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너벨리- “우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사랑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는 40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미국 문학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그는 시인이었고, 단편 소설가였으며 비평가였고 추리소설의 창시자였다. 그는 문학 활동만으로 생계를 꾸려간 미국 최초의 전업 작가였으며 그로 인해 평생 가난에 시달렸다. 배우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되어 집을 나갔고, 그 이듬해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어린 포는 앨런 부부에 의해 입양되었다. 그의 중간 이름에 앨런이 들어간 이유였다. 에드거란 이름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인물에게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배우였던 부모가 그가 태어난 해에 그 극을 공연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장하면서 그다지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를 키워준 부모는 도박에 빠지고 방탕했던 그를 끝까지 돌보지 않았다. 버지니아 대학을 다녔으나 돈이 없어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고, 이후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들어갔으나 퇴학을 당한다. 그의 자유로운 예술가적 기질이 규율을 중시하는 웨스트포인트에 맞을 리 없었던 것이다. 포는 궁핍, 음주, 광기, 마약, 우울, 신경쇠약 등으로 불운한 삶을 보낸다. 그리고 40세 되던 해 그는 볼티모어의 거리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인은 분명치 않았다. 알코올 중독, 뇌출혈, 콜레라, 마약, 심장병, 광견병, 자살, 폐결핵 등 그는 원인조차 불분명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는 미국의 낭만주의를 이끌었다. 짧은 삶이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보들레르, 말라르메, 도스토예프스키 등에 의해 인정받았고, 추리, 판타지, 공포문학의 원조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를 써내기도 하였다. 1960년대 미국의 컨트리 가수 짐 리브스의 낭송으로 유명한 ‘애너벨 리’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시였다. 이 시의 주인공 애너벨 리의 모델은 포의 부인이자 사촌인 버지니아라고 한다. 포와 버지니아는 1836년에 결혼했다. 포 나이 26세, 버지니아는 13세였다. 병약했던 버지니아는 극심한 가난 속에 살다가 1847년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그 2년 뒤인 1849년, 포는 ‘애너벨 리’를 쓴다. 그리고 그 해 그는 숨을 거둔다.
옛날 아주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죠.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사랑했어요.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
천상에서도 우리의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기했던 것이죠.
그래요! 그것이 이유였답니다(바닷가 그 왕국 모든 사람이 알듯).
한밤중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히 숨지게 한 것은.
................................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지 않으면 달도 비추지 않았어요.
내가 아름다운 그녀의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별도 떠오르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는 밤이 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만 있었어요.
거기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포는 처음에 묻혔던 초라한 무덤에서 1875년 그의 문학을 추앙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장되었고 무덤 앞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후 그의 아내 버지니아의 유해도 옮겨져 남편 곁에 안장되었다. 애너벨리의 바닷가 무덤을 지키듯 포는 죽어서 사랑하는 아내를 감싸 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사촌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만큼 포는 낭만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난에 지쳐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숨을 거둘 때 포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애너벨 리의 무덤가에 홀로 누운 시 속의 포가 너무도 외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의 죽음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방황의 끝이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늘 역사적 기록은 냉정하다. 많은 사람들의 증언 또한 야속한 것이 많다. 포에게 새로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는 이야기, 주정뱅이들에게 술을 먹이고 투표장에 가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게 한 정치판 폭력배들에 당했으리라는 추측 등은 포라는 낭만적인 작가의 삶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현실이다. 그래서 그 어떤 위대한 문학가도 삶의 현실 앞에서는 그저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한 것을 어찌하겠는가.
포는 생전에 미국에서는 작가로서 명성을 누리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뜬 후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우연히 그의 작품을 보고 감동해 그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전집을 출간한다. 이것이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고 이후 유럽 각지에서 포의 작품을 재조명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미국에서도 작가로서의 포를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추리 소설의 장르를 개척한 그의 단편들도 문학사적으로 중요성을 갖지만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 포를 남게 한 것은 ‘갈 까마귀’(The Raven)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언젠가 쓸쓸한 한밤중에
내가 잊고 있던 분야의 기묘하고 흥미로운 책들에 관해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하며 졸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
마치 누군가 내 방문을 가볍게 똑똑 두드리는 것 같이.
“이건 손님이 와서 내 방문을 두드리는 거야” 나는 중얼거렸지.
“그것뿐이야, 다른 일은 없었어.”
...............................................................................
그러나 갈 까마귀는 평화로운 흉상 위에 외롭게 앉아서
오직 한마디 말밖엔 하지 않았지.
마치 그가 쏟아낸 그 말속에 그의 영혼이 다 들어있는 것처럼.
그 이상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고 깃털 하나도 펄럭이지 않았어. ─
내가 혼잣말하는 순간까지. “다른 친구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아침이 되면 저 새도 나를 버리고 떠나겠지, 마치 나의 희망이 날아가 버린 것처럼─”
갈 까마귀 가로되, “네버 모어”
시 속의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밤 중 누군가 그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죽은 아내의 영혼이 그를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그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환청으로 이어진 것일까? 하지만 현실 속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날아든 갈 까마귀 한 마리. 다른 모든 것들이 날아가 버린 아픔에 애써 체념하는 순간, 모든 희망을 버린 그 순간, 까마귀는 말한다. “네버 모어!” 얼마나 절실한 바람인가! 포는 무엇을 갈망했을까? 가버린 사랑? 평화로운 삶? 위대한 예술? 그는 유미주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움을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여기는 유미주의는 예술작품이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미주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다. ‘시 그 자체‘ (poem per se) 그것이 유미주의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포는 한 편의 시 속에 자신의 가슴속에 자리한 가장 아름다운 것, 즉 사랑을 담고 있었을지 모른다. 어떤 이는 이 시의 음울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그의 추리소설과 연관해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 갈 까마귀‘는 애너벨 리의 다른 모습이다.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희망을 버리지 않을 사랑의 대상이란 점에서 그러하다. 이 시를 통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시와 함께 음울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추리소설이 공존할 수 있었던 시인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으로 사랑했다.” ‘애너벨 리’의 한 구절이다. 그렇게 진정으로 사랑한 여인, 그런 사랑으로 살고 싶었을 그의 삶은 너무나 허황하다. 볼티모어의 밤거리를 고통 속에서 배회했을 포의 죽음이 너무도 비극적이다. “우리가 보는 혹은 보이는 모든 것은 꿈속의 꿈일 뿐이다.” 그렇게 몽롱한 꿈속의 꿈을 살다 갔지만 포는 그저 막연한 꿈만을 더듬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문학의 길에서 만큼은 치열한 현실을 산 작가였다. 하지만 또다시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갈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의 대답은 분명 이럴 것이다.
“네버 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