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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22. 2020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

실재의 부재, 하이퍼 리얼리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허구는 가능한가?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마치 현실 같은 수많은 허구와 마주친다. TV 드라마, CF, 영화, 컴퓨터 게임, 스마트 폰 등 생활 속의 모든 기기들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허구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그려지는 유럽의 도시들은 실제의 모습보다 더 유럽적이다. 홀로그램의 등장으로 3차원의 영상이 가능해진 것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실제의 사물과 똑같이 공간을 차지하는 이미지. 우리는 만질 수 없는 도시의 건축물들 사이를 걸어가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허구를 현실로 착각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또한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실재하는 많은 것들도 현실 속에 재현되고 있다. 카메라 앵글에 따라 맨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훨씬 더 세밀한 자연의 모습들이 드러난다. 신비로운 심해의 비경, 혹성의 표면, 인체의 내부, 미세한 박테리아의 움직임까지, 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영상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실재하는 모든 것들을 허구처럼 받아들이고, 수많은 허구들을 현실로 착각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실재의 부재’ 속에, 현실과 허구가 혼재된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술, 현실과 허구의 혼재    


현대의 예술가들은 이미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허구, 개념과 이미지 사이를 교묘하게 교란시킨다.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Guillaume Musso)의 소설 ‘종이 여자’에서는 상상력이 고갈된 작가 앞에 그가 쓰던 소설 속의 여인이 나타난다. 사랑에 실패하고 좀처럼 창작에의 열정과 의지를 회복하지 못했던 그는 허구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현실과 허구가 교차되면서 작품 속의 주인공은 상상과 실제의 세계 사이를 표류한다. 현실과 허구의 혼재는 이미 문학 작품 속에 흔히 사용되는 표현방식이 되고 있다. 프랑스의 부조리 극작가 장 주네(Jean Genet)의 ‘하녀들’은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몰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다. 자매인 두 하녀는 여주인에 대한 증오심에서 그녀의 몰락을 상상하는 연극놀이를 한다.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여주인에 대한 복수를 환상 속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극은 현실의 세계와 이어져 있다. 그들은 여주인의 정부를 경찰에 고발한다. 연극 속의 행위가 현실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연극은 원치 않는 현실에 직면한다. 체포되었던 여주인의 정부가 가석방으로 풀려나자, 절망에 빠진 자매는 자신들의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여주인을 독살하기로 모의한다. 그러나 그녀는 하녀들이 준비한 독을 마시지 않고 그녀의 정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간다. 좌절감 속에서 하녀들은 다시 연극을 시작한다. 그리고 여주인 역의 하녀가 현실의 여주인이 되어 실제로 독이 든 차를 마신다. 연극 속의 허구가 현실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하녀들의 연극은 현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다가 냉엄한 현실에 의해 좌절되고, 결국 연극은 허구를 넘어 현실과 동일화된다. 삶의 고통을 연극이라는 허구를 통해 벗어나려고 했던 그들의 반란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비극적 현실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들의 행위는 마치 무당의 주술처럼 허망한 결말에 도달한다.    


다른 예술의 장르에서도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있다. 전통적인 사진예술은 사물을 렌즈에 담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 모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시작된 ‘뉴웨이브’(New Wave) 운동을 통해 사진의 개념은 크게 변화된다. 미국의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은 “현실의 사진을 찍는 것은 아무것도 찍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사진 예술의 경향은 현실의 공간이 온통 허구적 이미지로 둘러싸여 있다는 가설에 기초한다. 종래의 사진작가들이 현실과 대상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뉴웨이브 사진작가들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들이 촬영하는 대상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허구의 세계이다. 현실이 아니라 허구를 찍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예술의 표현 양식은 현실과 허구의 구분을 벗어나 자유로이 확대되어왔다. 그러나 이는 현대인의 삶에는 오히려 혼돈과 무질서를 초래한다. 허구의 세계를 방황하며,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삶의 태도와 방식이 건강한 생활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과 다양한 매체가 제공하는 현실 같은 허구들이 우리를 실재하는 현실로부터 괴리시키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그들의 불안하고 불확실한 현실을 대체할 거짓된 현실을 허구 속에 만들어 낸다.     


대체현실과 미사일 버튼 신드롬     

대체현실(substitutional reality)은 사람의 인지과정이 왜곡되어 가상세계에서의 경험을 실제인 것처럼 인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과 착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사이버 세상이 만들어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는 다르다. 가상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사실적이고 실제와 같은 환상을 만들어내더라도, 필요한 경우에는 현실과 허구를 즉각 구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현실은 그 안에서의 감각과 경험을 실제로 인식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대체현실이 과거에는 상상 속에만 존재해 왔으나 최근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실제의 테크놀로지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한 연구소는 체험자에게 실시간 장면과 편집된 과거 영상을 교대로 보여줌으로써 과거 장면이 실제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실험에 성공한 바 있다. 단지 상상이라는 느낌을 넘어 실제의 경험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대체현실을 기술화함으로써 심리 치료,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의 분야에서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전망하고 있다. 이제 현실조차도 우리 마음대로 만들어 짝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이이를 낳아 키울 수 있으며, 우주인이 되어 다른 혹성을 여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실제의 감각을 자신의 기억 속에 내재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꿈같은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대체현실 속에서 인간은 또다시 신이 된다. 환상 속에서 열망하던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가짜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현대인들은 환각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대체된 현실에서 벗어날 때 인간은 과연 절망과 불행과 실패가 있는 실제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또다시 척박한 현실로 돌아와 그 엄청난 허무와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런 마약 같은 테크놀로지 중독과 그 금단 현상은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미사일 버튼 신드롬(missile button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미사일 버튼을 누르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심리 현상을 가리킨다. 피해자들과 단절되어 그들의 고통을 직접 대면하지 않음으로써 가책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개전과 동시에 이라크의 미사일 기지와 포병기지, 방공시설, 정보통신망 등에 대해 집중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이라크의 전쟁 수행 능력을 철저히 파괴하였다. 당시 이라크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 참여하였던 서방의 병사들은 미사일 통제실에서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발사 버튼을 눌렀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실제로 벌어지는 파괴와 살육은 현실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결과와는 관계없이 허구 속의 게임을 수행했다. 현실과 허구를 혼재시킴으로써 인간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선명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쟁터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날 사이버 세계에서 벌어지는 그 많은 언어의 폭력들은 그것에 의해 고통받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행위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무지, 그것은 현실에 눈 감은 채 허구의 세계만을 헤매는 현대의 비극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실과 허구의 혼재 속에서 실재가 인위적인 대체물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세계는 사물이 기호로 대체되고 현실의 모사나 이미지들이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는 곳이다. 더 이상 원본은 없고, 어느 의미에서는 원본과 모사의 구별도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미국인의 삶 모두를 담고 있는 디즈니랜드는 미국을 재현하고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디즈니랜드의 모든 모사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미국을 만든다. 그리고 실재하던 미국은 사라진다. 인간은 이 세상과 구분하기 위해 감옥을 만든다. 그러나 감옥 속에서 바라보면 이 세상이 감옥일 수 있다. 인간이 설정한 실재가 인간 스스로에 의해 허구의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거짓의 실재로 전환되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가 혼재되는 것을 넘어 그 구분이 모호해지고 결국에는 가짜만이 남게 된 세계에서 우리는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가. 현실을 허구로 대체하는 인류의 미래는 어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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