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 '포스트-진실'의 시대

진실이 소멸되고, 입술에서 사라진 세상

by 최용훈

성서 속 아담과 이브의 장자인 카인은 하느님이 동생 아벨을 더 사랑한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벨을 죽인다. 그리고 하느님이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모르죠. 제가 아벨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뻔뻔스럽게 대답한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고, 최초의 거짓말이다. 어쩌면 인간에게 있어 거짓말은 제 2의 천성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거짓말을, 사실을 말하지 않는 ‘은폐’와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왜곡’으로 나눈다. 침묵도 또한 거짓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즘 우리 사회에 ‘가짜 뉴스’(fake news)라는 말이 유행이다. 침묵을 통한 ‘은폐’도 여전하지만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지나치리만치 많은 허위의 정보들이 만연한다. 학자들은 ‘가짜 뉴스’라는 말은 정치적 함의가 강하므로 ‘허위 정보’(false inform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말한다. 최근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판정과 관련해서도, 의도적인 감염이니, ‘더블 바디’(double body)라 불리는 가짜 인물이 대통령 역을 대신하고 있다는 등의 음모론이 ‘가짜 뉴스’의 형태로 퍼지기도 했다. 이에 반해 ‘허위 정보’라는 용어는 정치적 영역을 넘어 보건, 환경, 경제 등 다양한 범주에서 발생하는 그릇된 정보(disinformation)에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허위 정보’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남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가짜 뉴스, 가짜 이야기, 거짓 메시지 등을 가리킨다. 이러한 허위의 정보들은 타인의 견해에 영향을 미쳐 정치적 어젠다를 전파하거나 혼란을 초래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온 라인 상에서의 상업적 이윤을 노리는 의도로 생성되기도 한다. ‘매체 소양’이라 번역되기도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분야의 전문가인 아일랜드 출신 마티나 채프먼(Martina Chapman)은 가짜 뉴스에는 ‘잘못된 믿음(mistrust),’ ‘그릇된 정보(misinformation)’ 그리고 ‘조작’(manipulation)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관련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고, 그러한 속성으로 인해 조작된 ‘허위 정보’ 또는 ‘가짜 뉴스’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허위 정보’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된 것은 소셜 미디어가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한 2017년 이후였다. 과거에는 뉴스의 원천이 엄격한 보도 규범을 따라야하는 언론 매체를 통해서였지만 지금은 인터넷의 확산으로 정보와 뉴스의 생성, 공유, 확산이 지나치게 자유로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까닭이다. 과도한 정보의 생성과 인터넷 사용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가짜 뉴스나 거짓 메시지가 넘쳐나고 SNS를 통해 급속히, 거의 동시적으로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과학자 시미언 예이츠(Simeon Yates)는 소셜 미디어는 '가십, 새로운 것, 속도, 그리고 공유 가능성'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그런 이유로 가십 같은 이야기들이 검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속히 공유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허위 정보’의 유형은 다음의 몇 가지로 구분된다.


(1) 클릭베이트(Clickbait) :

'클릭'과 ‘미끼’라는 뜻의 ‘베이트’가 합성된 단어이다. 웹사이트의 조회 수를 높여 광고 수익을 노리는 것으로 과장된 헤드라인 등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행위. 섬네일에 실제 보도 내용과 무관하거나 그것을 왜곡하는 제목을 붙이는 것들이다. 사실 독자들의 수를 늘리기 위한 언론의 행위는 과거에도 있었다. 1835년 8월 21일자 뉴욕 선(The New York Sun) 지는 달에서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보도를 시리즈로 게재했다. 당시에 유명한 천문학자 존 허셸 경의 발견인양 거짓으로 기사를 작성했었던 것이다. 새로운 구독자 수를 늘리고 나자 뉴욕 선은 그 해 9월 슬그머니 그 기사가 장난이었다고 발표해버렸다.


