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Jul 26. 2020

아테네의 타이몬, 증오와 저주

셰익스피어 인문학: Timon of Athens

  타이몬은 남에게 주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재물뿐 아니라 그의 마음까지도 남을 위해 주었다. 부자였던 그는 기꺼이 친구들을 도왔고,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으며 그들을 사랑하였다. 그것은 그에게 재물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에게 있어 재물보다 앞서는 것은 다른 이들에 대한 따듯한 애정이었다. 그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친구들을 위해, 거짓으로 그의 호의를 얻으려는 비열한 이웃에게까지 관대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맹목적인 자비로움으로 그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엄청난 빚더미에 앉고 만다. 하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남에게 베풀었던 것과 똑같이 남도 자신의 어려움에 도움의 손을 내밀어주리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가 생각한 그런 세상이 아니었고, 친구도 그가 생각한 그런 친구는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고 가난해진 그에게 세상은 등을 돌린다. 그가 친구라 믿었던 이들 모두 그의 어려움에 애써 눈을 감고 심지어는 그의 어리석음을 비난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과 배신감 속에서 타이몬은 마지막 파티를 연다. 그의 저택에서 열렸던 화려한 연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사실은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우정을 시험해본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타이몬을 냉대했던 것을 후회하였다. 그리고 다시 그의 호의를 얻기 위해 뻔뻔스럽게도 그의 집에 몰려들었다. 타이몬은 그들을 웃는 낯으로 맞이하고, 준비한 식탁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접시의 뚜껑을 여는 순간 그곳에는 호화로운 음식이 아닌 뜨거운 물만 놓여있었다. 타이몬은 낯빛을 바꾸어 그들을 꾸짖고 그들의 얼굴에 뜨거운 물을 뿌리며 접시를 던진다. 타이몬은 이제 그들에게 베풀었던 우정과 애정을 거두고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다.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 속에 달아나고 타이몬은 다시 혼자 남겨진다. 

  빚에 쪼들리던 타이몬은 홀로 숲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의 흔적은 모두 지워버리고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자신을 격리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는 벌거벗은 채 풀과 나무뿌리를 먹고 숲의 동물들과 어울려 생명을 이어간다. 그는 인간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감으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고 만다. 

  어느 날 타이몬은 풀뿌리를 캐다가 땅에 묻힌 엄청난 황금을 발견한다. 황금을 보자 타이몬은 그것이 가져왔던 배신의 고통을 떠올린다. 그에게 있어 황금은 인간에 대한 증오의 원천이었다. 순간 그는 그 황금이 저주스러운 인간들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마침 아테네의 타락한 귀족에 항거해 일어난 반란군들을 만나게 되고 타이몬은 땅에 묻힌 황금을 이용해 아테네를 몰락시키리라 생각한다. 그는 반란군의 대장에게 황금을 건네며 아테네를 철저히 파괴하고 아테네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도록 부탁한다. 군대가 떠나고 얼마 후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아테네의 귀족 대표가 타이몬을 찾아온 것이었다. 한때 아테네의 위대한 장군이었던 그에게 귀족 대표들은 반란군을 막아 아테네를 구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그러자 타이몬이 그들을 향해 말한다. 자신은 아테네와 아테네 인들을 저주하며 그들이 철저히 파괴될 것을 바라고 있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자비를 바란다면 아테네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있는 숲 속으로 와 나무에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배려와 자선에 대한 배신만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타이몬은 모든 이들을 사랑했으나 그들의 거짓된 진실을 알게 된 순간 그들 모두에 대한 저주와 증오로 가득 찬 괴물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재물이 있었다. 재물만을 좇는 인간은 진실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것을 잔인하게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얼마 후 타이몬이 살던 숲 속 근처 해변에서 무덤이 하나 발견된다. 그 무덤의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그는 살아서는 모든 인간을 증오하고, 죽으면서는 역병이 모든 살아남은 자들을 멸망케 하기를 원했노라.’ 타이몬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을 배신당한 채, 그는 모든 인간을 혐오하고, 증오하며 세상을 떠난 것만은 분명하였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배려 그리고 그들을 위한 헌신은 그에 따른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타이몬에게 돌아온 것은 비열한 배신 뿐이었다. 재물로 파괴된 인간상은 오늘날에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아직도 우리의 주변에 현대의 타이몬들과 그의 거짓된 친구들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돈만큼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황금만능주의를 비난하지만, 황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우리의 내부에 깊게 뿌리 박힌 본성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권력에 대한 탐욕보다도 더 보편적인 것이 부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진정한 부는 우리가 마음으로 만족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데서 불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황금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생각은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돈보다 우정을 더 큰 가치로 여겼고, 부에 대한 애정보다 자비를 더 큰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서양의 기독교적 도덕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결코 돈을 혐오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돈은 품위를 지키고 사랑을 굳건히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연인들은 사랑의 정표로 귀한 반지를 서로 나누었고, 부모는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재산을 물려주었으며,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자비를 베풀고 있다. 돈 그 자체가 인간을 파괴하는 수단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서양의 기독교적 인생관은 직선적이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최후의 심판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그것이 세속의 인간사가 겪어야 할 정해진 과정이다. 반면 동양의 세계관은 원형적이다. 세상사가 모두 둥글게 제자리로 돌아오고 생명은 윤회를 통해 끝없이 반복된다. 그래서 행동은 결과를 낳지만 그 결과는 또다시 새로운 행위를 낳는다.  

