등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에는 도박에 관한 이야기가 빈번히 등장한다. 러시아인들의 기질도 있겠지만, 유럽의 변방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근대화가 늦었던 러시아의 사회 문화적 풍토도 도박의 확산에 기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박과 방종으로 어두웠던 그의 인생에 빛이 비친 것은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안나와의 만남이었다. 저술활동을 위해 고용했던 속기사 출신의 그녀는 그와 결혼한 후 엄청난 도박 빚에 시달리던 남편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후기 작품 대부분은 그녀가 그의 구술을 받아 적어 완성된 것이었다. 헌신적인 아내 안나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도 폐인처럼 망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너져가던 제정 러시아 시대를 살던 개혁적인 지식인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그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고 스스로의 삶을 황폐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척박한 시대의 암담함과 개인적인 절망 속에서도 그는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들을 만들어냈으며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행위 동기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인류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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