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바코프-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 1899-1977)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귀족이며 정치가였던 아버지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했는데 이것은 이후 그가 미국의 작가로서 활동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그의 가족은 유럽으로 이주한다. 잠시 영국에 머무르는 동안 나보코프는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해 그곳에서 언어학을 공부한다. 1922년, 독일로 망명해 러시아 이민자들을 위해 정치활동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반대파에게 암살을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듬해 나보코프는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가족들이 있는 베를린으로 옮겨간다. 아버지의 죽음 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던 가족을 위해 나보코프는 기자, 번역가, 교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 그는 유대계 러시아인인 베라 슬로빈을 만나 결혼을 한다. 1940년대 나치가 등장하자 자유주의자였던 나보코프는 미국으로 망명한다. 그의 아내 베라가 유대인이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미국으로 옮겨온 그는 보스턴 근교에 있는 한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강사직을 얻게 되고 이후 코넬대학에서 교수직을 얻게 된다. 그의 뛰어난 언어능력과 러시아 문학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 덕분이었다. 미국 생활이 안정이 되면서 그는 저작 활동에 몰두하고 영어로 작품을 발표한다. 그리고 1955년 문제의 롤리타(Lolita)를 발표한다. 30대의 후반의 남자가 12살 소녀에게 성적인 욕망을 느끼고 집착하는 내용이다. 어린 소녀에게 품는 변태적인 성욕을 가리키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는 이 소설의 제목에서 유래한다. 당연히 이 소설은 엄청난 반향을 초래해 문학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예술에 있어 외설의 문제는 아주 오래된 논쟁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들은 노골적이고 성적인 대사들을 담고 있어서 ‘외설 희극’이라 불렸다. 온갖 난잡하고 저질적인 대사들로 가득 차있었고, 식욕, 성욕, 물욕으로 생겨나는 번민의 모습이 배우들의 가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스의 각종 도기에서 볼 수 있는 외설스러운 의상이 그 저속한 대사와 함께 무대 위에 펼쳐졌다. 다음은 기원전 5세기에 공연된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테’에 나오는 대사이다.
리시스트라테 : 모두들 술잔을 잡아요. 그리고 누구 한 명이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하세요.
(엄숙하게)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느 누구도···.'
칼로니케 :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느 누구도···.'
리시스트라테 :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따라 해요!
칼로니케 :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맙소사! 난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아요, 리시스트라테!
.........................................
리시스트라테 : '내가 싫다는데도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칼로니케 : '내가 싫다는데도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리시스트라테 : '나는 재미없게 해 주고 요분질도 하지 않겠습니다.'
칼로니케 : '나는 재미없게 해 주고 요분질도 하지 않겠습니다.'
리시스트라테 : '나는 천장을 향하여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칼로니케 : '나는 천장을 향하여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리시스트라테 : '나는 암사자처럼 엉덩이를 들고 웅크리지도 않겠습니다.'
칼로니케 : '나는 암사자처럼 엉덩이를 들고 웅크리지 않겠습니다.'
늘 전쟁에 나가 가정을 돌보지 않은 그리스의 남자들을 향해 여성들이 섹스 파업을 일으키자고 약속하는 대목이다. 주인공 리시스트라테는 여인네들에게 남편과 잠자리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있다. 온갖 성행위의 체위를 암시하는 대사들이다. 2,500년 전 연극의 무대에서 이러한 대사가 오고 간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관객들은 그 대사를 듣고 즐거워하며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는 여인의 발목만 보여도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에 대한 개방성이나 그 도덕적 관점은 결국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작품 속의 외설 논쟁에 휩싸인 대표적인 작가는 영국의 D. H. 로렌스(D. H. Lawrence, 1885-1930)이다. 그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 (Lady Chatterley's Lover)은 1928년에 이태리에서 첫 출간되었고 다음 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출판되었으나 작가의 조국인 영국에서는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1960년이나 되어서야 비로소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을 출판한 펭귄 출판이 외설혐의로 고발되었으나 재판부가 펭귄의 손을 들어줘 출간과 동시에 300만 부가 팔려나갔다. 