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달과 소통의 매체는 혼돈스러울 정도로 다양하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수많은 채널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그리고 일상의 장면들과 접촉한다.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대중은 실시간으로 세계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유한다. 이동이 제약된 코로나의 시대에도 우리는 클릭 한 번이면 우주로, 대양의 심연으로 고대의 유적과 숨 막히는 자연의 신비 속으로 빠져든다. 랜 선을 통해 콘서트가 이루어지고, 인터넷을 통해 외국대학의 강의를 수강한다. 디지털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하나의 음원, 하나의 영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리모컨으로 TV의 채널을 돌리듯 클릭으로 매 순간 무수한 매체를 선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TV의 역할과 기능은 분명 변화하였다. 마치 영화가 TV의 등장으로 그 힘을 잃었듯이 소셜 네트워크와 유튜브, 팟캐스트의 확산으로 TV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 때 라디오로 드라마와 노래를 듣던 세대들도 이 새로운 매체의 매력에 빠져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방송의 영향력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은 당분간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TV 시청률 조사기관인 BARC 보고서에 따르면 TV를 소유한 가구의 수가 2018년 기준으로 전 년 대비 7.5%가 증가해 1억 9,700만 가구에 달하고 시청자들의 수도 8억 3,600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소비자를 지닌 매체의 위력은 여전히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엄정화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그녀의 노래를, 젊은 시절의 연기를 모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은 미모의 여가수가 세련된 무대 매너로 춤과 노래를 뽐내는 모습일 뿐이었다. 지금도 그녀가 파격적인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매력을 발산하던 모습이 선하다. 하지만 그때의 엄정화는 그저 한 사람의 연예인이었다. 실제가 소멸된 하이퍼 리얼리즘이 빚어낸 모상이었다. 그녀는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그래서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낯익은 대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의 모습은 다른 연예인에게서도 느껴지는 환영 속의 이미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 전이었다. 그저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는 단지 스크린 위의 이미지가 아닌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프로그램 속의 그녀는 오랜만의 방송 이어선지 다소 어색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엄정화라는 스타를 기억하는 따뜻한 마음의 동료들이 곁에 있었다. 유재석과 이효리는 그녀에게 너무도 다정했다. TV 화면의 꾸며진 모습이 아닌 진짜 이웃이고 형제처럼 보였다. 엄정화는 진정 노래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았을 때 그녀가 겪었을 절망과 좌절이 느껴졌다. 프로그램 속에서 매니저 역을 맡은 정재형이 엄정화의 아픔을 알고 흘렸다는 눈물이 공감을 일으킨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엄정화는 나이 어린 후배들과 어울리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과 함께 하는 순간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을 넘어 한 인간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최근 TV 프로그램에 대해 비난 여론이 적지 않다. 방송 매체는 시청자들의 사고와 생활 방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다. 방송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대중의 믿음, 태도를 규정하고, 삶의 패턴마저 지배하고 있다. 일회적인 감성의 소비만을 강요하고, 정치적 편견을 주입하기도 한다.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더욱 세련된 대중의 취향을 고취하고 교양과 균형 잡힌 판단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직면해있다. 상업주의와 값싼 감상주의에 빠져 건전한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선전이나, 이성을 마비시키는 감각적 유희와 무의미한 억지웃음만을 찾아다니고, 똑같은 얼굴들이 뱉어내는 농지거리에 시청자들의 언어와 품성마저 저급하게 만든다는 혹독한 비판 속에 존재의 이유를 의심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부정적 시각은 그만큼 방송 매체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파고들어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혹독한 평가 속에서 TV에 등장한 엄정화의 모습은 전혀 다른 차원의 미디어의 기능을 보여준다.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모습, 출연한 다른 멤버들 속에서 세대를 넘어선 조화를 이루어내는 의연함, 그리고 그러한 그녀를 감싸는 정겨운 분위기. 그런 모든 것들이 방송 매체의 또 다른 긍정적 잠재력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로 무너진 우리의 일상에 위로와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의 트롯 열풍도 따뜻함을, 그리고 새로운 극복의 신화를 그리워하는 대중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유재석의 힘을 본다. 프로그램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말하고, 웃기고 감동을 전하는 역할이 그에게 주어져 있었다. 사비로 엄정화의 보컬 트레이닝을 주선하고, 스스로를 망가뜨려 출연진 모두에게 에너지를 채운다. 이효리도 대단한 엔터테이너였다. 강한 캐릭터를 설정하고도, 이따금씩 카메라에 잡히는 그녀의 순수한 미소는 동료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선한 심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짧은 머리에 어딘지 냉소적일 것 같은 작곡가 라도도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TV에서 연출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의 매체인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실제의 그였다. 그리고 그의 음악. 강한 비트와 제멋대로인 것 같은 가사와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여성 보컬 4인(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의 매력을 극대화시킨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파워 버튼 하나로 펼쳐지는 세상, 그것이 우리를 위로한다. 엄정화란 사람을 연예인이 아닌 우리의 이웃, 우리의 가족으로 느끼게 하는 것도 결국 방송이 지니는 힘일 것이다. 좀 더 품위 있고 균형 잡힌 방송을 기대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권리이다. 하지만 숨 막힐 정도로 다양한 정보와 오락이 넘쳐나는 시대에 TV 앞에서 보내는 한 시간이 따뜻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엄정화를 통해 느끼는 뿌듯함이 사실을 표현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참으로 멋진 예능이다. 만일 그것조차 연출된 것이라면 그건 더 대단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