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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01. 2020

한여름 밤의 꿈, 사랑의 환상

셰익스피어 인문학: A Mid-summer Night's Dream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있다.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다른 여자는 그중 한 남자를 사랑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축복이다. 하지만 주는 만큼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은 고통이 된다. 그런 아픔을 안고 있던 처녀의 이름은 헬레나, 한 여름밤, 요정들의 숲은 그녀의 슬픈 사랑이 갑자기 이루어지는 신비롭고, 황홀한 무대가 된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은 사랑의 기쁨과 아픔이 마법처럼 교차된다. 그리고 한 곳에 머물러 있던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향해 흐른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런 연극이다.     


한 여름밤, 오베론이 지배하는 요정의 숲에 한 쌍의 연인이 숨어든다. 라이샌더라는 청년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처녀 헤르미아는 아버지가 정해준 약혼자와 결혼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부모의 허락을 못 받으면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겠지만, 그 시대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결혼하는 여자는 법의 엄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니 사랑의 도피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투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정해준 헤르미아의 정혼자 디미트리우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처녀 헬레나가 그들을 쫓아 함께 숲으로 들어온다. 헤르미아의 친구였던 헬레나가 그들의 도피행각을 디미트리우스에게 알렸기 때문이었다. 헬레나는 디미트리우스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헤르미아를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찾아 나선다 해도 자신이 동행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돌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미트리우스의 냉담함에 절망한 그녀는 이렇게 한탄한다.    

  

      “아테네에서는 나도 그 애만큼은 예쁘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게 뭐? 디미트리우스의 생각은 다른데. 누구나 다 아는 걸 그이만 몰라주고 있어.

그 이가 헤르미아에게 끌려 넋을 잃고 있듯이,

난 그이의 장점만을 동경하고 있나 봐.

아무런 가치도 없고 비천한 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보면 훌륭한 형태를 갖추게 되거든.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니까.

그래서 날개 달린 큐피드는 장님으로 그려진 거야. "   (헬레나, 1막 1장)      

  

일반적으로 ‘한 여름밤의 꿈’은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지키려는 헤르미아와 라이샌더에게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것이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극을 설명하는 규칙이다. 다시 말해 장애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이뤄내는 연인의 이야기가 낭만희극의 중심 되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그 보다 더 큰 장애물이 있을까? 그래서 헬레나를 주목하게 된다. 그녀는 결국 디미트리우스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그의 사랑이 헤르미아에서 헬레나에게로 옮겨가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지만, 무심한 가슴에 어떻게 해야 사랑이 생겨날 수 있을까. ‘한 여름밤의 꿈’에서 헬레나는 넘을 수 없는 사랑의 장애에 부딪힌 또 다른 낭만극의 주인공이 된다. 이 두 쌍의 남녀들은 그 신비스러운 숲에서 한 바탕 한여름 밤 사랑의 꿈을 꾼다. 기대와 실망, 환희와 고통,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랑의 빛들이 마법처럼 찬란하게 비춘다.     

  

사랑은 왜 그리 쉽지가 않은지. 두 사람이 서로를 그렇게 원하는데 왜 그것은 늘 방해를 받는 것일까? 라이샌더와 헤르미아는 뜨거운 사랑의 열정만큼이나 사랑의 고통을 함께 겪는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만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는 사람들은 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라이샌더 : 옛날부터 이야기책이나 역사책에 나오는 진정한 사랑은 절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소.

헤르미아 : 그것이 숙명이라면 우리들의 아픈 가슴에도 참을성을 가르쳐 주도록 해요. 사랑엔 늘 고통이 따른다죠. 걱정이니, 꿈이니, 한숨이니, 소망이니, 눈물이니 하는 것도 가여운  사랑의 동반자들이에요.      (1막 1장)    

  

사랑은 고통을 넘어서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인내와 용기는 단 하나의 이유로 생겨난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버텨낸다. “진정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신이 존재한다.”란 말이 있다.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이고,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절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소.”라는 라이샌더의 말은 어려움에 처한 모든 연인들에게 용기를 준다. 장애를 만난다고 해서 실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 모든 진실한 사랑이 그랬으니까. 걱정, 한숨, 눈물은 사랑의 동반자이니까.   

  

요정의 왕 오베론은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왕비 티타니아에게 불만이 많다. 그래서 그녀를 골려주기로 작정한다. 오베론은 팬지 꽃잎의 즙으로 사랑의 묘약을 만든다. 그 묘약은 잠들어 있는 사람의 눈꺼풀에 뿌려지면 잠에서 깨어나 처음 본 대상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아내를 골려줄 계획을 세운 오베론은 말썽쟁이 시종 퍼크에게 ‘허무한 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팬지꽃 즙을 구해오도록 시킨다. 오베론은 티타니아가 잠이 들면 그 사랑의 묘약을 그녀의 눈에 뿌릴 작정이었다. 그리고 숲에 연극 연습을 하러 온 직조공 보텀을 마법의 힘으로 당나귀 머리를 한 괴물로 변화시킨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 제일 먼저 보게 될 대상이었다.

