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계에게 생명을?

‘그녀(Her)’ : 동시에 8,316명과 대화하고 641명을 사랑하다.

by 최용훈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은 인간이 개발한 가장 파격적인 변화의 기술이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디지털 변형’(Digital Transformation)이라고 부른다. 그중 가장 첨단의 기술이 AI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지능 활동을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진정 가능한 일인가? 현대의 AI 기술은 과연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가?


지능은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다. 그 지능으로 인류의 역사, 문화와 문명은 지속적으로 발전을 계속해 왔다. 지능에 관해서는 학자들 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미국의 심리학자 스턴버그(Robert J. Sternberg 1949~)에 따르면 지능은 구성적, 경험적, 상황적 요소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즉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분석할 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이전의 정보와 비교하여 새롭게 적용하며,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복합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의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의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과연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기술의 발명을 무한대로 추구한다.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기술-유토피아의 미래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상용화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의 세상은 분명 지금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이제 AI 시대의 ‘노멀’(기준)에 대해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시리(SIRI)와 같은 인공지능시스템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게 될 것이다. 마치 오늘의 우리들이 휴대전화의 화면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에는 더욱 무감해지고 기계만을 향해 중얼거린다. “너는 날 이해해.”


우버 앱을 통해 자율주행 택시를 부르고, 목적지를 입력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능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 혼자로는 수업 마치기를 기다려 우리의 아이를 태울 수도,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속도를 늦추거나, 길을 돌아갈 수도 없다. 그저 출발지와 목적지만을 인식하여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고작이다. 알파고는 어떤가? 이미 인간 바둑기사들을 무참하게 눌러버린 알고리즘을 장착했지만, 그것은 체스를 둘 수도, 포커 게임을 할 수도 없다. 그저 판 위에 놓이는 바둑알에 반응할 뿐이다.


지갑은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안면인식이나 기타 생체인식으로 신원이 확인되고 그것으로 모든 금전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말도 필요 없게 될지 모른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와 같은 신경기술을 이용해 AI와, 심지어는 다른 인간과도, 생각을 교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공지능은 진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조지 오웰의 ‘1984’가 그려내는 ‘빅브라더’의 디스토피아와 무엇이 다를까?


2013년 개봉된 미국 SF 영화 ‘그녀’(Her)는 한 남자의 깊은 외로움과 절망감을 표현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2000년 대 초에 인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지닌 클레버봇(Cleverbot)이라는 웹 애플리케이션의 기사를 통해 이 영화를 위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영화 'Her'

작품 속의 주인공 시어도어 트웜블리는 아내와 별거 중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다가 부부가 된 두 사람이었기에 시어도어는 전에 겪어보지 못한 고립과 적막감을 느낀다. 그는 내성적이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낭만적인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는 회사의 작가로 일하고 있었지만 그는 대인 관계에 있어 그다지 원만한 사람이 못 되었다. 그의 마음속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우는 감정은 늘 외로움이었다.


시간적 배경은 2025년, 시어도어는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말하고 적응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운영체제가 설치된 기기를 구입한다. 그는 사이버의 세상에 침잠된 현대인이었고, ‘그녀’(Her)는 그런 그가 위안을 찾는 사이버 세계의 상대자였던 것이다. 그는 그 운영체제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설정한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사만다라고 정한다. 시어도어는 ‘그녀’가 심리적으로 성장하고 스스로 상황을 익히고 배워가는 능력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둘 만의 목소리를 통한 대화는 그 어떤 개인적인 접촉보다도 강력하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시어도어는 사만다와의 대화와 교감에 익숙해지고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친밀해져서 성적인 교감에까지 이르게 된다. 고립감에서 벗어나고자 맺은 기계와의 관계가 지극히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시어도어는 문득 자신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사만다에게 다른 사람들과도 교감하는지를 묻는다. 사만다는 동시에 8,316명의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시어도어는 사만다에게 다른 사람들과도 사랑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사만다는 641명의 다른 사람들과도 동시에 사랑에 빠져있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사실이 시어도어에 대한 사랑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둘 사이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사만다의 고백은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둘 만의 교감, 은밀하고 개인적인 관계, 그러한 세상에서 만들어진 정신적, 육체적 사랑. 그 모든 것이 훼손된 관계에서 시어도어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순간 그가 느끼는 그 절망감, 소외감, 고립감 그리고 그 적막한 외로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할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마치 현대의 유전공학이 ‘클로닝’(cloning)을 통해 나와 똑같은 인간을 만들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편의성을 위해서, 인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기술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기계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미국의 발달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적 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란 “다른 사람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리고 그들과 함께 협력하는 법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감정을 가진 기계가 우리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사랑하고, 당신에게 분노하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바람인가?


인공지능은 결국 데이터에 입각해 판단하는 프로그램이다. 흑인이 백인보다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통계만으로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인공지능을 통제할 방법은 있을까? 인공지능에 의해 작동되는 자율주행 차는 만일의 경우, 선택해야 한다면, 승객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승객을 희생시키더라도 보행자를 살릴 것인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든다. 주 40 시간의 노동은 끝나게 될 것이다. 사실 하루의 정해진 노동시간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일 뿐이다. 그것은 개인의 목표와 열망을 성취하는 것을 방해한다. 인공지능을 이용해 많은 업무들이 자동화된다면 우리는 보다 많은 여유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풀어놓고 우리의 내적 창의성을 개발하고, 업무에 대한 부담과 평가 따위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있어 경계해야 할 일은 늘 데코럼(Decorum, 적정성)에 있다. 즉 한계를 인식하고, 도덕적 윤리적 성찰을 통해 발전의 필요성, 진보의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을 창조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괴물을 만들고, 그 앞에서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처럼 무책임한 자만심은 몰락을 앞당길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아직 지능이라 불릴 만한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고,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무모함은 인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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