(2) 선전(Propaganda) :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대중을 호도하고 관점을 왜곡하는 것.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적 선전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의해 이루어졌다. 1933년 정권을 잡은 후 히틀러는 조셉 괴벨스를 수장으로 하는 ‘대중계몽-선전부’라는 조직을 만들고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도서, 라디오, 교육과 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나치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특히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유대인의 저열함을 강조하여 인종청소의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역사에 기록된 가장 큰 인종적 박해와 인류에 대한 범죄는 이렇듯 기획된 정치적 선전을 통해 집단 최면의 상태에서 저질러졌던 것이다.


반면 1917년 봄, 1차 세계대전이 유럽 전역을 휩쓸었을 때, 런던의 더 타임스(The Times)와 ‘데일리 메일’(The Daily Mail)은 익명의 취재원을 내세워 독일의 ‘시체 공장’ 방문 기사를 실었는데 그 공장에서는 죽은 시체에서 글리세린을 추출해 비누와 마가린을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 엽기적인 기사도 오보로 밝혀졌지만 전쟁 시 언론을 통해 시도된, 적에 대한 비난 선전의 한 예가 되고 있다.


(3) 풍자/패러디(Satire/Parody) :

단지 재미를 위해 기존 저널리즘의 형식을 빌려 현상을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것. 풍자 뉴스만을 전문으로 하는 여러 웹사이트가 만들어졌는데, 1996년 설립된 ‘오니온’(The Onion)은 가장 초기에 개설된 패러디 웹사이트이다. “공공화장실의 물 내리는 센서가 카메라였다.“라는 사회적 내용에서부터 무려 2 주 동안이나 게시되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장례식“ 같은 정치 패러디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며 한 달에 130만 명 이상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보로비츠 리포트’(The Borowitz Report), ‘비버톤’(The Beaverton), ‘데일리 매쉬’(The Daily Mash) 등 유사한 웹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오늘날의 풍자/패러디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1938년 10월 30일 일요일, 미국의 컬럼비아 방송국에서 1898년에 쓰여진 H.G. 웰즈(H.G. Wells)의 소설 ‘우주 전쟁’(War of Worlds)을 각색한 드라마를 라디오로 방송하고 있었다. 우주인의 침공을 알리는 속보가 이어지는 순간, 방송을 듣던 청취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실제 외계의 침공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심지어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군대와 경찰, 의료진 등이 화성인과의 전투 태세에 돌입하였다고 한다.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었지만 방송이라는 매체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다양한 소셜 미디어가 스스로의 영향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사실에 대한 확인 없이 작성되는 (4) 오보 (Sloppy Journalism); 완전히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자극적이고 과장된 헤드라인으로 내용을 왜곡시키는 (5) 허위 헤드라인(Misleading Headings); 독자들의 기호나 믿음, 편견에 영합하는 (6) 편향 보도(Biased/Slanted News); 뉴스의 내용을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거짓되게 꾸며내는 (7) 조작(Manipulation) 등이 가짜 뉴스의 형태들이다. (Wikipedia 참조)

post-truth: seattletimes.com

오늘날 우리는 ‘포스트-진실’(post-truth)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는 ‘~ 이후’라는 뜻으로 결국 ‘진실 이후, 진실이 사라진’ 세계라는 얘기다. 특정적으로는 여론을 형성하는데 있어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감정적 호소가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상황을 나타내기도 한다. 2016년도 옥스퍼드 사전에 등장한 어휘인데, 당시 영국인들의 브렉시트(Brexit)에 대한 투표와 미 대선과 관련해 만들어진 신조어였다.


이제 진실 보다는 편견에, 사실보다는 허구에, 바른 정치보다는 가짜 뉴스에 함몰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상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신의 믿음에만 몰입하여 나와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심지어는 그것을 배척한다. 진실은 이제 하나가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편견에 따라 ‘양분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진실이 소멸하고 입술에서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조금 더 배려를 배워야 한다. 남의 얘기 또한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각을 거짓된 말로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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