 

그러던 중 오베론은 숲을 찾아온 디미트리우스와 헬레나를 보게 되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다. 자신의 사랑을 애절하게 고백하는 헬레나와 그것을 냉정하게 거부하는 디미트리우스의 모습을 본 오베론은 짝사랑에 빠진 헬레나의 처지가 너무나 가여웠다. 그래서 그녀를 도울 생각으로 시종 퍼크를 시켜 디미트리우스의 눈에 마법의 꽃 즙을 뿌리도록 시킨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헬레나를 보게 되면 그녀와 사랑에 빠질 것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퍼크는 숲에 와 있던 또 다른 남녀 라이샌더와 헤르미아를 먼저 보게 된다. 오베론에게 아테네의 두 젊은 남녀라는 얘기만 들은 퍼크는 그들이 왕이 말한 자들이라 오해하고 라이샌더의 눈에 마법의 꽃 즙을 뿌린다. 이렇게 한 여름밤 숲 속에서는 흥미로운 사랑의 게임이 벌어지게 된다.     

  

라이샌더가 잠에서 깨어 처음 본 것은 헤르미아가 아니라 헬레나였다. 순간 라이샌더는 헬레나에 대한 정염에 사로잡힌다. 잠에서 깨어난 헤르미아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마주치게 된다. 어젯밤까지 자신만을 사랑하겠노라 약속했던 라이샌더가 갑자기 헬레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을 냉대했기 때문이다. 이 황당한 상황을 본 오베론은 또다시 잠든 디미트리우스에게 사랑의 묘약을 뿌리고 잠을 깬 그도 헬레나를 보게 된다. 이제 두 남자의 마음은 모두 헤르미아가 아닌 헬레나를 향하게 된다. 이렇게 오베론의 사랑의 묘약은 의도와는 달리 사랑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숲 속에서는 예상치 못한 연인들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두 남자가 동시에 헬레나를 향해 사랑의 맹세를 늘어놓자 그녀는 그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반면 어제까지 두 사람의 구애를 받던 헤르미아는 라이샌더에 이어 디미트리우스까지 자신을 외면하고 헬레나를 쫒자 절망감에 빠진다. 마침내 헬레나를 두고 연적이 된 두 남자는 결투를 벌이기로 한다. 당황한 오베론은 마법을 부려 두 남자가 길을 잃고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든 라이샌더의 눈에 꽃 즙을 바르고 헤르미아를 보게 한다. 그러자 두 연인은 사랑의 마음을 회복하고 이제 요정의 숲은 사랑에 빠진 두 쌍의 연인이 함께하는 행복의 장소가 된다. 티타니아와 보텀에게 걸린 마법도 풀어지고 요정의 숲에는 마침내 사랑과 평화가 깃든다.     

         

   “깨어나면 이 모든 우스꽝스러운 소동이

하나의 꿈이고 아무 의미 없는 환영으로 보일 거야.

연인들은 아테네로 돌아가고,  

그들의 결합은 죽는 날까지 결코 끝나지 않겠지. “     (오베론, 3막 2장)    

  

사랑은 한바탕 꿈일지 모른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하지만 그것이 헛된 꿈은 아니다. 왜냐면 그 꿈 이후에 온 그들의 사랑, 그들의 삶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마법의 힘에 의해 꿈속에서 이루어진 사랑이지만 사랑하는 마음과 그들의 결합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렇게 꿈처럼 와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준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Henry Wadworth Longfellow)는 ‘생의 찬가’(A Psalm of Life)를 통해 삶을 이렇게 노래한다.     

         슬픈 노래로 내게 말하지 마오.

         인생은 그저 헛된 꿈이라고!

         잠든 영혼은 죽은 것이니

         만물이 보이는 대로는 아닌 것.    

         인생은 실재하는 것, 진지한 것!        

         무덤이 그 종착지는 아니다;