  셰익스피어의 극은 철저히 직선적이다. 모든 행동은 그 행동에 따르는 최종적인 결말을 지닌다. 물론 권선징악적이다. 모든 악인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로 처벌받는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그들은 타인의 불행에 책임을 진다. 그리고 언제나 선은 보상을 받는다. 선한 인간들은 결국 사랑을 되찾고 가족을 되찾고 그들의 재산을 되찾는다. 그렇게 그들은 행복한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들은 선한 인물들을 반드시 행복한 결말로 이끌지는 않는다. 비극 속의 주인공들은 악인에 대한 처벌과 무관하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비극은 언제나 그렇게 잔인한 결말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비극은 직선적이다. 언제나 최후의 심판은 인간 모두에게 똑같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타이몬’도 예외는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타이몬이라는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한다. 그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사랑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파괴되는 인물이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어리석게도 인간의 악한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의 유한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비극의 주인공처럼 탐욕, 자만심, 질투 등에서 기인하는 비극적 결함이라고 얘기하기에는 그의 순수함이 너무 애처롭다. 그의 내적 심리는 극단적인 인간애에서 극단적인 인간 혐오로 변화한다. 그는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인물이며, 다른 극에서와는 달리 모든 사건들이 그의 변화 하나에 좌우된다. 그에게는 안타고니스트가 없다. 그 자신의 내부에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 안타고니스트: 연극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면서 극을 비극으로 이끄는 존재

  * 프로타고니스트: 연극에서의 주인공을 말함

  타이몬은 그에게 거짓으로 아첨하는 모든 이들의 속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모든 것을 수용하고 베풀기만 하는 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의 일이고, 용서하는 것은 신의 일이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is divine.) 바로 그것이 그의 비극이며 죄악이다. 인간의 악한 속성을 그는 신처럼 용서한다. 자신의 부를 신의 전능함에 견주는 죄를 저지른다. 그것은 인간이 신성에 도전하는 또 다른 죄악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타이몬’에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결정적인 요소는 그가 모두에게 배신당한 그 순간, 그의 신성이 악마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모든 인간을 저주한다. 그리고 모든 인간과 세계의 파괴를 염원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타이몬은 돈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몰락한다. 그리고 그는 용서를 배우지 못한다. 인간에 대한 배신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영혼을 피폐화시키는 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그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용서받을 수 있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테네의 모든 사람들의 죽음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악마의 귀기를 내뿜는다.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결코 세상을, 인간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타이몬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복원할 수 있을 황금을 포기한다. 그리고 아테네와 아테네인이 몰락하기 이전에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것은 어쩌면 묘비에 적힌 글과는 달리 인간에 대한 자신의 저주와 악의를 묻어버리고자 하는 그의 의지에 대한 은유는 아닐까. 그렇게 보면 셰익스피어는 직선적인 세계관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이몬이 살아난다면 인간을 다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 좀 더 현명해질 것이다.                 


