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난 그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요.”

by 최용훈

미국의 현대극을 선도했던 극작가 유진 오닐의 아버지 제임스 오닐은 유랑극단의 배우였다. 그의 어머니는 교육자 집안에서 자라난 얌전한 처녀였으나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역할을 하던 잘 생긴 그에게 반해 결혼을 한다. 그리고 부부는 유랑생활을 계속한다. 유진 오닐은 브로드웨이의 한 호텔방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어린 시절 대부분을 유랑극단의 숙소인 허름한 호텔에서 보낸다. 그는 정상적인 가정에서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의 사후 세 번째 부인에 의해 출판된 자전적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A Long Day's Journey into Night)에는 ‘가정’(home)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따뜻한 가정에 대한 집착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유진 오닐은 거의 습관적으로 거울을 보곤 했다고 한다. 누군가 그에게 왜 그리 자주 거울을 보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그저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에요.” 떠돌이 생활은 가정에 대한 그리움 외에도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을 초래했던 것이었다.

유진 오닐은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10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출석 미달로 제적되었다. 프린스턴을 나온 후 잠시 방황하던 그는 몇 차례 선원으로서 항해에 나섰고,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아들을 두었다. 하지만 성급한 결혼은 언제나 불행한 것인지, 오닐은 결국 첫 번째 부인의 곁을 떠나, 금광이 발견된 온두라스로의 긴 항해를 떠난다. 그러나 이 항해에서 그는 폐결핵에 걸리고 귀국하여 요양병원에 입원한다. 이 시기 그는 독서에 몰두하면서 희곡 창작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핏줄에는 연극에 대한 열정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퇴원 후 오닐은 하버드 대학에서 열린 베이커 교수의 극작 강의를 청강하였다. 그리고 극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오닐의 인생은 커다란 전환점에 이르게 된다. 당시 매사추세츠 주의 프로빈스타운이라는 작은 해변 마을에서는 미국 현대연극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수잔 글래스펠(Susan Glaspell)이라는 여성 희곡작가가 소설가인 남편 조지 크램 쿡(George Cram Cook)과 함께 그곳에 정착해 연극을 공연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희곡을 필요로 했는데 그때 그들을 찾아온 사람이 유진 오닐이었다. 오닐이 들고 온 가방에는 그의 습작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중 ‘카디프를 향하여 동쪽으로’(Bound East for Cardiff)가 부두의 창고극장에서 상연되었다. 단막으로 된 이 작품은 증기선에서 석탄을 때는 화부(火夫) 두 사람의 진한 우정을 그리고 있다. 오랜 항해에 지치고 병에 걸려 죽어가는 동료를 끌어안고 운명을 한탄하는 비극이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서 벌어지는 그 연극은 파도 소리 들리는 프로빈스타운 부두의 창고 극장에 절묘하게 어울렸다. 이 공연 이후 수잔 글래스펠의 극단과 유진 오닐은 함께 브로드웨이로 진출하였고 미국 연극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미국의 사실주의 현대극은 유진 오닐과 수잔 글래스펠의 극단 프로빈스타운 플레이어즈(Provincetown Players)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들의 브로드웨이 데뷔작은 1921년에 상연된 ‘수평선 넘어’(Beyond the Horizon)였다. 그리고 그 작품으로 오닐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24년에 공연된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계모와의 사랑과 근친상간 그리고 유아 살인이라는 테마는 당시의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공연이 열리는 곳마다 검열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공연에 참가한 배우들 전원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뉴잉글랜드의 한 농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 극은 거칠고 독선적인 아버지와 그러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세 아들 간의 갈등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한 젊은 여자를 데리고 와서 새어머니라고 선언한다. 애비라는 이름의 이 젊은 여성은 집안의 막내아들 에벤을 유혹한다. 두 사람은 젊음의 정욕을 참지 못하고 폐륜의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다. 그러자 에벤은 변한다. 두려움이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이었을까? 변화된 에벤의 태도에 좌절한 애비는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이 태어난 아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잠든 아이의 얼굴에 베개를 덮어 살해한다. 이 작품은 오닐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의 대립을 보여준다. 아버지 캐벗으로 대표되는 완고한 청교도주의, 규율, 탐욕, 독선과 아집 그리고 느릅나무로 상징되는 사랑, 열정, 욕망 등, 서로 대립되는 세상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오닐은 작품에서 느릅나무의 억눌린 욕망을 대표하는 에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의 반항적인 검은 눈동자는 마치 사로잡힌 야생동물을 연상시킨다. 그는 매일

