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 인종을 초월한 인간

"나는 백인의 시선이 없는 글을 쓰고 싶었다."

by 최용훈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 )은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미국의 여성 작가이다. 그녀는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녀는 소설가이자 교수로서, 미국 흑인들의 대변자로서 영예로운 삶을 살아왔다. 노벨상 수상 당시 그녀는 “예지의 힘과 시적 의미를 지니는 소설들을 통해 본질적인 미국의 현실에 생명력을 부여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의 소설은 대단히 서사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생생한 대사로 미국 흑인들의 세밀한 특성을 묘사해내고 있다.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데뷔작인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 '솔로몬의 노래‘(Song of Solomon), 그리고 1988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비러브드’(Beloved) 등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8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놀라운 창작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의 작품으로 2015년 출간된 ‘신이여 그 아이를 도우소서’ (God Help the Child)는 자신의 거부된 과거에 대해 깨닫게 된, 화장품 업계에서 일하는 한 젊은 흑인 여성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랜덤 하우스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편집자로서 일했다. 그녀의 소설들은 자신이 속한 인종과 계급을 대변해왔다. 모리슨은 과거에 흑인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들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시절을 살고 있기 때문에 흑인에 관한 소설들은 나름의 중요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 흑인 소설은 흑인의 삶과 관련해 “무엇이 문제이고, 갈등의 내용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기록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일생 동안 흑인들의 삶과 애환 그들의 고통과 환희,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해왔다. 랜덤 하우스에 근무하던 1970년대 그녀는 흑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자서전을 출간했고, 그의 책을 적극 홍보하였으며, 심지어는 그의 안전을 위해 이슬람 단체 출신의 경호원들을 고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신예 흑인 여성작가 가일 존스(Gayl Jones)의 원고에 감명을 받아 그녀의 소설을 출간하였고,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젊은 시인이었던 헨리 뒤마(Henry Dumas)가 경찰의 오인 사격으로 숨지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그의 시집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당시 그 시집의 출판기념일에 사람들에게 보낸 초대장에서 모리슨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68년 한 젊은 흑인, 헨리 뒤마는 지하철의 회전문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한 경찰관이 그의 가슴에 총을 쏘았고, 그는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기 전, 그는 내 생애에 읽었던

그 어떤 시보다도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심오한 시와 소설을 썼습니다.”

그렇듯 그녀는 아직 소설을 쓰지 않던 시절부터 젊은 흑인 문학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뒤마가 죽은 지 2년 후, 모리슨은 그녀의 첫 번째 소설을 내놓는다. 그녀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푸른 눈을 갖고 싶었던 한 흑인 소녀의 이야기,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은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작품이었다. 그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너무도 고요했다. 1941년 가을은 국화꽃조차 피지 않았다. 우리는 국화가 자라지

못한 것은 피콜라가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첫 번째 소설 이래 모리슨의 작품은 너무 무거웠다. 그녀의 소설 속에는 역사와 역사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정신병자이자 날카로운 칼을 손에 쥔 미용사(‘재즈’, 1992), 어린아이처럼 어머니의 젖을 빠는 남자(‘솔로몬의 노래’, 1977), 또다시 잡혀가 노예로 살게 하지 않기 위해 두 살짜리 딸의 목을 자르는 엄마(‘비러브드, 1987),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어린 소녀(’가장 푸른 눈‘, 1970). 그렇듯 그녀의 소설 속에는 극단의 상태를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묘한 인물들의 어둡고 무거운 모습들이 묘사되고 있었다. 하지만 모리슨의 작품들은 정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학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 암울한 상황에서도 결코 분노는 표출되지 않았다. 그것은 여성 흑인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관심사는 시선 없이, 특히 백인의 시선 없이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녀는 미국의 흑인들이 겪는 삶, 그들의 경험, 문화, 그리고 그들이라는 인간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모리슨은 1931년 클로에 워포드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남부 출신으로 20세기 초반에 오하이오로 이주하였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19세기 후반 남부에 살던 흑인들의 삶을 손녀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면, 그녀의 집 주변을 배회하던 백인 젊은이들. 그들을 보며 그녀는 자신의 딸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한 밤 중에 기차를 타고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편 그녀의 아버지는 14-15세 되던 무렵 거리에서 두 명의 흑인 장사꾼이 린치를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남부를 떠나 방황하다가 오하이오에 도착했었다. “아버지는 그들의 시체를 봤다는 말은 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보았었겠죠. 아버지께는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있었을 겁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평생 백인들을 증오하였다. 적어도 어린 모리슨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그러했다.

