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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19. 2020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우리는 매일 길을 잃습니다.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A Wayfarer 

    by Park, Mok-wol    


Crossing a ferry 

Through a wheat field    


Like the moon in the clouds

A wayfarer goes by    


It’s a single road 

To the south, hundred miles away    


At each village with wine aged

The sky is aglow with the setting sun     


Like the moon in the clouds

A wayfarer goes by

(Translated by Choi)     


가을 낙엽이 발길에 차이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한 해의 끝은 겨울에서가 아니라 11월 이 늦가을에서 느껴지니까요. 벌써 봄여름을 보내고 이제 또 다른 시간의 골목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미로와 같은 길도 끝이 나겠지요. 나그네는 갈 곳을 몰라 그저 남쪽을 향합니다. 그곳의 햇살은 좀 더 따뜻하고, 바다 빛도 밝은 푸른색일 테니까. 그의 긴 방랑길에 켜켜이 쌓이는 그 짙은 회한들. 구름에 달이 미끄러지듯 숨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낼 때면 어두운 숲길에 희미한 나그네의 그림자를 남길 테지요. 다시금 떠올리는 여행길의 그 많은 풍경들, 사연들을 그 그림자에 묻습니다. 코끝을 간지럽히던 그 진한 탁주의 향도, 마을을 떠나올 때 등 뒤로 빛나던 그 석양빛도 이젠 다 잊어야 하지요.     


우리는 매일처럼 길을 잃습니다. 잃은 것인지 본래부터 갈 곳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린 그저 구름이 흘러가듯 그렇게 흘러갑니다. 지나온 날을 돌이켜 보면 우린 한 번도 이 길을 미리 정했던 적이 없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죠. 흐르듯 가는 낭만의 길입니다. 그래서 이성보다는 감성이, 현실보다는 이상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름답고 아련한 목소리로 잘 가라고 인사합니다. 이 밤 그 소리에 취해 내일의 갈 길을 떠올려 봅니다. 여전히 길은 외줄기인데 왜 자꾸 길을 잃게 되는 건지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담배 한 대가 간절히 필요한 깊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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