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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23. 2020

거짓과 진실 사이

삶, 거짓과 진실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 줄타기

거짓말 탐지기는 사람의 혈압, 맥박, 호흡, 피부의 전도율 등 생리적 반응이 거짓말을 할 때 변화한다는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이 언제나 거짓말을 구분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적인 거짓말쟁이는 아무런 생리적 변화 없이도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믿을 만큼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사람에게 거짓말 탐지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거짓말 탐지기의 결과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없는 이유이다. 과연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거짓말에 익숙한 존재일까? 

  

아담과 이브의 장자인 카인은 질투심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다. 그리고 하나님이 동생의 행방을 묻자, “모릅니다. 제가 아벨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뻔뻔스럽게 반문한다. 성경의 이야기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거짓말쟁이, 살인자의 자손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조지 서반(George Serban)은 인간에게 있어 거짓말은 제2의 천성이라고 말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 잘 아는 두 사람이 10분 간 대화를 나눌 때 평균 두 세 차례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일상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말보다는 비언어적 요소에 더 의존한다.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은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에서 언어적 요소가 담당하는 역할은 7%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표정이나 태도와 같은 시각적 요소가 55%, 그리고 목소리와 같은 청각적 요소가 38%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믿지 못하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결과이다.    


거짓말에 대한 두 가지 태도    

  

거짓말은 무엇일까? 철학적인 측면에서 거짓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속이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 모든 거짓의 표명”이다. 즉 진실이 아닌 모든 허언은 거짓말이고 죄이다. 반면 다른 하나의 태도는 “진실하지 않은 남에게 해가 되는 이야기”라는 것으로 거짓말의 결과가 개입되는 입장이다. 즉 거짓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 하얀 거짓말‘(white lie)은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을 의미한다. 우리는 간혹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선의에서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두 번째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서양의 풍습이지만 만우절(April Fool's Day)도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을 수용하는 전통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무런 효과도 없는 약을 특효약인 것처럼 환자에게 주어 병을 치료하는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 역시 거짓말의 유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칭찬과 벌칙의 거짓말 

  

몇 년 전 국제 수학 경시대회에서의 일이다. 참가국 가운데 한국 학생들이 일등을 차지했고, 미국 학생들이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이한 것은 시험문제지 하단에 설문을 하나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당신은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것이었다. 일등을 한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아니요’라고 답했고, 최하위였던 미국 학생들의 경우에는 ‘네’라는 대답이 많았다. 그 결과를 놓고 미국의 교육이론가들은 자국의 교육 방식에 대하여 고심했다고 한다. 교육 심리학에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라는 것이 있다. 가치 있는 어떤 것을 제공함으로써 바람직한 행동의 강도와 빈도를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칭찬과 상을 통해 학습의 효과를 배가시키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교육이론가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미국의 교육이 학생들에게 실제 학습능력에 비해 과도한 긍정적 강화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육방식이 오히려 학습에 대한 동기와 노력을 약화시킨 것으로 분석하였다. 반면 한국 학생들의 태도는 꾸지람이나 벌과 같은 불쾌한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바람직한 행동을 취하는 ‘부정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의 예라 할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미국의 교육자들에게 자국의 교육방식을 재고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강화’라는 교육학적 개념을 거짓말과 대비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현실을 왜곡하여 지나치게 긍정적인 격려나 과도한 칭찬을 하는 것, 또는 불쾌한 결과에 대한 우려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게 하는 것은 불필요한 거짓말의 효과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은폐와 왜곡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그의 책 ‘내게 거짓말을 해봐’(Lie to me)에서 거짓말이란 ‘상대방이 자신을 속여도 된다고 동의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 역시 거짓말을 하겠다는 의도를 사전에 알리지 않았을 때’ 성립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짓말의 유형을 사실을 말하지 않는 ‘은폐’와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왜곡’으로 나누었다. 그의 생각대로 ‘은폐’가 거짓이라면, 진실에 침묵하는 것은 거짓일 것이다. 1956년 중국의 마오쩌뚱은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구호를 내세워 지식인들에게 진실을 말하기를 권장한다. 공산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지식인들이 대담한 주장을 내놓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오쩌뚱이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내놓은 책략이었다. 이후 그는 이들 불만세력들을 공산당과 사회주의에 대한 적으로 규정하고 숙청한다. 1960-70년 대 중국 문화혁명의 단초이다. 베이징 대학의 교수로 동양학의 대가였으며 중국의 국보로까지 추앙되었던 지셴린(季羨林) 교수는 이 일을 계기로 “거짓은 전혀 말하지 않고, 진실은 전부 말하지 않는다.”라는 처세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거짓과 진실이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것이다.      


거짓말의 파괴성    

  

악의를 품은 의도적인 거짓말은 종종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친다. 1950년 초, 미국의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은 공화당의 여성당원 대회에서 "미국 국무부 안에 당원증까지 가진 공산주의자가 205명이나 있다"라고 주장한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McCarthyism)의 시작이었다. 당시의 미국은 핵을 보유하기 시작한 공산주의 소련과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고, 중국의 공산화 등 공산주의의 확산에 두려움과 우려를 갖고 있었다. 당연히 매카시 상원의원의 주장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국무부 안에 공산주의 스파이가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시 조사위원회가 소집되었지만 매카시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던 명단은 FBI의 단순 조사 대상자 명단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한 번 퍼진 거짓 소문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였다. 매카시 의원은 증거 없는 거짓 발언으로 미국 정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누구든지 그가 적색의 공산주의자로 지명하면 즉시 스파이로 낙인이 찍혔다. 20세기 판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에 기대어 얻은 힘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었다. 그는 민주당뿐 아니라 자신이 속했던 공화당으로부터도 탄핵을 받기에 이르러 마침내 정치적 몰락을 맞게 된다.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1957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다. 그리고 그 해 연방대법원은 매카시가 공산주의자로 몰았던 인사들을 사면 복권하는 판결을 내린다. 매카시 사건은 거짓말의 파괴적인 힘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거짓말의 종말도 함께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남을 해치는 거짓말의 속성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상대의 약점이나 열등감을 이용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Othello)의 주인공은 거짓에 속아 사랑하는 아내의 정숙함을 의심한다. 그리고 결국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하는 어리석은 죄악을 저지른다. 오셀로를 이렇듯 격동시킨 것은 그의 부하 이아고였다. 그는 승진의 기회를 카시오에게 빼앗기게 되자 앙심을 품는다. 그리고 거짓의 덫을 놓는다. 작품 속의 오셀로는 무어인 즉 흑인이었다. 뛰어난 장군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그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화려한 궁전의 멋진 백인 귀족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아고는 그 열등감에 불을 지핀다. 그리고 오셀로에게 그 점을 상기시킨다. 문학 속의 거짓말 중 가장 비열한 거짓말이다.         


거짓은 남을 해치고 자신을 파괴한다. 그리고 결국 진실 앞에 벌거벗겨진다.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한다. 거짓은 반대로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모든 것을 멋지게 보이게 한다. “ 카뮈의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을 말한다. 하지만 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거짓말은 언제나 그릇된 환상만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거짓말은 반드시 진실의 반대는 아니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Sa'di)의 말처럼 ”호의에서 나오는 거짓말은 불화를 일으키는 진실“보다 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거짓과 진실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 줄타기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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