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2월 7일,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희생된 수 십만 명의 유태계 폴란드인들을 위한 위령탑 앞에 검은 외투를 입은 독일의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나타났다. 초겨울의 흐리고 쌀쌀한 날씨에 바르샤바를 방문한 독일의 총리가 위령탑에 헌화하기로 되어 있었다. 보도진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브란트 총리는 전혀 예정에 없던 행동을 보였다. 그가 위령탑 앞, 비에 젖은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흐느꼈던 것이다. 당시 총리를 수행했던 서독의 관리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세계는 경악과 함께 감동했다. 전쟁이 끝나고 25년이 지난 뒤, 서독의 총리가 진심으로 과거의 잘못에 용서를 빌고 있었다. 당시의 언론은 이렇게 썼다.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진심은 전달되었다. 독일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많이 완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역사에 나치가 없었다면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역사의 현실 앞에 브란트 총리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속죄를 바쳤다. 독일인들은 인류사에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브란트 총리는 스스로 무릎을 꿇음으로써 그 죄에 대한 증오의 감정에 스스로를 굴복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굴복이었다. 세계인들은 나치의 죄는 용서하지 못했지만, 그의 진실한 속죄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진심이 담긴 그의 행동은 독일의 역사 속에 뿌려진 죄의 씨앗을 스스로 거둔 진정한 용기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난 201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이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최초의 유대인 강제 수용소였던 다하우 수용소를 방문해 이렇게 선언한다. "희생자, 우리 자신,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 결코 역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한 역사학자와 나눈 대담에서 “역사의 반성에는 끝이 없다.”라고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9년 메르켈 총리는 2차 세계대전 때 약 11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찾아 “책임을 인식하는 것은 독일의 국가 정체성의 일부”라고 언급했다. 그녀는 덧붙여 “독일인이 이곳에서 저지른 야만적 범죄에 대해 마음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떤 말로도 이곳에서 비인격적 처우를 받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많은 사람의 슬픔을 달랠 수 없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독일인들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들은 한반도에서 수없이 많은 만행을 저질렀다. 국토를 유린하고, 자원을 수탈하고, 한민족의 이름과 말을 빼앗았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강제 징용과 징집으로 수많은 한인들을 노역과 전쟁터로 내몰았고, 그들은 이역의 땅에서 피를 뿌리며 숨져갔던 것이다.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또한 한국인을 포함해 20만에서 40만 명에 이르는 젊은 아시아의 여성들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전시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았다. 전쟁 중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범죄는 끝이 없었다. 그들은 만주에서 인도네시아에 이르기까지 점령지 어디에서나 대량 학살과 강간을 자행했다. 특히 살아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과 생화학무기 개발 등은 일본의 지울 수 없는 죄악으로 인류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하얼빈에 주둔한 일본군 731 부대는 나치의 가스실에나 비유될 지상의 지옥이었다. '마루타'라 불린 생체실험의 희생자들은 전쟁 포로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조선인, 몽골인, 중국인, 연합군 포로(소련군, 미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단 한 번도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그들의 범죄를 미화하는 일에만 열을 올릴 뿐이었다. 그들에게 역사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과거일 뿐이었다. 왜 그들은 그토록 자신들의 죄악에 눈 감고, 희생자들의 절규에 귀 닫고 있는가?
히틀러 전기(Hitler, 2000)를 썼던 영국의 사학자 이언 커쇼(Ian Kershaw, 1943~ )는 두 권으로 된 자신의 저서에 각각 ‘자만’(Hubris)과 ‘천형’(Nemesis)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인간성에 대한 가공할 범죄가 한 인간의 자만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인간 본성이 얼마나 소름 끼치게 사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죄악은 결국 하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지만 그의 광기는 오늘날까지도 독일의 역사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그들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잔혹하고 파괴적인 핵무기의 첫 번 째 희생물이 되고 만다. ‘팻 맨’(Fat Man)과 ‘리틀 보이’(Little Boy)라 명명된 핵폭탄이 터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한 마디로 팬더모우니움(pandemonium, 아수라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속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양심뿐이다.”라는 조셉 콘라드의 말처럼 일본과 일본인들은 그들의 양심만을 속일 수 있을 뿐이다. 그 어떤 구실과 속임수로도 그들의 얼룩진 역사는 표백될 수 없을 것이다.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위안부 평화비’가 ‘평화의 소녀상’이라는 이름으로 일본대사관 앞에 새워진 것은 2011년 11월이었다. 이후 전국 각지에 소녀상들이 건립되어 일제의 만행을 되새기고, 다시는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소녀상은 캐나다, 호주, 미국, 중국, 대만 등 세계 각지에도 세워지게 되었고, 유럽 최초로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州) 레겐스부르크 인근 비젠트 공원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섰다. 2차 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에 일본의 범죄를 알리는 소녀상이 세워진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해 9월 독일 베를린 미테 구(區)에 또 다른 소녀상이 세워졌다. 그러자 일본은 극우 단체들 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소녀상의 건립에 강력히 반발하며 소녀상의 철거를 주장하였다. 그 결과 미테 구는 소녀상의 철거를 명령했다. 놀랍고도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뚜렷한 역사의식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독일에서 소녀상이 철거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항의와 저항에 부딪혀 다행히도 미테 구는 철거명령을 철회했지만 다시 한번 일본의 후안무치하고 반역사적인 작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은 역사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니 과거와는 거의 상관없다. 사실 역사가 강력한 힘을 갖는 까닭은 우리 안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말 그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라고 믿고 있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얘기하는 순간 이미 현재는 과거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라는 이름으로 과거와 미래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모든 순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그려낸다. 그렇게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삶에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21세기를 살며, 전 세기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시각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소녀상의 설립과 철거를 둘러싼 최근의 일을 바라보며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는 국가와 민족만이 생존하리라 믿는다. 일본은 자만에 사로잡혀 또다시 역사 앞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올림픽에 과거의 전쟁에 사용했던 ‘욱일기’를 들고 나오겠다는 역사의식을 지니는 한 일본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소녀상의 철거 명령을 철회한 독일과 독일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