         흙으로 태어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란 말은

         영혼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한 여름밤 연인들은 꿈을 꾼다. 그들의 애타는 사랑의 꿈을. 그리고 그 꿈속의 사랑은 잠을 깨어 현실이 된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하다 숨어 잠든 아이가 깨어나서 따듯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들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의 사랑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현실은 ‘실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진지해야 한다. 그리고 영혼처럼 영원해야 한다. ‘한 여름밤의 꿈’은 그저 사랑이야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꿈과 현실 속을 오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싶은 우리 모두의 간절한 염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너무도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외부적인 이유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진실한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남녀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첫째는 불신. 서로에 대한 믿음이 퇴색한다면 무엇으로 사랑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데스데모나에 대한 오셀로의 의심은 결국 그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파괴하고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가지 않았던가. 사실 오늘의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그저 표피적인 격정과 감각적인 욕망에서 일회적인 사랑을 하다가 가볍게 헤어지는 그런 사랑.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보다는 자신의 욕심과 집착만을 위해 강요하는 사랑. 그런 사랑이 우리 주변에 흘러넘친다. 그래서 설렘도 희생도 애달픔도 진정한 기쁨도 놓치고 마는 가벼운 사랑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둘째는 이기심.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데, 상대에게 원하기만 하는 그런 사랑을 우리는 흔히 발견한다. 나만을 위한 사랑, 상대의 희생을, 이해와 용서만을 원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을까. 햄릿의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은 너무도 이기적이었다. 자신을 믿으라는 햄릿의 그 달콤한 사랑의 맹세가 어느 순간 그렇듯 냉정함으로 변하는 것은 외부적 환경과 감정에 좌우되는 이기적인 사랑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라 하기 어렵다. 짝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헬레나의 디미트리우스에 대한 사랑은 그래서 사랑이 아니었다. 그의 사랑을 얻고 난 후에야 비로소 헬레나는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과 자신을 버리는 희생의 마음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랑은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교감이다. 일방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관계는 희생일지언정 사랑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따뜻한 마음이 교환되고, 다정한 눈빛이 교환되는 상호적인 관계가 사랑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기심이나 일방적인 희생으로 가득한 관계에서 무슨 사랑이 생겨날 수 있을까. 헬레나와 디미트리우스의 다음과 같은 대화는 일방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디미트리 :  난 널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 더 이상 좇아오지 마. 라이샌더와 아름다운 헤르미아는 어디 있지? 그들이 이 숲으로 도망쳐 왔다고 했는데, 헤르미아를 볼 수 없으니 미칠 것만 같군. 어서 썩 꺼져! 더 이상 좇아오지 말라고!

헬 레 나 :  당신이 날 끌어당기고 있어요. 당신은 차디찬 심장을 가진 자석인가 봐요. 그 자석으로 절 끌지만 마세요. 그럼 저도 당신을 그만 좇겠으니.

디미트리 :  내가 널 끌어당긴다고? 내가 너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한 적이 있나? 솔직히 난 널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할 수도 없다고 말했잖아.

헬 레 나 :  당신이 그렇게 대할수록 난 더 당신을 사랑하게 돼요. 난 당신의 충성스러운 개예요. 그러니 당신이 나를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매달리게 되죠. 구박을 하든, 때리든, 모른 체하든, 경멸하든, 아무래도 좋아요. 개같이 대해도

좋다니까요.

디미트리 :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 좀 지껄이지 마.

네 꼴만 봐도 소름이 돋아.

헬 레 나 :  난 당신을 보지 못하면 피가 말라요.      (2막 1장)        

  

이래 가지고 진정 사랑을 얻을 수 있겠는가.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결코 구걸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그래서 헬레나의 사랑은 가슴 아프지만 사랑이 아니었다. 세 번째 장애는 오만함이다. 리어는 자식의 사랑을 그들의 말로써 가늠하려 했다. 그래서 그것에 따라 물려받을 유산의 크기를 정해놓고,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라고 강요한다. 이 얼마나 오만한 발상인가. 그렇게 확인된 사랑이 사랑일 수 있는가. 그래서 끝내 입을 다문 리어의 막내딸 코델리아가 진정한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만은 겸손의 반대말이 아니다. 왜냐면 사랑은 오만으로도 얻을 수 없지만 겸손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에게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고 자신감 있게 그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이다. 사랑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오만을 버리고 자신감을 가지라.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솔직하고 진실한 모습을 자신 있게 드러내라. 상대는 당신의 우월함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혹은 그녀가 원하는 것은 솔직하게 다가오는 사랑에 대한 확신임을 기억하라. 사랑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애는 냉담함이다. 햄릿은 왜 그리 오필리아에게 냉담했던가. 오필리아는 버려진 사랑에 절망해 목숨을 끊는다. 햄릿에 대한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못했던 그녀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가련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한 여름밤, 디미트리우스의 냉담함은 마법에 의해 사랑으로 변한다. 그래서 그 밤의 꿈은 현실이 된다. 그 마법을 당신의 사랑에 대한 자신감이라 한다면 어떨까? 사랑은 오만함을 거부하지만, 소심하게 망설이는 당신의 모습은 더욱 애처롭다.    

  

누군가를 사랑을 하려면 먼저 스스로를 사랑하라. 사랑하는 두 연인은 같은 시선으로 한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상실한 관계는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외로워서 무작정 사랑에 빠지는 것도 금물이다. 사랑은 주고받을 준비가 되어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받기만 해도 안 되지만 주기만 해도 진정한 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랑해서 행복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 여름밤의 꿈’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낭만희극 모두에서 사랑이 두 사람의 결혼으로 끝나는 이유이다. 사랑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다.     

