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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28. 2020

‘헨리 8세’, 새로운 여왕의 정통성

헨리 8세의 사랑과 욕망/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

헨리 8세의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시대는 영국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발판을 놓았고, 스페인의 무적함대(Invincible Armada)를 무찌르고 유럽 제일의 해군력을 자랑하게 된 것도 이 시기였다. 신교에 대한 종교적 관용이 베풀어지고, 식민지의 개척에 따른 무역의 확대로 국민들의 삶의 질은 향상되었으며, 사회적 만족감의 상승과 함께 새로운 꿈과 열정이 폭발한 시대였다. 또한 이 시기는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등장과 더불어 ‘연극의 시대’라 불리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헨리 8세와 그의 둘째 부인인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비운의 공주였다. 장미전쟁을 통해 왕권을 잡은 튜더 왕조의 헨리 7세는 젊은 시절의 그 열정적이고 강인한 모습을 변화시켜 영국의 내정을 안정시키는데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새롭고 튼튼한 왕실을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었던 것이다. 왕위를 이은 헨리 8세는 강화된 왕권에 기대어 정치보다는 학문과 예술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그런 이유로 정치는 대부분 대법관이었던 울지 추기경에게 맡겼고 그런 이유로 귀족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헨리 8세는 스페인 공주 출신인 캐서린 왕비와의 사이에 메리라는 딸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왕의 마음은 궁정의 시녀였던 앤 불린에게 향해 있었다. 사랑에 빠진 헨리 왕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이혼 허가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교황청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캐서린 왕비의 조국이었던 유럽의 최강국 스페인의 심기를 불편케 할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분노한 헨리 8세는 교황청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오늘의 성공회이다.     

헨리 8세(가운데)와 앤 불린, 울지 추기경 초상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된 헨리 왕과 앤 불린 사이에 엘리자베스 공주가 태어난다. 하지만 왕이 아들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앤은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어렵게 다시 잉태한 아이는 아들이었으나 사산아였다. 또다시 헨리 왕은 앤 불린과 멀어지게 되고 결국 왕은 그녀에게 부정한 여인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런던탑에 가두어 죽게 한다. 왕과 앤의 사랑의 기간은 1,000일 간이었다. 그녀의 삶을 그린 영화의 제목이 ‘1,000일의 앤’이 된 이유이다. 헨리 왕은 귀족 집안의 딸 제인 세이무어와 세 번째 결혼에서 마침내 아들 에드워드를 얻게 된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되어 사망하였고, 헨리 왕은 이후 세 번 더 결혼을 하지만 더 이상의 자녀를 두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헨리 8세의 세 남매는 아들인 에드워드, 첫째 왕비의 딸인 메리, 그리고 앤 불린의 딸 엘리자베스의 순으로 왕위 계승 순서가 정해진다. 헨리 8세의 사후 이 순서대로 왕위가 이어지지만 아들 에드워드와 첫째 딸 메리가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함으로써 마침내 엘리자베스가 등극하여 영국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그런 정치적 격동을 거쳐 탄생하게 된다.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 이복 언니 메리 여왕의 견제와 박해, 그리고 수많은 정치적 음모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성장하고, 단련되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는 역사 속의 헨리 왕을 소환하여 그의 사랑, 변심과 배신, 그리고 궁중의 암투를 그리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원래의 제목은 ‘모든 것이 사실이에요.‘(All is True)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사극, 헨리 8세


연극 ‘헨리 8세’는 실제의 사실들을 다루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시작된다. 막이 오르면 버킹엄 공작이 다른 귀족들과 함께 헨리 왕과 프랑스 왕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화중에 버킹엄 공은 대법관 울지 추기경이 지나치게 과도한 권력을 누리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자 예기치 않게 버킹엄 공작은 반역죄로 체포되어 투옥된다.           


왕의 총애를 얻고 있던 울지 추기경은 국민들에게 지나치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민란이 벌어질 가능성까지 있었다. 캐서린 왕비는 울지의 그러한 태도를 비난하고 왕은 그녀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은 버킹엄 공작에 대한 선처를 간청하는 왕비의 요청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왕은 울지가 조작한 증거에 기대어 버킹엄 공작에 대한 재판을 명령한다.        


한편 울지 추기경은 햄프턴에 있는 그의 성에서 잔치를 벌인다. 그 자리에는 많은 귀족들이 참석하였고 앤 불린도 함께 한다. 연회가 계속되는 동안 왕의 일행이 양치기로 변장하고 등장한다. 왕을 알아본 울지는 춤이 시작되자 앤을 왕의 파트너로 정해준다. 그녀를 본 왕은 첫눈에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결국 헨리 왕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기를 원하게 된다.      