린치(lynch, 私刑)는 미국 역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법적인 절차 없이 타인에 대해 사적인 형벌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남북 전쟁 이후 19세기 말, 미국에서 흑인에게 가해진 린치는 증오심이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백인에게 불손하다는 이유만으로 흑인들은 구타당하고, 목 매달리고 불에 타 죽어야 했다. 심지어 백인들은 처형당한 흑인들의 신체 일부를 기념품으로 나누어 가졌고, 린치의 현장 사진으로 기념엽서를 만들기도 했다. 집단적 정신분열증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의 신문에는 린치가 가해질 장소와 날짜가 실려 있었다. 살인의 현장을 마치 서커스와 같은 구경거리로 삼고 있었다. 그것은 증오심이 불러일으키는 인간의 잔인성과 폭력성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린치의 역사는 오늘날의 증오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나와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성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간의 심성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일까? 모리슨은 바로 그 린치의 시절을 살았던 부모들의 경험을 듣고 자란 세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모리슨은 백인에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 불신감을 갖고 성장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오하이오의 로레인은 이주민들로 가득 찬 곳이었다. 흑인들뿐 아니라 이태리인, 폴란드인과 유태인으로 넘쳐났다. 흑인들만의 구역에 살지도 않았으며 학교에도 많은 인종들이 섞여 있었다. “그곳에는 고등학교가 하나뿐이었어요. 우린 함께 놀았죠.” 로레인에서의 삶은 그녀의 작품이 백인에 대한 편견과 분노에서 비롯되지 않고 오직 흑인으로서의 삶과 경험에 기초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녀에게 백인들은 자신과 괴리된 타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함께 생활하고 함께 경쟁하고 함께 감정을 나누는 이웃이었다. 그곳 로레인에서 모리슨은 상상력이 넘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톨스토이의 소설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의 작품들을 읽었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할 인물들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인종 차별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된 것은 워싱턴 D. C. 의 하워드 대학에서 공부하던 때였다. 그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흑인의 역할에 대해 논문을 쓰고 싶었으나 담당 교수는 흑인의 삶에 대해 읽고 연구하는 것은 저급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는 모리슨에게 불안감을 주었고 비로소 피부의 색깔이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세상에 대해 눈 뜨게 했던 것이다. 그곳에는 자신이 앉을 수 없는 식당의 좌석이 있었고, 마실 수 없는 식수대가 있었으며, 자신의 돈은 쓸모없는 것이 되는 상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한 인종 분리의 상황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건 연극이었다고 생각해요. 모든 게 연극이라고 느꼈죠. 그게 어떻게 사실일 수가 있었겠어요. 어떻게요? 너무 어리석은 일이었지요.”

이러한 경험은 백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리슨은 흑인에 대한 인종적 차별과 편견에 대해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백인과 대립되는 개념으로의 흑인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역사와 문화, 삶의 방식과 상황에 맞서고 있는 흑인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였다. 1955년 코넬대학에서 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녀는 몇몇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소설을 써내면서 자신의 필명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8년 ‘비러브드’로 퓰리처상을 받은 그녀는 1993년 마침내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다. ‘비러브드’가 영화화되었을 때에는 영화의 공동제작자였던 오프라 윈프리가 주인공인 여자 노예 ‘세데’ 역을 맡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05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2012년에는 미국 럿거즈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오랜 시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녀의 작품들은 정치색을 띠지도, 페미니즘의 주장을 펼치지도 않았지만, 모리슨은 존경받는 원로 작가로서 사회문제에 대한 논평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1998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섹스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렸을 때는 그를 두둔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백색의 피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입니다.

우리의 아이들 세대에나 당선될 실제 흑인 대통령보다 더 검은 사람이지요.

클린턴은 ‘흑인성’(blackness)의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에요.

편모슬하에서 자랐고, 가난했으며, 노동자 계급 출신이고, 색소폰을 불죠. 그리고

맥도널드와 정크 푸드를 좋아하는 아칸사스 출신의 소년이니까요.”

클린턴에 대한 모리슨의 표현은 그녀의 인종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다. 즉 백인 속에서 흑인을 봄으로써 피부색에 의해 나누어지는 인간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경험에 의해 구분되는 사람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흑인들은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와 경험 속에 살고 있는 보편적 인류의 한 단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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