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미국의 여류시인 루이스 글릭(Louis Gluck)으로 결정되었다. 수상 이유는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개별적 존재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 그녀의 명료한 목소리”(her unmistakable voice that with austere beauty makes individual existence universal)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1993년 발표한 ‘들에 핀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미국 시단에서 계관시인의 영예를 얻기도 했다.
글릭의 수상은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예측에서는 벗어난 것이었다. 매해 노벨상 발표 때마다 후보자들을 예측해 왔던 영국의 베팅사이트 나이서오즈에도 그녀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공동 6위에 올라있어 눈길을 끌었을 뿐이다. 많은 이들은 프랑스령 과들루프 출신의 흑인 소설가 마리즈 콩데(Maryse Condé, 1937~ )를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고 있었다. 글릭의 수상을 예측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현재까지 116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여성은 15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비추어 여성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점쳤던 것이 고작이었다.
글릭은 1943년 뉴욕시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시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던 소녀는 엄마와 아빠가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주던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다. 이는 이후 그녀의 시에 주요한 주제를 이룬다. 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한 글릭은 10대에 이미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기에 거식증에 걸려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는데, 이후 그녀는 그것이 ‘청결과 스스로를 통제하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글릭의 나이는 올해 우리 나이로 78세이다. 긴 세월 동안 발표한 많은 시들의 대부분은 외로움, 가족 문제, 이혼과 죽음 등 어두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실망, 거부, 상실과 고립 등의 감정을 너무도 선명하게 묘사함으로써 평론가들은 종종 그녀의 시를 황량하고 어두운 것으로 간주한다. 성전환 수술로 알려진 미국의 시인이자 하버드 대학의 교수인 스티븐 버트(Stephen Burt, 여성으로 성전환 후에는 스테파니로 개명)는 글릭의 시집 ‘아베르노’(Averno, 2006)를 읽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오븐에 머리를 넣고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를 제외하고 어떤 시인도 그녀만큼 절실하게 고립과 절망의 이야기를 들려준 시인은 거의 없었다. “
하지만 그녀의 시는 어둠 속에서 순수하고 밝은 빛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아울러 보여준다. 로버트 하스(Robert Hass)는 그녀를 현존하는 “가장 순수하고 완성된 서정시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다음의 시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표현하는 들에 피어난 야생화를 그리고 있다.
들에 핀 붓꽃 (The Wild Iris)
내 고통의 끝에는
문이 있었어요.
들어봐요: 당신이 죽음이라 부르는 그것을
나는 기억합니다.
머리 위로 소나무 가지 스치는 소리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힘없는 태양이
메마른 표면 위에서 깜빡거리고 있었죠.
검은흙 속에 묻힌
의식으로
살아남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리고는 끝이 났죠: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
영혼이 되어
말도 못 하고, 갑자기 끝나버려, 단단한 땅이
조금 굽어지는 것. 내가 낮은 관목 속으로
돌진하는 새들이라고 여겼던 그것.
당신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른 세계에서 오는 길을.
당신에게 하는 얘긴데 난 다시 말할 수 있어요.
망각에서 돌아오는 어떤 것도
돌아와 목소리를 찾는다는 걸:
내 생명의 한가운데서
커다란 분수가 솟아올랐어요,
푸른 바닷물 위에 드리워진
짙은 청색의 그림자들.
글릭의 언어는 소박하고, 직접적인 일상의 언어와 가깝다. 하지만 그녀의 시어는 리듬이나 반복, 그리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모호한 구절을 통해 구어와는 다른 무게감을 지닌다.
글릭은 자전적인 내용을 시로 옮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신화와 역사 그리고 자연에 기대어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현대의 삶을 강렬하게 그려낸다. 1996년에 나온 시집 “목초지‘(Meadowland)에서는 호머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라는 인물들을 현대의 해체되는 결혼생활과 연결해 묘사한다. 2006년의 작품 ’ 아베르노, Averno‘에서는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통해 어머니와 딸의 관계, 고통과 늙음, 그리고 죽음을 그려낸다. 글릭은 그렇듯 신화 속의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시에 보편성과 영원성을 부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서평 편집자인 작가 다니엘 멘델손은 글릭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녀의 시를 읽노라면 어두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해지는 것보다는 정결 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오늘날 세계문학에 표현되는 가장 순수한 시적 감수성들 중의 하나이다. 그 어떠한 장치도 없고, 유행이나 경향에 영합하지 않는 그런 완벽한 시이다. 거의 시간의 영역 밖에 서있는 무언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글릭은 컬럼비아 대학 재학 시절, 시인 스탠리 쿠니츠(Standley Kunitz)에게 시작법을 배웠는데 그는 그녀가 시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글릭은 1968년 첫 시집 ‘맏이’(Firstborn)을 발표하여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생계를 위해 버몬트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글릭은 시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는다. 글릭은 12권의 시집을 출간했는데 가장 최근의 시집 ‘충실하고 고결한 밤’(Faithful and Virtuous Night, 2014)은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017년에는 ‘미국의 독창성’(American Originality)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발표한다. 글릭의 초기 시집들은 실패한 사랑의 고통, 가족 간의 다툼, 실존적 불안과 싸우는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였고, 후기 작품은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고뇌를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글릭에게 있어서도 시를 쓴다는 것은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시를 통해 상실과 고통으로부터 의미를 찾아내고자 한다. 늘 친숙한 주제를 다루었지만 시의 형식에 대한 실험을 멈춘 적은 없었다.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린 언제나 충격을 받아야 해요. 그리고 어떤 면에서 다시 처음처럼 시작해야 하죠. 그러지 않으면 난 지겨워서 울어버리고 말 겁니다.”
50여 년의 끝없는 문학 여정의 한 순간, 2020년 10월 그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표현대로 잠시 겪게 되는 작은 충격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글릭은 마치 처음처럼 펜을 들고 또다시 신화 속으로, 역사 속으로 그리고 그녀의 내면 깊은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 그 아름다움을 전해주리라 믿는다. 미국에서 한 달에 두 번 발행되는 문예지 ‘뉴욕 리뷰 어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20년 10월 22일 자에 게재될 그녀의 시를 끝으로 소개한다.
A Children’s Story
Louise Glück
October 22, 2020 Issue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Tired of rural life, the king and queen
return to the city,
all the little princesses
rattling in the back of the car
singing the song of being:
I am, you are, he, she, it is—
But there will be
no conjugation in the car, oh no.
Who can speak of the future?
Nobody knows anything about the future,
even the planets do not know.
But the princesses will have to live in it.
What a sad day the day has become.
Outside the car, the cows and pastures are drifting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