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한 평생 그를 사로잡았던 마음속의 유령과 싸우고 있었다. 그의 유명한 그림 ‘절규’는 뭉크가 탐색해 왔던 인간 내면의 절절한 고뇌를 묘사하였다. 그는 마음속에 들끓던 강렬한 열정과 천재적 예술성을 고독과 싸우며 캔버스에 쏟아부었던 불행한 예술가였다. 다섯 살 때 그의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홉 해 뒤에는 누이마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등진다. 뭉크 자신도 몹시 병약한 아이였고, 어른이 되고 난 뒤에는 불안과 우울증에 빠져 술에 의존하게 된다. 그의 예술적 성취와 함께 정신병도 깊어갔다. 결국 환상에 빠지고 정신분열 발작을 보이게 되지만 그는 예술에 강한 의지로 광증의 극단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슬로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며 고독한 노년을 보내다가 80세를 일기로 긴 예술과 고난의 여정을 마감한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자신의 과거를 회고했다.
“두려움과 질병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해온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뭉크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미술 세계는 죽음, 성, 종교적 열망 등에 깊이 천착되었다. 그는 강박과도 같은 이러한 주제들을 강력한 색채와 반추상적 신비감으로 풀어낸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 특히 폴 고갱의 영향으로 명징하고 상징적인 감성을 표현하였지만 이후 뭉크는 유럽에 널리 퍼진 표현주의와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해 그가 느끼는 내면의 깊은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또한 20세기 첫 십 년에 유행했던 ‘아르 누보’(Art Nouveau)도 그의 회화에 영향을 미친다. 아르 누보는 보석과 의상에 유행했던 장식적인 스타일로 자연의 동식물을 주제로 하여 프린트 형식으로 보석과 의상에 사용한 기법을 말한다. 뭉크는 이러한 모티프들을 사용하면서도 장식적인 요소들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 사물들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한 심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뭉크는 심리적 주제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낸다. 그의 초기 작품인 ‘절규’가 미술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된 것은 흥미롭다. 뭉크가 초기에 그린 어두운 그림들에 비해 후기의 작품들은 그 강렬함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12년에 열린 한 미술품 경매에서 ‘절규’는 일억천구백만 달러에 낙찰됨으로써 당시로서는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였다.
병든 아이, 1886
뭉크는 다섯 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에 이어 그의 여동생들 가운데 하나는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그의 유일한 남동생도 서른의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1879년 뭉크는 기술학교에 입학했으나 일 년 뒤 그만두고 1881년 왕립 미술 디자인 학교에 입학하여 미술의 세계로 들어선다. 1885년 프랑스 파리를 여행한 후 뭉크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에두아르드 마네 (Edouard Manet), 그리고 후기 인상파에 속하는 고흐(Vincent van Gogh)와 세잔느(Paul Cezanne), 고갱 (Paul Gauguin) 등에게 깊이 영향을 받는다. 사실 뭉크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보아 후기 인상파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듬해인 1886년에 그린 ‘병든 아이’(The Sick Child)는 죽은 누이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사실주의적 화풍에서 벗어난 최초의 작품으로 뭉크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어두운 내면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1889년부터 1892년까지 뭉크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 주로 프랑스에 거주한다. 이 시기는 화가로서 뭉크에게는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이 ‘삶의 프리즈’(Frieze of Life)라 불렀던 일련의 회화 작업에 몰두한다. ‘절망’(Despair, 1892), ‘우울’(Melancholy, 1892-93), ‘불안’(Anxiety, 1894), ‘질투’(Jealousy, 1984-95)라는 제목으로 고통스러운 자신의 내면을 묘사했다. 특히 이 시기에 그린 ‘절규’(The Scream, 1893)는 뭉크의 정신세계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화풍은 작업 당시의 감정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뭉크는 곧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시기 그는 과도한 음주, 가족의 불행, 정신적 고통 등에서 잠시 벗어나 행복한 성취감을 느낀다.
