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의 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Jan 05. 2021

아이러니, 존재의 숙명

드러낸 것과 감춰진 것의 차이

아이러니(irony)라는 말은 에이런(eiron)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희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약하고 왜소하지만 교활하고 약삭빠른 그는 자신의 지식과 힘을 숨기고 천진함을 가장하여 상대를 누르고 승리한다. 아이러니는 에이런의 말과 행동 양식에 적용되었던 용어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든 이러한 원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 사실 사이의 괴리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적인 형태의 대부분이 말과 그 의미, 행위와 그 결과, 외관과 실제 사이의 불일치나 부조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부조리와 역설의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행위와 결과의 불일치     

우리의 삶, 우리의 역사는 늘 아이러니의 속성을 지닌다. 인생 자체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성공과 실패가 교차되는 부조리와 역설의 여로이지 않은가. 우리의 삶을 비추는 모든 광휘들은 고통과 시련의 긴 터널 끝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도 곳곳에서 아이러니의 요소가 드러난다. 역사가 남긴 위대한 흔적들 뒤에는 그 외관과는 다른 고통과 시련의 모습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선과 악은 또 어떠한가? 역사와 인간의 두 얼굴 속에서 우리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그것은 결국 모든 상황, 사물, 인간의 존재 양식 일지 모른다.     


오늘날 의학의 발전에 시체 도굴꾼들이 기여한 것을 알고 있는가? 몇 년 전 영국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 프로에 19세기 버크와 헤어라는 두 시체 도둑들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이들은 무덤에서 파낸 시체들을 한 구 당 7파운드로 에든버러의 한 대학 해부학 교실에 팔아넘겼다. 이후 이들은 시체 도굴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자 직접 살인을 저질러 시신을 공급하기까지 하였다. 두 범인 가운데 버크라는 이름의 사내가 길거리의 창녀를 살해해 그 시신을 해부학 교실에 넘긴다. 그러나 우연히 그 창녀의 얼굴을 알아본 한 의대생이 그녀의 죽음에 의심을 품고 경찰에 신고한다. 이로써 버크는 살인죄로 체포되어 결국 교수형을 당했고, 그의 시신은 같은 학교의 의학실험용으로 넘겨졌다. 오래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의학의 발전이 비인간적인 범죄에 부분적으로라도 의존했었다는 사실은 의학사의 아이러니이다.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기여하는 의학의 뒤편에 어두운 잔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어떠한 행위의 결과에도 흔히 아이러니의 법칙이 적용된다. 1966년, 당시 루마니아의 독재자였던 차우세스쿠는 인구 증가를 위해 낙태행위를 전면 금지했다. 심지어 임신을 못하는 여성에게는 세금까지 부과하였다. 이 정책으로 루마니아의 출산율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낙태를 금지한 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학업 성취도도 낮고, 범죄에 빠져드는 빈도가 훨씬 높았다는 통계자료가 발표되었다. 낙태의 금지가 지능이 낮고 범죄에 빠지기 쉬운 아이들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인가? 행위와 결과의 아이러니이다. 오늘날 미국의 건강보험 문제에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낙태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낙태가 합법화되었다. 이후 1980년대 빈공 계층의 출산이 감소되자 범죄율이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통계는 낙태의 허용이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를 위해 낙태를 금지하는 것이 사회적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면, 이 행위와 결과 사이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이중적 본성과 언어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이중적으로 파악되어 왔다. 이성과 본능, 천사성과 동물성, 선과 악이 함께 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이다. 신이 창조한 인간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였다. 그러나 신의 명령을 어겨 낙원에서 추방된 이후 인간은 불완전하고 악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인식하였지만 여전히 인간은 본능에 지배되는 타락한 존재라는 의식이 함께 공존하였다. 1726년 영국 소설가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가 쓴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야만성과 추악성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4부로 구성된 이 소설의 마지막 편은 휴이넘이라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휴이넘이라 불리는 지능이 있는 말(馬)들이 지배하고 있던 이 나라에서 인간은 휴이넘을 위한 노예들이었다. 그곳에서 야후(Yahoo)라고 불렸던 인간은 더럽고, 사악했으며,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는 야만적인 족속이었다. 스위프트는 야후를 통해 인간의 나약한 본성과 그 비열하고 야만적인 행태를 풍자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놀라운 문명과 문화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아직도 야후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야만적이고 사악한 본성이 자리 잡고 있다. 남을 위해 헌신하고, 자비와 사랑을 베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다른 이들을 음해하고, 무시하고, 해치는 저급한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이야말로 인간이 영원히 해결해야 할 존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휴이넘과 야후

이중성은 언어적 불확실성에 의해 파악되기도 한다. 인간의 언어는 원래 그것이 지칭하는 의미와 다른 뜻을 나타내기 쉽다. 사실 우리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써의 언어를 크게 신뢰하지 못한다. 흔히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과 함께 표정, 목소리의 톤, 몸짓 등을 사용한다. 언어 속의 아이러니는 늘 원래의 뜻과는 다른, 혹은 그와는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다. 문학 용어로써의 아이러니는 일종의 반어법을 가리킨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나오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사랑하는 연인을 보내야 하는 아픈 마음에 대한 언어적 아이러니이다. 끝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 사이의 상이함과 그 괴리는 일상의 삶에는 불안함과 어색함을, 문학 속에서는 새로운 의미와 강화된 긴장감을 제공한다. 그렇게 아이러니는 인간만이 사용하는 언어의 위험과 매력 모두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가 곧 문학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개별성과 보편성     

풍습과 전통은 시대와 지역, 종족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가치와 효용성을 획득한다.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전통적 행위가 보편화되고 일반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민족의 개별성과 독자성에 대한 모순이다. 더구나 특정한 지역에서 발전하고 생성되어 온 하나의 전통이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얻게 되는 것은 배타적 현상에 대한 명백한 아이러니이다. 오늘날 패션의 하나로 퍼지고 있는 문신의 경우, 18세기의 유럽인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었다.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창조물로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그러한 인간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은 신성에 대한 모독이었고 야만이었다. 그러나 남태평양 섬의 원주민들에게 문신은 일종의 종교적 의식이었다. 그것은 가족과 혈통의 표시였고, 성취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신에 대한 경외심과 숭배의 표시였고 마법의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손바닥에 그린 눈(眼) 모양의 문신은 사후의 삶으로 이끌어주는 표식이었다. 한편 아시아의 일본은 문신을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받아들였다. 귀족들의 화려한 복색에 대항해 서민들이 문신으로 그들에 대한 저항을 표시하는 사회적 기능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그것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하나의 패션이 되었다. 즉 종교적, 사회적 차이를 넘어선 보편화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는 역사와 삶, 인간과 언어, 풍습과 전통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존재 양식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개념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드러낸 것과 숨어있는 것이 다르고, 말하고 의미한 것이 다르며, 행동과 결과가 다른 아이러니의 연속일 뿐이다. 심지어는 우리의 생활을 규정하는 풍습과 전통까지도 개별적 특수성을 넘어 보편화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 숨어있는 그 수많은 고난과 시련,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거대한 세월의 흐름, 사랑이 절망과 증오로 변화되는 그 단계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마음이 갈등하는 일, 가슴속 저 편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억지로 밀어내며 던진 마음에 없는 원망의 한 마디, 그 모든 것이 삶과 존재의 아이러니이다. 그래서 아이러니는 숙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