  돈은 참으로 영묘한 존재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를 황폐한 삶으로 이끌기도 한다. 재산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쓰고 그것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 가가 중요하다. 어떤 이에게 한 푼은 다른 사람의 백 냥보다도 귀할 수 있고 그것으로 백만장자보다도 행복할 수 있다. ‘아테네의 타이몬’은 돈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우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자본론’을 쓴 칼 마르크스가 인용하여 유명해진 다음의 구절은 황금, 돈의 본질에 대한 항구적 경고이다.       

         이것이 뭐지?

         금인가? 황색의 휘황찬란한 귀중한 황금?... 

         이것만 있으면 검은 것도 희게, 추한 것도 아름답게, 

         악한 것도 착하게, 천한 것도 귀하게, 늙은이도 젊게, 겁쟁이도 용감하게 만들지.

         하, 신들이여 이것이 왜? 이게 대체 뭔가?

         이 황금으로 제관이든 하인이든 모두 다 당신 곁에서 끌어갈 수 있으며 

         건장한 사내의 머리맡에서 베개를 빼가기도 하니. 

         이 황색의 노예...

                                            (Act IV. Scene 3)     

  자신의 재산이 무한할 것으로 착각한 타이몬이 아첨하는 무리들에게 재산을 탕진하고 인간에 대한 혐오감에 가득 찬 채 숲 속에서 고립무원의 삶을 살다가 우연히 발견한 황금덩이를 보며 탄식하는 모습이다. 그는 자신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빈털터리가 된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리자 인간에 대한 극렬한 배신감에 몸부림친다. 그는 자신의 조국 아테네와 아테네 사람들 전체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혼돈이여 오라!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역병이여

         그대의 강하고 전염되는 열병으로 썩어 문드러진

         아테네 인들을 뒤덮어라. 원로원의 귀족들을 다리병신으로 만들고,

         그들의 행위에 걸맞게 사지를 절게 하라. 탐욕과 방종이 

         젊은 놈들의 마음과 뼈 속에 스미게 하고 

         미덕을 거스르게 하여 

         폭동 속에 익사케 하라. 가려움과 고름을

         모든 아테네 인들의 가슴에 뿌려 그 자손들 모두

         문둥이가 되게 하라!...

         ...... 

         이제 타이몬은 숲으로 간다. 그곳에는

         가장 거친 짐승들조차 인간보다는 친절할 걸.

         신들이여―들으시오 모든 선한 신들이여―

         저 성벽 안과 밖의 모든 아테네 인들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 타이몬의 증오를 키우도록 허락하소서,

         지체가 높거나 천하거나 인간이라는 종족 모두에게!

                                           (Act IV. Scene 1)        

  황금으로 인한 증오는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돈 때문에 아첨하고 돈 때문에 배신하고 돈 때문에 증오하는 세상은 지옥이다. 아테네 뿐 아니라 타이몬이 숨어든 숲도 지옥이다. 세상 전부가 지옥이고 ‘황색의 노예’들을 가두는 감옥이다. 숲 속 타이몬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곳에 

         상실된 비참한 영혼의 비참한 육신이 누워 있다.

         내 이름을 찾지 말길! 역병이여, 남아있는 비열한 겁쟁이들을

         모조리 불살라라.

         이곳에, 나 타이몬이 누워있다. 살아서 모든 인간을 증오했고,

         죽어서도 실컷 저주한다. 그러니 그대 이곳을 지나 발걸음을 

         남기지 말기를.  

                                        (Act V. Scene 4)        

  이렇듯 저주받은 영혼이 있는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인간을 증오한 타이몬. 그는 돈을 좇아 부나비처럼 불길 속을 뛰어드는, 돈 때문에 배신하고 증오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미오와 줄리엣, 차가운 키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