내면적으로는 조금도 억제되지 않은 채, 우리에 갇혀 있다.‘

오닐은 총 세 번에 걸쳐 퓰리처상을 받았고, 1936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의 사실주의 작품들은 점차 표현주의적 경향으로 변화되었다. ‘황제 존스’(Emperor Jones), '털 복숭이 원숭이‘(Hairy Ape) 등은 그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에는 선원생활의 경험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털 복숭이 원숭이‘의 주인공 양크는 화려한 유람선의 화부였다. 어느 날 그 유람선 선주의 어린 딸이 호기심으로 배의 곳곳을 구경하다가 마침내 양크가 일하는 배의 맨 아래쪽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석탄재를 뒤집어쓴 그를 보는 순간 놀라 기절을 한다. 양크는 문득 자신의 짐승과도 같은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배를 떠날 결심을 한다. 마침내 육지에 오른 그는 뉴욕의 거리를 걷는다. 행인들은 하나같이 백색의 가면을 쓰고 무심히 그의 곁을 지나친다. 양크는 땅 위의 누구와도 교감을 나눌 수 없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갈 곳을 잃은 그는 동물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우리에 갇힌 오랑우탄을 본다. 문득 그는 그 짐승과 동질화를 느낀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울타리를 넘어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오랑우탄조차도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 거대한 짐승에게 짓밟혀 죽음을 맞는다. 백색 가면을 쓴 행인, 그리고 양크의 내면에 대한 묘사 등은 표현주의 연극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양크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난 강철이었어. 내가 세상을 소유했지. 이젠 더 이상 강철이 못돼. 세상이

날 가지게 되었어. 빌어먹을! 볼 수가 없어. 온통 어둠이야, 알겠어?

모든 게 잘못됐다고! “

그의 세계에서 양크는 강철이었다. 석탄을 화로에 던져 넣는 그 더럽고 습한 세상에서는 그가 주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걷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는 아무도,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어둠 속을 배회하다가 긴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갈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나 그의 마음을 알아줄까?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도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오닐이 그리고 있는 소외되고, 외롭고 차가운 세계는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닐의 개인적 삶은 그렇게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 현대극의 시발점이고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작가로 그는 부와 명예를 누렸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어린 시절의 그것처럼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10대에 했던 첫 번째 결혼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 얻은 첫아들은 성장해서 예일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 로마 연극의 권위자였고 방대한 서적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1920년대 오닐은 동료 작가였던 아그네스 불튼과 재혼하였고 그녀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결혼 생활도 10년이 안 되어 파국을 맞았다. 그는 간절히 갈구하던 행복한 가정을 갖지는 못했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한 예감이 맞은 것일까 아니면 그 불안감으로 오닐 스스로가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한 것인가. 오닐은 1929년 세 번째 부인과 결혼해 죽을 때까지 함께하였다. 1940년대 초반 그는 자신의 자전적 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를 썼지만 자신의 생전에는 결코 상연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작품을 ‘눈물과 땀과 피’로 쓴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신의 젊은 시절의 갈등을 풀어놓은 그 작품은 그의 사후 전기 작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한 편의 희곡으로 일정 시기의 삶을 너무도 극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막내딸 우나가 오닐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36세가 많은 유명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의 세 번째 부인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 문제를 놓고 갈등하던 오닐과 우나는 결국 부녀간의 관계를 끊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우나와 채플린의 이야기는 나이 차를 넘어선 뜨거운 러브스토리가 되었지만 오닐 자신에게는 가슴 아픈 가정사의 일부였던 것이다. 1947년 그는 자신이 파킨슨병에 걸렸고 손이 떨려 더 이상 극작 활동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둘째 아들 세인은 평생 아버지의 고민거리였다. 무엇에도 뜻을 두지 않고 제멋대로의 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1948년 마약 복용 혐의로 체포되었고, 오닐은 둘째 아들과도 결별한다. 그리고 이 년 뒤 그의 큰 아들이 학자로서의 명성을 뒤로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한다.

1953년 오닐은 보스턴의 한 호텔 방에서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의 나이 65세. 미국의 현대극을 시작하였고, 50여 편의 희곡을 남긴 그는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서 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의 그 외로움과 상실감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 그가 죽은 지 4년 뒤인 1957년, ‘밤으로의 긴 여로’가 초연되었고, 그는 그 작품으로 토니상과 더불어 세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사후의 영광이었다. 오닐의 작품은 21세기의 관객들에게도 여전히 감동적이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삶은 우리에게 커다란 연민을 남긴다. 그의 한 희곡에서 작중 인물은 이렇게 한탄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우리네 삶이 이렇지 않을까?

“나는 왜 춤추는 것이 두려울까? 음악과 리듬, 우아함과 노래와 웃음을

사랑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왜 사는 게 두려울까? 삶과 육체의 아름다움,

지상의 살아있는 색채들, 하늘과 바다를 사랑하는데 말이다. 나는 왜

사랑하는 것이 두려울까? 난 사랑을 사랑하는데. “

“Why am I afraid to dance, I who love music and rhythm and grace

and song and laughter? Why am I afraid to live, I who love life

and the beauty of flesh and the living colors of the earth and sky

and sea? Why am I afraid to love, I who love love?” (The Great God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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