  

오베론은 신처럼 사랑을 지배한다. 큐피드의 화살처럼 사랑의 묘약으로 연인의 사랑을 조종한다. 사랑은 운명이어서, 그렇게 절대적인 힘에 좌우되는 것일까? ‘한 여름밤의 꿈’은 사랑에 대한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는 ‘사랑은 옮겨가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라이샌더는 사랑하던 헤르미아를 버리고 헬레나에게 사랑의 열정을 토로한다. 디미트리우스 역시 헤르미아에 대한 사랑을 접고 헬레나에게로 향한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물론 라이샌더는 다시 헤르미아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지만 그의 사랑은 그렇게 맥없이 흔들리지 않았던가. 셰익스피어는 사랑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은 변한다. 열정은 식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라진 열정이 다른 사랑을 만나 또다시 타오른다. 사랑은 그렇게 옮겨간다. 우리 마음속에는 도대체 몇 개의 사랑이 들어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져도 다른 주머니의 사랑은 늘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더 슬프다. 물론 평생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렵게 이루어낸 사랑은 다른 사랑보다 더 강인하기 때문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류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그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릴 적의 사고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이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어느 날 한 젊은 시인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 시인은 로버트 브라우닝이었다. 무명의 시인이었던 그는 여섯 살 연상인 엘리자베스에게 자신의 사랑을 담은 편지를 보낸다.     

       

"배릿 양, 당신의 시를 온 마음 다해 사랑합니다.

당신의 시는 내 속으로 들어와 나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온 마음 다해 그 시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당신도 사랑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그의 사랑을 거절하던 엘리자베스는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연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주변 사람들, 특히 엘리자베스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힌다. 나이 문제도 있었지만, 엘리자베스의 신체적 장애가 결혼생활에 걸림돌이 되리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주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다. 그렇게 엘리자베스는 브라우닝이라는 성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그녀의 건강을 위해 이태리의 피렌체로 옮겨간다. 그리고 아들을 낳고 15년을 산 뒤, 엘리자베스는 남편의 품에 안겨 먼저 숨을 거둔다. 두 시인의 이야기는 영국 문학사에서 유명한 사랑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신혼시절 이태리에서 남편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다던 그녀의 시는 결코 변하지도 옮겨가지도 않을 사랑을 노래한다. 그중에서도 다음의 시는 사랑을 위해 죽음마저도 거부하겠다는 한 여인의 사랑의 의지가 담겨있는 아름답고 처연한 시로 감동을 준다.                   

                   

              참으로 그러할까요?     

         이 자리에 누워 죽고 만다면,

         내가 없으면 그대는 생의 기쁨을 잃을까요?

         무덤의 습기가 내 머리를 적시면, 당신에게       

         햇볕이 더 차가울까요?

         .................

         나의 손이 떨리는 때라도

         당신의 술을 따를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대여.

         죽음의 꿈을 버리고 생의 낮은 경지를 다시 

         찾아올게요.

         ..................

         나는 사랑을 위하여 무덤을 버릴 겁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고운 하늘을 그대 있는    

          이 땅과 바꿀 겁니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지 않은가? 죽음조차도 거부하는 용기를 일으키는 사랑.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는 그 절절한 바람과 믿음. 이런 사랑을 원치 않는가? 오늘의 사랑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브라우닝 부부의 사랑이 결코 현실에서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늘 다른 곳으로 흘러가려는 사랑, 그래서 영원한 내 사랑은 없는 것 같은 쓸쓸함. 헬레나는 사랑을 얻었지만, 헤르미아에 대한 디미트리우스의 그 절박한 사랑은 어디로 간 것인가. “사랑의 마음에는 분별력이 깃들 수 없어. 그러기에 (큐피드에게는) 날개는 있어도 눈은 없는 거야.”라는 헤르미아의 대사는 사랑의 열정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가볍고, 허황한 것인가를 말해주기도 한다. 마법의 힘처럼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사랑을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한다!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사랑을 지키기 어려운 이 시대 모든 연인들에게 셰익스피어는 사랑의 나약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인내와 용기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오베론은 마법의 힘으로 사랑을 조종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내지만 오늘날의 오베론은 과연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아픔을 뒤로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사랑을 우리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보며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현대의 오베론은 누구인가? 돈인가? 권력인가? 마음보다는 물질로 사랑의 깊이와 진정성을 가늠하는 오늘의 세태에서 우리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그 꽃 즙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젊은 연인들이여! 사랑의 마음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열정이고 희생이고, 그와의 교감이다. 가벼이 여길 사랑에서 벗어나 오베론의 팬지 꽃 사랑의 묘약에도 흔들리지 않을 용기를 가질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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