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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15. 2021

다만 거기에 너만 없었다

이지현, 길은 흐르고 있었다

다만 거기에 너만 없었다

                       이지현


길은 흘러가고 있었다.

흐르는 길을 따라 눈이 내리고

눈 속에 안개가 고여 있었다.

네거리엔 가끔 달빛이 서성거렸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저마다 한주먹씩

주머니에 든 추억을 꺼내 들었다.

아무도 가난하지 않았다.


외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림자도 팔짱을 걸어

기웃거리며 함께 걷고 있었다.

거리는 어느 것도 들추지 않고

세심한 배려처럼 모든 것을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그런 것이다.

꺼내던 추억의 가벼운 조각도

다시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사람들은 빈 거리를 걸어가고

신호는 깜빡깜빡 바뀌어

매일 다른 시간을 꿰매고 있었다.


다만 거기에 너만 없었다.


But You Alone Were Not There.

                             by Lee, Ji-hyun


The road was flowing down.

Along the road that flows snow was falling.

In the snow gathered the mist.

At the crossroad the moonlight was often hovering.

Waiting for the traffic sign to change,

Each one of them on the road

Took out a handful of memory from the pocket.

No one was poor at all.


No one was lonely

With the shadow, arm in arm,

Walking with us, snooping around.

The road revealed nothing

And let everything flow down

With careful consideration.  


Things go like that.

A bit of memory that was taken out

Has come back into the pocket.

People were walking on the empty road.

The twinkling traffic signs

Patch up each different time everyday.


But you alone were not there.


시(詩)는 결국 외로움 같습니다. 그리움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한 감정 없이 시가 써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안에 자리해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기쁨 속에서도, 화려함과 벅찬 희망 속에서도 그것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슬픔과 절망은 우리를 고갈시키지만 그리움은 우리를 추억으로 가득 채웁니다.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이끌어 여전히 우리를 기억 속에 살아있게 합니다.


오늘 걷던 거리에 안개 같은 눈이 내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을 간직한 채 흐르듯 거리를 걸어갑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순간, 그에게, 그곳에 서둘러 가고 싶어 호주머니 속 추억을 꺼내봅니다. 누구도 춥지 않고, 누구도 외롭지 않습니다. 달빛 따라 내 뒤를 쫓던 그림자마저 기웃거리며 무심한 벗이 되어줍니다. 거리에 무수한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나지만 모두 각자의 가슴속에만 있을 뿐입니다. 잠시 추억을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신호등이 바뀌면 우리는 또 다른 시간 속을 걸어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립습니다. 외롭습니다. 그곳에 당신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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