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At Sun-un Temple
by Choi, Young-mi
Flowers
Are hard to bloom
But they fall in a moment
Before I give them a full look
Before I just think of my love
Really like a flash.
Just as you bloomed in me
For the first time,
I wish I could forget you
Right away.
My love, smiling in the distance
My love, going away over the mountain
Flowers
Are easy to fall
But it takes too long to forget
Like into eternity.
꽃잎이 떨어진 줄 몰랐습니다. 필 때는 잠시 그 아름다움에 숨죽이다가 어느덧 사라진 줄 몰랐습니다. 사랑이 그랬고, 인생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얼마나 황홀했었는지 꽃이 필 때는 몰랐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죠. 그래서인지 희미해지는 망각의 끈을 아직도 붙들고 있군요. 그리운 임은 왜 그리 멀리서 웃고 있는지. 저 산 너머로 가면 그곳이 어디일까요. 쉽게 져버린 꽃잎만큼이나 홀연히 잊힌 나의 그 많은 날들이 이제는 영원 속에 묻혀 가겠지요.
최영미 시인의 이 시는 꽃이 피고, 지고 그리고 잊히는 순환의 고리를 하나씩 연결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고 분명한 흐름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어디서 감정을 끊고 되돌아 음미해야 하는지 저는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으려 애쓰는 나 자신의 모습이 겨울 어느 날 허름한 술집 뿌연 창가에 어린 것을 보면서 아직도 그 무수한 미련의 흔적을 지우기에는 많은 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밤에는 시를 읽지 말아야겠습니다. 시에 취해 모든 것을 잊게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