런던에서 진행된 버킹엄 공작에 대한 재판에서는 거짓 목격자들에 의해 공작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처형 직전 그는 대중들을 향해 울지 추기경을 강력히 비난한다. 하지만 울지의 영향력은 커져가고 심지어는 왕과 왕비의 이혼 배후에 울지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헨리 왕과 울지 그리고 여러 종교지도자들은 왕과 캐서린 왕비와의 결혼의 유효성, 그리고 이혼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캐서린 왕비는 죽은 헨리 왕의 형 아서의 아내였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앤 불린은 왕비의 슬픔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한다.       


캐서린 왕비는 음악으로 상심한 마음을 달랜다. 울지는 지속적으로 왕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지만 캐서린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사실 그녀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이미 이혼은 기정사실화 되어있었다. 법정에서 캐서린은 자신의 조국 스페인의 자문관들을 불러줄 것을 요구하지만 울지는 거부한다. 그러자 왕비는 재판의 판결은 로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법정에서 나가버린다. 궁 안에서 왕과 앤의 비밀 결혼에 대한 얘기가 퍼지고 있는 가운데 헨리 왕은 울지가 교황청과의 관계 단절을 피하기 위해 이혼을 반대하는 교황에게 은밀하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알게 된다. 교황청과 대립하던 왕은 격노하고 귀족들의 뜻에 따라 울지를 대법관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 그의 뒤를 이은 대법관이 토머스 모어(Thomas More)였다. (‘유토피아’의 저자이기도 했던 모어 역시 가톨릭의 교리에 따라 이혼을 반대하고 앤 불린을 비난하다가 결국은 참수당한다.) 하지만 울지의 후임으로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크랜머는 헨리 왕과 캐서린 왕비의 이혼을 승인한다.         

'헨리 8세' 공연

마침내 앤 불린은 화려한 예식과 함께 왕비의 자리에 오른다. 한편 대법관의 자리에서 물러난 울지 추기경의 죽음을 전해 들은 캐서린 왕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시녀들에게 왕비로서의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러 달라고 부탁한다.      


궁정에는 앤 불린과 그녀가 낳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가 퍼지게 되고 왕의 뜻대로 이혼을 허락한 크랜머와 그의 정적들 사이에 갈등이 더욱 격심해진다. 크랜머의 정적들은 그의 죄를 물어 런던탑에 가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왕의 개입으로 그는 직위를 유지하고 엘리자베스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한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크랜머는 엘리자베스가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며 영국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 예언한다.     


결국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는 선왕 시대의 험난한 정치적 역경을 이겨내고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여왕의 왕권에 대한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써진 것이다. 다음과 같은 크랜머의 대사는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    


“선행은 그녀와 함께 성장한다. 그녀의 시대에 모든 이들은 풍족할 것이며 그녀가 심은 포도넝쿨 아래서 이웃의 평화를 위한 즐거운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녀의 위대한 명성은 별처럼 솟아올라 굳건히 자리할 것이다.” (5막 5장)      


‘헨리 8세’는 셰익스피어가 쓴 10편의 사극 중 마지막 작품이자 그의 창작활동을 마감하는 최후의 작품이다. 이 극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세계를 모호하게 오간다. 역사가 늘 승자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에 대한 극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팩션(Faction)이란 장르가 보여주듯 사실과 허구는 역사에 대한 시선에 따라 늘 오버랩되기 마련이다. 주제 면에서 볼 때 ‘헨리 8세’는 세속적 권력과 기독교적 세계관의 충돌을 그리고 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관을 빌어 로마 교황청의 엄격한 교리를 비난하고 있기도 하다.     


‘헨리 8세’는 셰익스피어 단독 저술은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850년 셰익스피어 연구가였던 제임스 스페딩(James Spedding)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 작가였던 존 플레처(John Fletcher)를 공동 저자로 지목하였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텍스트 분석을 통해 스페딩의 이론을 뒷받침하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친을 다루는 당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작가로서도 독자적인 극작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613년 글로브 극장에서의 공연 때는 특수효과를 위해 쏘아 올린 폭약이 극장 지붕에 옮겨 붙어 극장 전체가 전소되는 소동을 겪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사극 가운데 가장 가까운 역사를 다룬 ‘헨리 8세’는 다른 사극에 비래 작품성의 면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가장 영향력이 큰 연극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시사점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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