'생의 프리즈' : 절망, 우울, 불안, 질투
하지만 그러한 성공은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어둠의 기운을 모두 몰아낼 만큼 충분한 것은 못 되었다. 1900년대부터 그의 삶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고 1908년에는 환청을 듣는가 하면 반신불수의 마비를 겪는다. 결국 사립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지만 술을 줄이고 정신적 안정을 찾아 이듬해 봄에 퇴원한다. 그는 이후 다시 작업을 시작하고 열정을 보이지만 초기의 위대한 작품들에 비견될 작품을 평생 다시 내놓지는 못한다.
뭉크의 많은 그림들에서는 삶과 죽음, 사랑과 공포, 외로움이 짙게 베어난다. 이러한 감정들은 어둡고, 침울한 색채와 톤, 단순하거나 과장된 형태 등으로 묘사되는데 비평가들은 뭉크의 그림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을 프로이트 적으로 설명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많은 행위들이 어린 시절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뭉크의 어린 시절의 경험은 질병, 죽음, 정신의 붕괴 등에 대한 그의 예술적 성향을 설명하는 단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안과 근심과 죽음의 천사들이 내 옆에 와, 내가 놀 때, 봄철의 햇빛 안에서, 여름의 광채 속에서 언제나 내 뒤를 쫓아왔다. 그들은 잠드는 밤에도 내 옆에 있었고, 죽음, 지옥, 영원한 저주 등으로 날 위협했다. 나는 종종 밤에 잠에서 깨어 눈을 크게 뜨고 방안을 응시했다; 여기가 지옥인가?”
뭉크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말년에는 오슬로 외곽의 저택에서 외부와 차단되어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성의 모습들은 뭉크의 여성 편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세 여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그때마다 관련된 그림을 남긴다. 팜므파탈 같은 유부녀와의 첫 번째 사랑은 그에게 상처만을 남긴다.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흡혈귀’(Vampire, 1895)로 표현된다. 두 번째 사랑은 더욱 가슴 아프다. 연인을 동료 화가에게 빼앗기기 때문이다. ‘질투’와 ‘이별’ 등의 그림으로 떠나간 연인이 돌아오기를 갈망하지만 결국 연인을 잃은 뭉크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마돈나’(Madonna, 1985)를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 여인과의 사랑. 그녀는 너무나 뭉크를 사랑한 나머지 그에게 지나친 집착을 보였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협박한다. 총을 들고 광란하는 그녀를 말리다가 오발된 총알이 뭉크의 완 손 가운데 중지를 관통하고 그는 결국 한 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 일을 겪은 뒤 나온 그림이 ‘마라의 죽음’이다. 결국 그의 그림은 그의 삶의 경험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고, 그의 내면의 초상이었다. 뭉크는 계속되는 좌절과 고립감으로 잠시 도박에 빠지기도 하였는데 그때의 경험도 여지없이 ‘도박판’이라는 그림으로 표현된다.
흡혈귀(1895), 마도나(1895), 마라의 죽음(1907)
뭉크는 1944년 오슬로 교외의 한 작은 마을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사망 후 그의 작품들은 가족들에게 상속되지 않았다. 뭉크는 자신의 작품을 국가에 기증하기를 원했다. 그의 바람대로 사후 국가에 기증된 그의 작품들은 1,000편 이상의 회화, 15,400 점의 판화, 4,500 점의 드로잉과 수채화 그리고 여섯 점의 조각들이었다. 이 작품들은 노르웨이 각지에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노르웨이 정부가 그를 기념하여 지은 뭉크 미술관에는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관객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있다. 화가 뭉크는 노르웨이 국민들의 마음에 영원한 예술의 혼으로 남아있다. 노르웨이의 1000 크로네 화폐에 그의 얼굴이 새겨진 것만으로도 그가 노르웨이 국민들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짐작하게 한다.
한 예술가의 삶은 그의 작품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굳이 역사주의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예술은 한 인간의 고뇌와 자유, 슬픔과 기쁨, 고독과 절망을 벗어나려는 의지와 희망이 교차되는 영원한 교직물일지도 모른다. 뭉크가 겪은 ‘생의 프리즈’는 우리의 인생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어떤 모습으로 흔적을 남길 것인가를 보여준다. 세월을 격해 뭉크의 그림들이 우리의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그의 삶과 예술이 우리 모두의 생애와 닮아있기 때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