이것은 문학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를 확대시킨 최초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상류계층의 귀족부인과 그 집에서 일하는 노동자 계층 남성 간의 육체적인 관계, 그리고 그들의 성애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게다가 그 당시로서는 결코 책에 사용될 수 없었던 어휘의 사용 등이 외설에 대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는 처음에는 프랑스어로 써졌다. 영국과 독일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어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다. 나보코프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그 원고를 불속에 던져버리려고 했다고 한다. 그때 그 소설을 구해낸 것은 그의 아내 베라였다. 그녀는 현실 감각이 떨어진 나보코프의 진정한 비평가이자 조력자였다. 평생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 차를 몰았고, 가방에 총을 넣고 다니는 그의 보디가드이기도 했다. 어린 소녀에 대한 성적 집착을 그려 문제가 된 작품이 작가의 아내에 의해 세상에 남을 수 있게 된 것은 아이러니일까? 이 작품은 영국과 미국에서 판매 금지가 풀린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송사를 겪게 된다. 그러나 ‘롤리타’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는 달리 표현의 외설성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 작품에 대한 비난은 성인이 미성년자인 어린 소녀에게 품은 성적 충동, 즉 소아성애라는 주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실 작품의 문체와 표현은 러시아인이 영어로 쓴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신선하고 유려한 것이었다. 작품의 내용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롤리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음경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입천장에서 세 단계의 여행을 하며 내려오고 세 번 이빨을 치는 혀 끝. 롤. 리. 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있는 사 피트 십 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 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ten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작품의 주인공 험버트는 매력적인 외모와 지적 능력을 갖춘 30대 후반의 남성이다. 그는 사춘기 전후의 어린 여자아이에게 강한 성적 욕구를 느낀다. 모든 아이들에게 느끼는 욕망은 아니어서 그는 자신이 집착을 느끼는 여자아이에게는 ‘님펫’(nymphet)이라 이름 붙인다. 이는 ‘님프’ 즉 요정이란 낱말을 변형시킨 나보코프만의 어휘인데, 비평가들은 작품 속의 난잡한 성적 욕구를 동화적 분위기로 순화시키려는 작가의 교활한 의도로 비난하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험버트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한 소녀의 죽음 후 이런 욕구를 갖게 됐다고 항변한다. 그는 놀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거나, 나이 어린 창녀와 관계를 맺는다. 문학 강사였던 그는 하숙집 여주인의 딸, 12세의 여자아이 돌로레스 헤이즈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마음속에서 그녀에게 ‘롤리타’라는 애칭을 붙인다. 험버트는 돌로레스와 함께 있기 위해 그녀의 엄마인 샬롯과 결혼까지 한다. 이 순간부터 소아성애를 넘어서 근친상간의 왜곡된 성적 욕구가 작품을 지배한다. 험버트의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롤리타를 향한 험버트의 욕망을 알아버린 샬롯이 절망감에 뛰쳐나가다 교통사고로 죽자, 험버트는 롤리타를 데리고 여기저기 모텔 순회를 시작한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밤마다 어린 의붓딸과 정사를 나눈다. 그러던 중 롤리타는 험버트로부터 도망쳐 자취를 감춘다. 3년 후, 롤리타가 퀼티라는 나이 어린 극작가 지망생을 사랑해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험버트는 퀼티를 살해한다. 그리고 이 살인으로 인해 험버트가 저지른 부도덕하고 변태적인 성적 욕망과 집착이 드러나게 된다. 험버트는 체포된 후 자신의 과거를 회고한다. 이 자기 고백적인 회고 속에서 그는 자신의 역겨운 범죄를 미화한다. 아홉 살 어린 소녀를 사랑했던 단테, 13세의 사촌 버지니아와 결혼한 에드거 앨런 포 등 소아성애적 성향을 지닌 것으로 보였던 유명인을 100명 가까이 등장시키며 자신의 비뚤어진 사랑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작품 속의 변태적이고 역겨운 주인공의 모습은 범죄자의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롤리타’는 그 유려한 문체, 다양한 언어적 유희, 치밀한 구조로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름다운 예술을 위해서는 그렇듯 범죄적인 주제마저도 용인되는가? 문학 작품이 독자들에게 역겨운 주제를 사용하는데 서슴지 않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특히 성에 관한 변태적인 주제의 사용은 언제나 예술의 외설성에 대한 논란을 야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 외설로 비난받았던 작품들이 고전으로 인정되고, 많은 독자들에 의해 읽히고 있음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예술만이 지닌 금지된 것으로부터의 자유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인간 마음 저 깊은 곳에 숨겨진 추하고 악한 본성이 드러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나보코프는 그저 그 통로를 발견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